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옮겨 갈 사랑을 누리는 중입니다

by 다니엘라



성격 좋은 우리 첫째 어린이는 예민하고 섬세하기로도 둘째가라면서러운 인물이다.

변화에 민감한 우리 어린이는 코로나 대유행 시절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등교거부를 한 경력이 있는 프로 예민러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부적응 캐릭터 어린이는 아니다. 친구들과 노는 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아이이고 등교거부 시즌에도 친구들 덕분에 불안을 잠재우기도 하곤 했을 정도로 사회성은 동글동글 잘 발달되고 있는 중이다.



등교거부 시즌에는 아이의 예민함이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엄마의 마음을 짓눌렀지만, 아이가 학교 적응에 성공하고 일상을 되찾은 후에는 아이의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섬세함은 아이의 인생에 ‘좋은 것’이 될 것임을 확신하며.



올해로 초등학교 삼학년이 된 우리 첫째 아이는 섬세한 아이이다. 아직은 아이의 세상에서 가장 크고 귀한 존재는 엄마 아빠다. (물론 입으로는 하나님이 더 크고 더 좋다고 하는 기특한 어린이 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엄마 아빠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평소에 눈썹을 잘 그리지 않던 엄마가 눈썹을 그리면,

“엄마, 화장 안 하는 게 더 이뻐요!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 같아요.” 하며 귀찮은 참견도 하고, “아빠 팬티가 낡았어요. 엄마!! 아빠 생일 선물로 팬티 사드리는 거 어때요?” 하며 따스한 참견도 하며 큰아들로서의 애정을 과시한다.



식기세척기를 집에 들이고 나서는 고무장갑의 교체 주기가 길어졌다. 최근 습한 여름 날씨 덕에 방치되어 있던 고무장갑의 팔 부분에 검은색 점 같은 곰팡이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심한 첫째 아이의 레이더 망에 곰팡이가 걸려들었다. 아이는 “엄마 고무장갑에 곰팡이가 생겼어요. 이거 새로 사야 해요.” 하며 나에게 고무장갑을 내밀었다. “그래 조만간 사서 바꿔야겠네.” 하고 아이에게 대답을 했지만, 그러고 나서도 거의 2주 정도의 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머릿속에서는 ‘고무장갑, 고무장갑’ 했지만 장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잊었고 그렇게 2주가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어제저녁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다이소 쇼핑을 나섰다. 아빠를 따라나선 아이들은 한 사람 당 삼천 원 내에서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삼천 원의 행복권을 얻었다. 아이들이 또 어떤 삼천 원짜리 쓰레기(?)를 사 올까 궁금해하며 집을 지켰다. 집을 나간 지 10분쯤 되었을까?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는 첫째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엄마는 고무장갑 어떤 스타일 좋아해요? 어떤 거 써요?”

다이소에 간 김에 고무장갑을 사오려나보다 하고

“응 엄마는 아무거나. 마미손도 되고 아무거나 쓰니까 아빠한테 한번 여쭤보고 골라!”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집에 돌아온 첫째 아이가

“요한아 손 씻고 형아가 엄마한테 드릴 거니까 만지면 안 돼”

하더니 잠시 후 분홍색 고무장갑을 내밀었다.

그걸 사 올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을 뻔했다가 감격하는 표정으로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자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삼천 원어치씩 사도 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제꺼 천 원만큼만 사고 엄마 선물로 이천 원을 써서 고무장갑을 준비했어요. 처음에 엄마한테 줄 예쁜 컵을 준비했는데 아빠가 엄마는 집에 컵 많은 거 싫어한다고 해서 다시 접시 같은 걸 고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엄마는 필요하지 않은 그릇도 집에 많이 있으면 싫어한다고 하셔서 제가 생각해낸 게 고무장갑이었어요. 우리 집 고무장갑이 망가졌잖아요. 저 잘했죠?”

잘하고 말고…!! 이런 보석 같은 친구를 봤나요.

“아고아고~ 이삭아 너무너무 고마워! 엄마가 꼭 필요한 거였는데 이삭이가 선물해줘서 너무 고마워!!”

하며 찹쌀떡 포옹을 꼬옥 해주었다.



세심한 우리 아이는 자기 세상의 가장 큰 사랑인 엄마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 엄마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고 싶었고, 자기가 가진 사랑을 어떻게 해서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끔은 아이에게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으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과연 나도 우리 엄마를 이렇게 많이 사랑했었던가. 엄마에게 이렇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던가.

지금은 엄마를 사랑은 하지만 더 이상 내 세상의 전부도 아니고 내가 온전히 의지하고 싶은 대상도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지키고 보호해드려야 할 대상이자 결핍된 무언가를 채워드려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 또한 사랑이겠지만 이미 그 형태는 많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아이도 때가 되면 제 짝을 만날 것이고 오직 엄마 아빠에게만 쏟아붓던 그 사랑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골고루 나눠줄 것이다. 사랑은 결국 조금씩 서서히 옮겨가게 되어있다.

그렇게 될 것을 알지만 지금 아이가 베푸는 사랑만큼은 진심인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 마음껏 누리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 또한 아낌없이 나눠 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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