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 꼬마가 벌써 만 7개월을 찍고, 인생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마냥 신비하고 반가운 마음에 기저귀를 좀 자주 갈아도, 하루 종일 안고 있어도, 그리고 먹이고 뒤돌아서면 또 먹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웃으며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그저 새 식구가 생긴 게 좋았고 신기했고 너무 소중하기만 했으니까.
7개월쯤 키워보니 요 녀석도 이제 우리 식구가 다 된 것 같다. 아이를 돌볼 때의 새로움이나 설렘은 줄고 익숙함과 깨물어 주고 싶은 귀여움 정도가 그 빈자리를 파고든다.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더 귀여워진다는 지인의 말에 몸서리치게 공감을 하면서도 역시 육아 난이도가 높아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낮잠 시간도 줄어들고, 아이가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물고 빨고 뜯는 아이템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눈으로 지키고 손으로 간섭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집안일은 말 그대로 ‘끝이 없다.’
얼굴을 찡그려가며 큰 녀석의 숙제며 해야 할 일들을 챙기고, 둘째 녀석의 놀이에 맞장구도 쳐야하며, 한 팔로는 아이를 안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이제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한 팔도 한 다리도 몰래 쉬는 일이 허락되지 않는다.
열시 반에서, 늦을 땐 열한시가 다 되어서야 모든 아이가 꿈나라로 향하고 내 몸에도 자유가 찾아온다. 물론 이것도 완전한 자유라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 집 막둥이는 위의 오빠들과는 달리 만 7개월을 채우고도 통잠을 자는 날보다는 수시로 깨는 날들이 많은 아기라 24시간 항시 대기조가 되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쓰다 보니 또 하소연 대잔치가 되어 버렸는데, 정말로 요즘의 내 인생은 참 굴곡이 많고 어렵다. 매일을 꾸역꾸역 생존해 내는 느낌이랄까.
그 가운데 분명 행복과 감동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벅찬 날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웃음 제조기였던 내 얼굴도 제 역할을 못한 지 오래고, 남편을 보면 괜히 심통이 났다. 나에게는 확실히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으니까.
아이들은 미성년자 이기에 그 대상이 될 수 없었고, 가장 믿을만한 나의 같은 팀 짝꿍을 쿵쿵 깨부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향한 예쁜 마음이나 짠한 마음은 줄어들 수 밖에….
그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자기 연민이 최고조에 달하자 행복이라는 단어는 내 삶과는 정 반대에 놓여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고작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이고, 약간의 생각의 전환만 내 안에서 일어나도 곧바로 꺼진 불이 켜진다는 사실을 어둠 속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간절히 ‘잘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가꾸는 시간도 갖고 싶고, 예전처럼 남편과 조잘대며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이들은 한 번 더 안아주고 싶었고, 인생 천 짝짜꿍을 시작한 막둥이에게는 더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내는 데 가장 큰 연료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과 남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여전히 미웠다. 또 그러면서도 정말로 다시 생기있게 살고 싶었다.
일부러 몸을 더 움직여 거실 청소에 열정을 더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밑반찬이라도 챙겨서 라면이나 시리얼 대신 제대로 된 쌀밥을 점심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남편과 틈이 날 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요즘 우리의 삶이 정말로 힘들고 빡빡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남편 역시 역대급으로 힘든 직장 생활을 이겨내고 있으니 우리 부부는 누구를 원망할 에너지조차 없었다. 사랑과 응원으로 우리의 벌어진 공간을 채우는 것 말고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대화를 선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잘 살아냅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제야 잔뜩 구겨져 있던 얼굴의 근육들도 긴장을 풀고, 양념 고추장에 계란프라이 하나 척 올려 먹는 간단한 점심밥이지만, 충분한 허기가 채워졌다. 그제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산소가 공급되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과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나는 다시 살아낼 힘을 얻었고, 더 간절히 살고 싶어졌다. 가족 이라는 배의 방향키가 오래간만에 제자리를 찾고 순항하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좀 더 쉬운 삷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같이 견디며 살아내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감사했고, 나는 엄마로 아내로 친구로 그리고 다니엘라라는 나 자신으로 정말로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