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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6

by 다니엘라


천천히 만들어지는 소설입니다.

쭈욱 기다렸다가 몰아서 읽으셔도 좋고, 짤막짤막하게 아쉬워하며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저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해요.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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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의 후반부)

셀레네는 이 별난 상황에서도 혼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느라 정신이 없다. 쌍둥이라고 해서 꼭 닮아야 하는 법은 없지만 아나와 셀레네는 별스러울 정도로 많이 달랐다. 셀레네는 여기 있는 누군가가 피를 쏟으며 들것에 실려 나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제 좀 잠잠해지나 했더니 아나가 안드레아의 개인사를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넌 대체 어디서 나타났으며 무얼 하다가 이 방구석에 앉아 나를 마주 하고 있는 거냐며 원색적인 질문을 쏟아부었다.

눈물만 훌쩍이던 안드레아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도 홀린 듯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아나의 마법이었다.


———


첫 만남에서의 안드레아가 흘렸던 눈물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음을 아나 덕분에 알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는 합당하거나 적절한 정도의 이유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안드레아도 딴에는 그렇게 눈물을 쏟아낼 이유가 있었던 거다.


안드레아는 한국인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 아동 복지회를 통해 해외로 입양이 된 케이스였다. 본인이 몇 살인지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에 브라질로 입양이 되었단다. 본인은 날 때부터 브라질리언이라 생각했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떠올려본 적조차 없었단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었단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콧잔등의 높이가 다르고 눈꼬리의 모양새가 다른 그녀를 일찌감치 파악하고는 치니따(chinita_중국인이라는 뜻으로, 동양인을 일컫는 말)라는 애칭으로 불러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본인의 출생의 비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고 의심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구릿빛 피부의 엄마와 산타 할아버지 같은 뽀얀 피부와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아빠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부모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단 한 톨의 의심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생일을 맞이 하던 날 오후, 가족들과 생일 초를 끄고 피냐따(사탕이 가득 찬 종이로 만들어진 인형을 높은 곳에 매달아 두고 생일 등에 주인공이 몽둥이로 쳐서 터트리는 것. 인형이 터지는 순간 사탕과 초콜릿 등이 쏟아져 내린다.)까지 터트리고 나서야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드레아가 가장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먹으며 가족들과 케이크를 나눠먹던 그 행복한 순간에 부모님은 안드레아에게 처음으로 입양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즐거웠던 3학년 생일은 딱 그 순간 까지였다. 그날 저녁 이후의 일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지러울 정도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만큼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입양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안드레아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안드레아는 3학년 생일을 맞기 이전의 날들처럼 살아갔다고 한다. 낳아 준 부모를 찾으려는 생각이나 가족 친지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입양 사실을 몰랐던 그때의 기억을 되내며 그저 하루하루의 행복을 이어가는 데에만 마음을 쏟았단다. 마치 뼛속까지 엄마 아빠의 딸인 것처럼, 뼛속까지 브라질리언인 것처럼.


그런 평범하고 잔잔했던 날들의 끝에 자신의 뿌리와 부모를 찾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안드레아는 인생의 동반자로 확정 짓기에 부족함이 없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하필 그 남자는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만남을 지속하며 그도 역시 수십 년 전 한국으로부터 입양되어 온 코리안 브라질리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안드레아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가정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본인의 입양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종종 한국을 오가며 양쪽 부모와의 정을 골고루 나누며 살아온 전형적인 건강한 입양아였다. 그는 자신의 입양 사실을 이야기 소재로 꺼내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고, 양쪽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미소를 띠며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랬던 그와 3년 간의 열애 끝에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결혼을 앞둔 둘은 남편이 될 그의 끈질긴 설득 끝에 신혼 여행지를 한국으로 정하게 된다. 그는 안드레아의 뿌리를 찾아주려고 결심이라도 한 듯 부지런히 그녀의 마음을 토닥여가며 한국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그렇게 결혼을 3개월 앞둔 어느 날.

안드레아의 남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가 끔찍한 교통사고로 세상과 작별을 하고 만다. 슬픔에 젖은 안드레아는 까만 지구라는 별에 홀로 남겨진 모래알이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거짓말처럼 흘러가고 안드레아는 먼저 떠난 그를 기억하며 한국 땅을 홀로 밟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생물학적 부모를 만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도, 그리고 먼저 떠난 연인의 부모를 마주할 자신도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국행을 준비하고 떠나기로 한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힘겹게 뗀 그녀의 발자국이 무증상 코로나 확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수로 다시 갇히고야 말게 된 것이다. 안드레아의 굳었던 결심 앞에 출국의 길이 막히자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드레아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두어 시간쯤 자기 이야기를 풀어헤쳤다. 아나가 아니었다면 안드레아는 그저 기면증이 있는 울적한 여자쯤으로 기억되고 말았을 터다.

그날 밤은 안드레아의 긴긴 이야기로 서서히 저물어 갔다. 끔찍할 것만 같았던 격리 병동에서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펼치지 않았던 글감 기록장을 펼쳤다.



<격리 병동 1일 차 기록>

식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음.

고국의 가족들이 그리움.

한국으로 먼저 떠나간 팀원들이 부럽고 약간은 심술이 올라옴.

건강상태 좋으나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건물 특성상 때때로 메스꺼움이 올라옴.

격리 병동에 배정된 방이 더럽게 좁음.


격리 메이트: 안드레아, 아나, 셀레네

안드레아 - 한인 입양아. 미인형. 연인을 잃은 슬픔. 뿌리를 찾아 떠나는 길. 그리고 그녀를 쫓아다니는 지독한 기면증.

아나 - 멕시코 출신. 식당 운영. 지나치게 쾌활. 토커티브함. 인터뷰어의 기질이 다분함.

셀레네 - 아나의 쌍둥이 동생. 멕시코 출신. 지나치게 내성적. 말 한마디도 못 붙여봄. 연구 대상. 반나절 이상을 음악만 듣고 있음.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궁금함.

시간이 빠르게 흘러주기만을 바라고 있음.

그나저나 치즈가 잔뜩 올라간 피자가 먹고 싶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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