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 개학.
큰아이가 개학한 지 사흘이 지났다. 3학년 형아가 되면서 ‘학급 회장 선거’라는 행사가 일 년에 두 번 마련되었다. 아이는 리더의 자리를 경험해 보고 싶었는지 1학기 때부터 회장 선거에 벌써 두 번째 출마 중이다.
1학기 때는 특별한 출마 공약을 종이에 옮겨 적지 않고 마음으로 정리를 해서 등교를 했었다. 하얀 실내화를 들고 “친구들을 돕기 위해 이 실내화가 닳도록 달리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는데, (우리 아이의 연기력 부족이었는지.) 아이 말로는 실내화가 별로 효과가 없었단다. “실내화 들고 흔들기가 약 25년 전에는 대 히트를 쳐서 엄마가 반장 선거에 나갈 때마다 당선이 되곤 했는데….” 하는 말 따위는 아이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반장에 당선된 여자 아이는 출마 공약을 아주 잘 적어 왔더라는 말을 남겼고, 2학기 때는 잘 준비해서 또 도전해 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아이는 뭐라도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도전해서 1학기 때는 체육부장의 자리를 지켰다.
3학년 2학기 개학,
그리고 또다시 돌아온 반장선거.
지난 학기의 낙선으로 이번엔 도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는 이번에도 ‘당연히’ 반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출마 공약을 직접 적어서 가겠다고 했다.
지난 학기 낙선의 실망으로 이번에는 나가지 않는다 해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이는 출산의 고통을 잊고 둘째 셋째를 또 가진 산모마냥 새로운 설렘을 품고 재도전을 선언했다. 내 눈엔 그런 우리 아이가 기특했다. 용기가 멋졌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도 마구 칭찬해 주고 싶었다. 엄마 입장에서 반장이 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또다시 도전을 한다는 것 자체로도 아이를 아낌없이 칭찬하고 싶었다.
아이는 스스로 출마 공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 앞에서 세 번이나 연습을 하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는 진지했고, 그 모습을 보니 아이의 작은 소망이 친구들의 마음에도 가 닿아서 부회장이라도 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낙선을 했다가는 아이가 많이 실망을 할 것 같아서 부디 2학기만큼은 아이도 재미를 봤으면 싶었다.
등교 전 아이를 안아주며 이야기했다. 우리 아들이 도전하는 게 참 멋지다고, 회장이 되고 싶을 거고 되면 좋겠지만 엄마 아빠는 이삭이가 회장 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출마하는 용기 자체가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멋지다는 말을 아이에게 해 주었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 될 수도 있고 안 좋은 날이 될 수도 있어요~사랑해요 엄마~!”라는 말을 남기고 현관을 나섰다.
하교 후, 평소와 같이 영어 학원 앞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고 아이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며 차에 올라탔다.
“엄마 오늘은 기분이 안 좋은 날이라서 태권도 학원을 하루 쉬고 싶어요.”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기분이 안 좋구나. 회장 선거에서 떨어졌어?”
“네, 회장도 안되고 부회장도 안되고 활동 부장도 가위바위보에서 졌고, 모둠장에서도 가위바위보를 지는 바람에 오늘은 아무것도 안되었어요, 저는 그냥 일반학생이 되어버렸어요.”
“그랬구나. 기분 안 좋겠네. 오늘 태권도 하루 쉬자! 오늘 안 그래도 동생 영유아 검진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너도 같이 가자.”
“네에….”
“근데 이삭아, 엄마 아빠는 이삭이가 너무 자랑스러워.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이삭이가 직접 출마 공약도 작성하고 자신감 있게 도전을 한 거잖아. 엄마 아빠는 이삭이가 도전을 한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멋져서 축하해주고 싶어. 너무너무 고생했고 잘했어 이삭아.”
아이 얼굴엔 여전히 아쉬움이 그득했지만, 저녁 메뉴 선택권을 아이에게 넘겨주며 아이의 미소를 반쯤 되찾았다.
아이 반에는 1학기 때 회장을 했던 친구가 2학기 부회장이 되고, 1학기 때 부회장을 했던 친구가 다시 회장이 되는 재미없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학급 인원 23명 중 후보가 8명이나 출마를 했다면 회장을 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았다는 건데, 다양한 아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줄 만한 시스템을 마련해 주시지 않은 선생님이 30분쯤 원망스러웠지만 아이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잘 털고 일어서야 할 과제가 남았기에, 아빠와 전화 통화를 연결해 주고 아빠를 통해 또 한 번 용기를 칭찬받을 기회를 주었다.
맛있는 찜닭을 저녁으로 먹고 아이는 기분이 서서히 풀렸고, 아이가 잠들기 전에 도착한 아빠는 반장 출마를 한 용기 있는 아들을 위해 퇴근길에 과자 선물을 사들고 들어왔다. 아이는 낮시간의 먹구름은 시원하게 걷어내고 과자를 착착 정리한 뒤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가 자라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때엔 실망도 크게 하지만, 그러는 중에 아이가 조금씩 삶을 배워가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실망을 하고 더 이상은 도전하지 않을 법도 한데, 끊임없이 도전하는 아이의 용기도 기특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 동안 살아가며 도전하고 넘어지겠지만, 그때마다 아이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인생의 쓴 경험이 차곡차곡 모여, 넘어져도 아이가 스스로 탁탁 털고 일어설 수 있는 반짝이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참 잘했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