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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옥수수와 행복에 관하여

by 다니엘라


오도독 톡 오도독 톡.

한 달을 기다려 도착한 초당 옥수수를 살살 쪄서 오래오래 음미하며 먹는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행복한 건지 홀로 웃으면서 연신 고개를 도리도리 하게 된다. 너무 좋을 땐 끄덕끄덕 보다는 도리도리 쪽이 더 실감 나기 마련이니까.

나라는 인간이 기대하는 행복의 기준이 너무 낮아서 헤프게 ‘행복, 행복’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좀 헤프면 어떤가. 웃음이 나오고 마주하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면 그건 뭐 자주 느낄수록 예쁘고 좋은 감정일 테니,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방방 거리며 웃을 수 있게 만든 초당 옥수수에게 이 모든 영광을!



문득 행복을 이렇게 쉽게 얻어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그리고 이걸 정말로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곰곰 생각에 빠져본다. 남편은 지금 이 시간 회사에서 지난밤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해결해 내느라 온 마음이 분주할 테고, 만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한동네 사는 친구도 밀린 강의를 듣느라 입만 벌리면 커피를 마시며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을 텐데…



이 행복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입속에서 낱알과 함께 터지는 달콤함 단 하나 때문에 이렇게 행복할 리는 없다. 사실은 초당옥수수 낱알의 오도독 거림을 느끼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지나야 했다. 어느 책임감 있는 농부님을 통해 부지런히 재배되고, 예약 구매라는 트렌디한 구매 방법을 통해 선 주문을 완료하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초당 옥수수가 우리 집 문턱을 넘어섰고 아이들과 동그랗게 앉아 옥수수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고, 옥수수수염을 정리하며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하나, 둘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행복은 그쯤에서 시작된 것이다. 흥미로운 일을 벌일 때면 피어나는 아이들의 웃음꽃.

“엄마 제가 두 개나 까서 봉지에 넣었어요.”

“엄마 저는 할아버지 수염을 다 정리해서 쓰레기로 모았어요.”

짧지만 농도 짙은 웃음과 두 꼬마 와의 다정했던 시간 덕에 이미 행복은 서서히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이란 결국 일상의 평범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이불 킥을 수십 번 하고도 남을 정도로 부끄러웠던 기억의 조각들도 난무 하지만 더 깊이 더 자주 떠오르는 일들은 작고 평범했던 일상이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서 먹었던 불고기 전골집에서의 에피소드 라던가, 엄마와 언니를 포함한 우리 집 세 모녀가 대중목욕탕에서 나와 빨갛게 물든 얼굴을 하고 찾았던 즉석 떡볶이 집에서의 풍경, 그리고 엄마가 대충대충 반죽해서 주전자 뚜껑으로 꾹꾹 눌러 튀겨 준 도넛을 먹을 때의 마음들과 같은 평범하고도 기분 좋은 기억들이 자주 등장해 마음을 살살 만진다.



오도독 거리며 초당옥수수를 베어 물던 그 행복도, 옥수수 껍질을 벗기며 느꼈던 장난스러운 행복도 결국은 평범하지만 기분 좋은 기억의 저장소에 담겨 나와 아이들의 다가올 날들을 환히 비춰줄 것이다.

정말이지 행복이 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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