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누며 사는 이야기
우리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에는
첫째 아이의 친구네가 살고 있다.
아이가 첫돌을 맞기 이전에
마트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를 같이 다니며
아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었다.
우리 아이 덕분에
나에게도 동네 친구(?) 비슷한 것이 생겼다.
아이 친구 엄마인 M언니는
이 커다란 아파트 단지에서
내가 유일하게 연락도 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픔이 있을 때
서로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쉽게 찾곤 한다.
몇 개월 전,
M언니네 남편분께서 치킨집을 인수하셨다.
그러다 보니 아들 셋을 키우며 가게일까지 돕는 M언니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M언니가 워낙에 부지런한 사람이라
큰 걱정 없이 응원만 해주고,
부지런히 치킨을 시켜 먹는 것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 해왔다.
그런데 최근,
M언니의 안색이 좋지 않다.
자주 만나지도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놀이터에서 만나는 언니가 늘 피곤해 보이고 이전보다 표정도 어두워보인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언니와 단 둘이 놀이터 토크쇼를 시작했다.
언니는 에너지 넘치는 아들 둘과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막내까지
아이들 케어만으로도 힘겨운데,
가게에서 필요한 모든 밑준비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고 했다.
양배추 샐러드를 썰고 담는 일부터,
사이드 메뉴인 탕수육용 야채 썰기,
그리고 주방을 정리하는 일 등.
어디 하나 언니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나오지...
놀이터 토크쇼 이후 마음이 많이 쓰였다.
털털하게 잘 웃던 언닌데,
최근에는 입가에 걸린 미소마저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전,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백숙을 끓였다.
M언니가 아이들 저녁 메뉴를 고민하기 전에
백숙을 좀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숙을 거의 다 끓여 갈 때쯤
갑자기 M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날은 더운데 아이들은 놀고 싶어 하니,
언니 집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오라는 전화였다.
잘 되었다 싶어 언니에게 저녁 준비는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집을 나섰다.
커다란 냄비에 백숙과 사랑을 담아,
1002호를 향해 출발했다.
막둥이를 제외한 꼬마들 넷과 엄마 둘,
우리는 참 맛있게도 먹었다.
닭뼈에 붙은 살코기를 하나하나 발라서
아이들 그릇에 넉넉히 올려주고,
뽀얀 닭국물에 밥을 살살 말아서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그러고도 한 냄비 가득 닭국물과
찢어놓은 닭고기가 남았다.
국물과 건더기만 옮겨 담아주고 냄비를 가져오려는데
M언니가 일단 냄비까지 두고 가라고 한다.
또 설거지를 해주려나보다 싶어
깔끔한 언니에게 못 이기는 척 냄비를 두고 왔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6시.
M언니로부터 카카오 메시지가 도착했다.
간밤에 집에 있는 야채들 넣어서 닭죽을 끓였으니
1층에서 받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역시 사랑을 되로 받고 말로 안겨주는
이 화끈함...
우리 식구들은 그날 아침,
닭죽을 먹고
사랑을 먹었다.
코로나로 혼란해진 이 시기에
내 아이, 가족들만 챙기고 건사하기에도 바빴다.
그러다 보니 최근 나의 시선은 1-2미터 이상 밖으로 향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입으로는 늘 사랑을 외치고
배려를 외쳐왔지만,
가까운 이웃사촌의 마음마저도 토닥여주지 못했던
최근의 내 삶을 돌아보며 슬그머니 반성을 해본다.
커다란 냄비가
메말라있던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이웃과 냄비를 주고받으며
따뜻한 이들이 아직 내 곁에 있음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더 좋은 이웃이 되기로
내 마음에 대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