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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기, A형 독감 확진과 그 후 (86일 아기)

by 다니엘라


셋째 아이가 태어난 지 86일째 되던 날 새벽 3시.

깨지 않고 밤잠을 잘 자던 아기가 난데없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일어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며 아이를 안아 올리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기저귀를 갈고 옷을 챙겨 입히는데, 아이에게서 열이 느껴졌다. 따끈따끈한 정도가 아니라 아이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두려움을 잔뜩 안고 아이의 체온을 쟀다. 띠익-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숫자는 39.3. 생각지도 못했던 큰 숫자를 선뜻 믿기가 어려웠다. 100일도 안된 아기의 몸이 이렇게 뜨거워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직 엄마의 면역을 품고 있을 개월 수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너무 어른스러운 숫자였다. 반대쪽 귀를 살피고 체온을 확인했다.

39.1도.

고열 확정.



큰아이들이었다면 고민하지 않고 체중에 맞게 해열제를 복용시켰겠지만, 막내는 너무 작고 어렸다. 어린이 해열제인 챔프에는 생후 4-6개월부터 해열제 복용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아이를 셋이나 키워 보아도 여전히 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아 먼저 수유부터 했다. 남편에게 미온수를 부탁해서 젖 먹는 아이를 물수건으로 부지런히 닦았다. 30분 이상 열심히 닦아주고 아이 체온을 38.7도 정도까지 내려놓았다. 그리고 더 이상은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분들이라면 뭐라도 알 것 같았다. 100일이 되지 않은 아이가 고열이 나는데 어찌하면 되는지 자문을 구했다.



119 대원분은 해열제를 무작정 먹이기보다는 (아기가 너무 어리니) 근처 대학병원의 소아전용 응급실을 찾아갈 것을 권했다. 119에서는 연락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지만, 소아응급실에서는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5년 전쯤에 둘째 아이가 열이 나서 그곳을 찾았던 기억이 있기에, 꽁꽁 싸맨 막내를 안고 택시를 잡아탔다. 남편에게는 두 아이를 맡기고 홀로 택시에 올라타 인적 드문 울산의 번화가를 지나, 조선소의 불빛이 반짝이는 울산대교를 건넜다. 아이가 아픈 와중에도 새벽 네시의 낯선 고요함은 아름답기만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도착.

소아응급실로 뛰어들어가는데 응급실 정문이 막혀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내가 지금 아이가 아파 왔으니 이곳의 관계자인데, 들어갈 수가 없단다. 접수처에 문의를 하니 일반응급실 환자분류소로 가서 기다리란다. 아이는 열이 펄펄 끓으면서도 쌔근쌔근 잘 자고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 한분이 다가와서 서로 상황을 확인했다. 병원 인력부족으로 소아 입원이 안되며, 그렇기에 지금 소아 응급실도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기가 열이 나는 거라면 챔프 해열제를 복용하고 물수건으로 닦아주면 된다고 했다. 우선은 아기가 많이 보채거나 처지지 않고 잘 자는 중이니 크게 걱정을 하지 말고 고열이 지속되면 부산의 대학병원 소아 응급실을 찾으라고 했다.

‘우리 아기는 어쩜 좋아요…!’

하는 마음으로 찾은 응급실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아이 상태를 확인해 준 간호사는 크게 심각한 상황이 아님을 알려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까지 덤으로 얹어주었다.

응급실 문턱까지밖에 가지 못했음에도 위안을 얻고 돌아섰다. 아이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는 말과 해열제를 복용해도 된다는 그 말을 들으러 1월 1일 새벽, 자정을 기점으로 인상된 택시비를 내며 울산대교를 건너왔다.

왕복 택시비 3만 8천 원쯤이야….



편안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해열제를 먹이고 아이를 수건으로 닦이며 조금이라도 잘 수 있게 도왔다. 날이 밝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잠시 눈을 붙였다.



오전 9시.

아기 체온 38.1.

동네병원울 찾았고 독감/코로나 시즌이라 거의 40여분을 기다린 뒤 진료를 보았다. 폐소리는 괜찮고, 아기가 어려서 해열제 말고는 처방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독감 검사는 하루쯤 지나서 하면 좋을 것 같고, 아기가 열이 나니 검사를 원하면 이런저런 염증 검사 등은 해줄 수 있다고 하셨지만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체온 37.7.



해열제로 체온 조절이 되기 시작했고,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명의’ 분께 상황을 알렸다. 우리 가족 주치의 이 시기 때문에 명의님 말씀만 잘 들으면 아이들 아플 때 케어가 훨씬 쉽다. 명의님이 마침 독감 검사 키트가 있으시니 집에 들러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뜻밖의 왕진을 오셨다.



검사결과 A형 독감.

아기는 아직 엄마 몸속에서 받은 면역이 있으니 잘 이겨낼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고열이 지속되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추가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에서 해열제 만으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정말로 그날 저녁 38.1도인 아기에게 마지막 해열제를 먹였고 아이는 통잠을 쭈욱 잤다. 그 후로 서서히 컨디션이 회복되었고 셋째 날부터는 평소 체온과 컨디션과 잠을 회복했다.



그리고 다섯째 날인 오늘 아침.

아이는 방긋거리며 아침을 열었다.

아이는 아파가며 자란다.

그 순간 부모도 함께 자랄 수 있으니 더욱 감사하다.



셋째라 오빠들보다 조금 이른 아픔을 경험했지만 잘 이겨내주었다.

100일 이전의 아이는 열이 나면 덜컥 겁도 나지만, 엄마에게 물려받은 강한 면역으로 생각보다 더 잘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혹시 당신의 아이가 예상치 못한 날에 갑자기 열이 나더라도 당황하기보다는 방법을 찾아 나서주며 아이를 돕는 부모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당신도 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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