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 이발도 마음대로 못하나요?
남편은 한 달에 한번,
그리고 아이들은 한 달 하고 보름에 한 번쯤 이발을 한다.
가끔은 아이들의 장발이 귀여워
이발을 제때에 하지 않고
두 달여가 될 때까지 버텨 보기도 한다.
엊그제 아이들을 데리고 이발을 다녀왔다.
첫째 아이는 본인만의 스타일이 확실해서
미용실에서도 어떤 머리를 할지,
그리고 얼마나 자를지를 아이와 확인해 가며 자른다.
아이는 늘 ‘뾰족하고 멋진’ 머리로 잘라달라는 주문을 한다.
아마 공룡메카드의 주인공 ‘나용찬’의 헤어스타일쯤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로 된 적은 없다.
엄마도, 미용사 이모도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아이는 차츰 깨달아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이와 충분한 대화를 거쳐
[앞머리는 일자에, 조금 뾰족하고, 너무 짧지 않은데 조금은 짧은 머리]로 성공적인 이발을 해낸다.
그리고 둘째,
둘째는 그냥 자연에 자신의 헤어 스타일을 내맡긴다.
아직까지는 요구하는 바도 없고, 그저 끝나고 아이스크림이나 젤리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을 하며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다.
둘째는 귀여움에 더 귀여움을 흩뿌려 주기로 한다.
앞머리는 층을 내지 말고 바가지로,
그리고 그냥 생긴 대로 귀엽게 라는 주문을 한다.
울산에 온 이후로 거의 쭈욱 같은 원장님께 우리 가족의 머리를 내맡기다 보니 똥떡같이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고 ‘알아서’ 이발을 해 주신다.
그리고, 둘째도 눈물 한 방울 없이 뚝딱! 이발 끝!
나온 작품들을 보니 내 눈엔 너무 귀엽고 예쁘다.
그런데 당분간 할아버지와는 영상 통화는 힘들겠다.
앞머리를 또 바가지로 잘라놨으니...
우리 시아버님은 아이들과 잘 놀아 주시고,
설거지 및 집안일들도 앞장서서 해 주시고,
며느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조곤조곤 잘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님 말씀을 잘 들어 드리고,
내 이야기도 조곤조곤 나누며,
아버님과는 한 달 반에 한 번쯤은 단 둘이서 짬뽕집 데이트도 할 정도로 살갑게 지낸다.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아버님께서 많은 것들을 눈감아 주시고, 좋게 봐주시는 덕이지 싶다.
그런 시아버님께서도 반복적으로 ‘잔소리’를 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이들의 헤어 스타일링.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의 이발에 관해서는 깐깐하신 분이다.
아이들의 짧은 머리를 좋아하시고,
앞머리가 조금 내려왔을 때는 2:8로 가르마를 태워
포마드 느낌으로 앞머리를 옆으로 스리슬쩍 넘기는 것을 좋아하신다.
상고머리인 듯 상고머리 아닌 머리를 좋아하신다.
요즘 꼬마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모히칸이나 바가지 머리 그리고 투블럭 등은 딱 잘라서, 싫어하신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아이들의 헤어 스타일링에 있어서는 나름의 견고한 세계관이 있다.
5-6세 까지는 귀여움을 강조해 주고, 7세부터는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 원하는 쪽으로 해주고 싶다.
사실상 7세쯤 되면 형님 얼굴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바가지를 씌워놔도 이전처럼 귀엽지가 않다.
그래서 7세쯤 되면 깔끔한 상고머리도 좋고, 포마드도 좋고, 뭐든지 괜찮다.
아버님과 나 모두 아이들의 헤어 스타일링에 있어서
각자의 단단한 세계관이 있다 보니,
아이의 바가지 머리에 관한 갈등이 자주 발생된다.
아이들이 바가지 머리로 나타나면,
심지어 화상채팅 중에도 바가지머리를 발견하시고는
“머리를 잘못 잘랐구나!” 하며 여러 번 말씀을 하신다.
반대로 아이들이 단정한 스포츠머리로 깎고 나타나면,
“머리를 시원하게 너무 잘 잘랐구나. 머리는 이렇게 잘라야지. 지난번엔 엉터리였어!” 하시며 칭찬인지 야단인지를 하신다. ㅎㅎ
처음엔 아버님과의 의견차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제 아들인데,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건가요...? 정말로요...?’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아버님께서 머리를 잘못 잘랐다는 지적을 해 주시면,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다음에는 깨끗하게 이발시킬게요.” 하면서...
그리고 미용실에선 눈물을 머금고
“앞머리 일자로 하지 말고, 확 짧게 쳐 주세요....”를 외쳤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용실에 갈 때마다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아버님의 기준에 맞춰 드리자니 섭섭했고,
내 마음대로 하자니 그러면 안될 것 같고...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시간이 약이며 사람은 서서히 상황에 적응해 간다.
딱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결국, 아버님과의 헤어 스타일링 쟁탈전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는 날이 오게 되었다.
한 번은 아버님이 원하시는 스포츠나 짧은 상고머리로,
그리고 또 한 번은 바가지 머리 및 내가 원하는 대로
‘스타일을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이발시키기 시작했다.
여전히 한 번은 칭찬을 듣고,
또 한 번은 야단을 맞는다.
그럼에도 이제는 귓가에 굳은살이 생겨
아버님의 칭찬도 야단도 비슷한 톤으로 들린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며느리가 되지 못해 죄송하지만,
나도 나름의 살 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무조건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보단,
이렇게 하는 것이
오래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아버님 사랑해요!” ^^)
그리고...
이번 달은,
엄마가 원하는 스타일로 이발을 하는 달.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은 당분간 할아버지와는
음성통화만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