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3시 50분.
나와 삼둥이는 작디작은 아파트 도서관으로 향한다.
이번 주는 3주 차.
거실과 아이 방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가지고 놀던 첫째 아이가 어느 날부턴가 만화책을 제외한 책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자유시간이 생기면 동생과 몸으로 놀거나 광장에 쫓아나가기 바빠졌고 그나마 앉아서 독서를 할 때면 아이의 손에는 닳고 닳도록 읽은 학습 만화책이 들려 있었다.
만화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글 밥도 늘려가고 아이가 다양한 책들을 접하며 읽기의 즐거움을 더욱 깊이 느끼기를 바랐기에 아이에겐 새로운 독서의 바람이 한 번쯤 불어제끼고 지나가 줘야 했다. 때론 잔소리도 해보고 읽어줘 보기도 하고 기다려도 봤지만, 시도를 하면 그때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궁리 끝에 내린 결단은, 우선은 환경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집에 있는 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바라봐오던 책이고 새로 들인 몇 권의 책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할 것도 없는 책 들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전집을 들이기에는 시기적으로도 안 맞고 나의 교육관과도 잘 맞지 않았기에 나는 집 밖을 선택하기로 했다. (아무도 이제 우리 집의 어중이떠중이 전집들은 일부만을 제외하고는 처분할 때가 된 것 같다.)
오후 시간이 가장 여유로운 목요일이면 아파트 도서관을 찾기로 했다. 이전에도 종종 책을 빌리고, 둘째 아이와 함께 가서 책을 읽다 오기도 했던 아파트 도서관이다. 그런데 이제는 나 혼자 가서 내 취향의 책들을 아이 앞에 억지로 내미는 일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 취향의 추천도서가 늘어날수록 아이의 독서는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해가기에 이제는 엄마 주도 독서를 멈추기로 했다. 대신, 아이가 주도할 수 있도록 함께 움직이는 것을 선택했다.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아파트 도서관을 찾는다.
막내는 아기 띠에 대롱대롱 매달고 가느라 몸이 좀 고달프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다행이다.
도서관은 커다란 나무 기둥 아래를 뚫어 만든 다람쥐 도서관이 생각나게 하는 작고 아담한 도서관이다. 읽을 책이 별로 없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이 작은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기도 벅차다. 현재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아이들과 5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각자 원하는 책을 찾아 읽고 도서관을 나서기 10분 전에는 대여하고 싶은 책을 두 권씩 고른다. 우리 가족이 한 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은 다섯 권이고 아이 둘과 나까지 사람은 셋이니 2:2:1 정책을 쓴다. 첫째 두 권, 둘째 두 권, 엄마 책은 두꺼운 대신 한 권.
도서관에 가기 전 주의할 점을 이야기한다.
가서 대여할 글책을 먼저 고른 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도록 하자!
첫째 주, 둘째 주를 지나오는 동안 대답을 우렁차게 했던 첫째 아이는 2주 연속 자기 책은 고를 생각도 않고 축구 선수에 대해 다른 ‘Who’ 시리즈 책에 빠져 정신이 없다. 불러도 대답 없는 내 새꾸…….
결구 2주 동안 엄마표 컬렉션으로 쉬운 책으로, 그리고 최대한 더러운 제목의 책으로(똥파리 어쩌구 하는 책, 방귀 뀌는 어쩌구 하는 책) 엄선해서 대여했지만 아이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아들을 보며 약간의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셋째 주, 아이가 드디어 대여할 책을 먼저 골랐다. 예닐곱 살 어린이가 읽을 법한 그림이 귀엽고 글밥은 적은 동화책으로….
그러곤 다시 만화책류를 뽑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십여 분을 몰입해서 읽었다. 만화책이니까 몰입이 되는 거다 이것아! 하며 잔소리로 분위기를 깨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마음으로 꾸짖는 것으로 분함을 삭였다. 작은 아이는 곤충, 식물 등 도감류의 책을 찾아다 부지런히 읽고 관찰했다. 그날 오전에 모래 놀이터에서 봤다는 무당벌레 애벌레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사마귀에 대해서도 관찰을 하고…. 그리고 막내는 대롱대롱 매달려 곤하게 잠을 잤다.
단 하나도 내 맘 같질 않다.
그래도 아이는 나름대로 변화를 보여 준거라 믿는다. 의무적이었지만 책도 한 권 골랐고, 읽고 싶은 책을 가져가 한참을 앉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덕에 둘째는 한참을 도서관에 머물며 책을 고르는 안목도 키우고 책 속의 세상과의 만남도 시작했다.
꾸역꾸역 도서관으로 향하고, 꾸역꾸역 책을 읽는 우리 꾸역꾸역 독서클럽은 앞으로도 목요일이면 같은 곳을 향해 갈 것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번 같은 시간 함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면 각자의 독서 취향이나 책을 고르는 안목을 찾아내고 진짜로 도서관을 즐기는 법을 배워낼 것이다.
독서왕이 되지 못할지라도, 문해력이 고속 향상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하는 독서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조금 더 꿈길로 가까이 인도할 거라 믿는다.
조금 고단하지만,
그리고 역주행을 하는 것처럼 힘에 부치지만
나와 삼둥이의
꾸역꾸역 독서클럽은 오래오래 지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