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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세월호 생존자의 일기

by 다니엘라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유가영 지음 / 도서출판 다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대한민국 국민 중 이날을 쉽게 잊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사고 이후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여전히 제삼자인 나에게도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먹먹한데 사고 현장에서 살아난. 생존자의 마음은 어떨까? 감히 상상조차 해볼 수가 없다.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아 준 고마운 생존자, 유가영 청년의 9년 간의 기록이다.


4월의 어느 날 들뜬 마음으로 떠난 수학여행길, 제주도 앞바다에 무사히 도착했어야 할 325명의 단원고 학생들은, 그중 단 75명 만을 이 땅에 남겨두고 바다에서 별이 되고 말았다.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끔찍한 사고였고 생존한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고였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가영 양은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는 일이 큰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어려운 마음을 꾹꾹 누르며 그날의 일을 글로 차분히 옮겨냈다. 기울어진 배에서 모두 안전하게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기다리던 중 친구의 권유로 헬기 구조를 받기 위해 갑판 위로 올라서게 된 이야기, 그리고 구조된 이후의 상황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다. 사고를 직접 겪지 않은 이들이 막연히 상상만 했던 시간과 마음들을 가영 양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밤 읽는 내내 마음이 쓰려 중간에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더는 읽을 수 없는 마음이 되어 책의 3분의 1 지점에서 읽다 말고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용기를 내 책을 집어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집어 든 책은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사고 후 9년이 지나 청년이 된 가영 양은 아직도 마음에 아픔이 남아있다. 알 수 없는 우울감을 겪기도 하고 삶의 의욕이 단번에 꺾이기도 한다. 사고 이후에는 생각도 행동도 느려지고 이전의 자신과는 너무 다른 시간을 살아내고 있기에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가영 양이다. 의지 만으로는 바로 잡아지지 않는 일상에 스스로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재학 중에는 스쿨닥터 선생님을 통한 상담을 받고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상담과 필요에 따라서는 약을 처방받아가며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다. 사고 이후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가영 양은 대학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자신과 같이 큰 트라우마를 겪고 마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다른 세월호 생존자 친구들과 함께 ‘운디드 힐러(상처입은 치유자)’라는 단체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만들어 보여준다거나 재난 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가영 양은 느리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속도나 그녀의 현재의 성과에 상관없이 난 그저 가영 양이 살아내 준 것이 한없이 고맙다. 앞으로 가영 양과 또 다른 생존자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이라는 두 글자는 꼭 갖고 살아 내기를 소망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내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서 주변을 살피고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과 참사에서 생존한 이들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일뿐이다.

오늘도 수많은 가영 양들이 이 좋은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며 밝은 삶을 살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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