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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유를 결심하며

by 다니엘라

2023년 6월 16일.

막둥이 생후 252일.

내 인생 마지막 모유 수유를 마쳤다.

아기에게 마지막 모유 수유라는 것을 먼저 말해주고 머리에 뽀뽀도 해주며 우리끼리의 마지막 수유 의식을 치렀다.

이걸로 정말 모유 수유는 끝을 맺은 거다.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예고도 없었지 정말로.

6월 중에는 혼합 수유에서 완전 분유로 갈아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정확히 어떤 날 수유를 끝내야 할지는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은 날이면 반드시 아이 앞에 마음이 약해지는 일들이 생겨났다. 하루 늦춘다고 달라질 게 없는 안온한 우리의 일상이었기에 단유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무기한 연장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단칼에 자르는 일은 우유부단한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고, 미련 덩어리인 나는 아이와의 정 때문에 또 그렇게 모유 수유를 중단하는 일이 섭섭해지기까지 했다. 단유를 하는 것에 대한 감정은 ‘시원섭섭’에 가까웠는데, 시원보다는 섭섭 쪽이 더 컸던 것이다.

잠에 취해 엄마의 가슴으로 마구 파고드는 모습도 귀엽고, 배가 고플 때면 머리를 도리도리해가며 젖을 찾는 모습도 너무나 소중했다. 이런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있는데, 이젠 정말 기억 속에만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렇게 미뤄오던 ‘행동의 날’은 뜻하지 않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우리 앞에 당도하고야 말았다.

급성 부비동염에 걸리게 되었다.

처음엔 급성 부비동염이라는 것도 모르고 호되게 온 감기 몸살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기로 병원을 찾을 때마다 수유 중이니 타이레놀 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다던 의사선생님들의 모습이 떠올라 이번에도 타이레놀을 꼬박 이틀이나 복용했다.

하지만 타이레놀은 두통만 잠시 쫓아주었을 뿐 코막힘과 가래를 해결할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며 안면 통증과 치통까지 증상이 추가되었다. 통증이 더 이상은 감당이 되지 않았고, 나의 증상들을 기반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무서운 이야기들이 잔뜩 기록되어 있었다.



결국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비교적 간단히 ‘급성 부비동염’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확실한 치료를 위해서라면 ‘제대로 된’ 쎈 약으로 인해 단유를 결정해야 할 것이고, 수유를 지속하기를 원한다면 ‘간단한’ 약만 지어주겠다고 하셨다. 간단한 약을 이틀이나 셀프 복용했음에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던 나에게 선택지는 단 한 가지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단유가 결정되었다.

부비동염의 완치와 단유의 상관관계를 수없이 되뇌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의 수유시간이 다가왔다.



약을 복용하기 전 마지막 수유를 했고, 그렇게 막둥이와의 252일간의 수유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동시에 내 인생의 모유 수유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넷째는 없을 테니까.



주어진 모유 양의 축복에 따라 아이 셋을 8개월 이상씩 모유로 키워냈다. 힘든 기억도 셀 수 없이 많지만 아기들에게 받은 사랑과 기쁨은 힘듦을 뛰어넘고도 남을 만큼 크고 웅장했다. 아이 셋에게 참 고마웠던 시간이다.



단유를 결심하고 행한지 하루가 지났다.

생각보다 후련하고, 생각보다 더 편하며, 상상 그 이상으로 홀가분하다. 내가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해야 더 사랑해 줄 수 있다는 착각의 늪에서도 드디어 구출이 되었다.



오랫동안 불편을 감수하며

아이의 사랑도 독차지했던,

축복된 시간의 끝에선 -

모유 수유 맘 다니엘라를 격려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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