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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

Day 82 -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페스로

by 바다의별

2017.04.24


마라케시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짓고, 나는 또 다른 도시인 페스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train-map-morocco-oncf.jpg 출처: http://www.moroccoholidayplanner.com


마라케시(Marrakech)에서 페스(Fes)까지는 지도 위에서 일직선을 그어보면 조금 더 가까워 보이는데, 기차 노선은 위쪽의 카사블랑카와 라밧을 거쳐서 빙 둘러가기 때문에 조금 더 오래 걸린다. 8시간가량 걸린 것 같다.

나는 2등석 표를 미리 사두었는데, 2등석은 사람이 많을 경우 서서 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짐을 둘 곳도 마땅치 않다고 해서 1만 원 차이밖에 나지 않는 1등석 표로 바꾸기로 했다.


1등석은 좌석이 지정되는 방식인데, 역 매표소에서는 기차에 탑승해서 바꾸라고 했다. 그래서 기차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다시 물어보니, 일단 1등석 좌석에 탑승하고 있으면 표검사를 할 때 표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왜 미리 해줄 수는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일단은 아무 칸에나 들어가 앉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들어와 앉았고, 나는 역무원이 오기까지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는 마라케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30년 전부터 호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40대나 50대 정도로 되어 보였다. 내가 1등석 표로 바꾸려는 사정을 설명하자, 모로코는 원래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며 앉아 있다 보면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얼마 전 부모님 댁을 리모델링하며 모로코 사람들과 일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동안 계속 호주에서 일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모로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혼자 여행하는 동안 큰일 없었냐고, 여자 혼자 다니기 쉬운 곳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일부 사람들, 특히 상인들은 다 무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같이 무례해져야 한다고 했다. "Be rude, don't smile, ignore and be angry. (무례하게, 웃지 말고, 무시하고, 화난 것처럼.)" 이날의 명언이었다. 안 그래도 전날 마라케시 상인에게 옷걸이로 맞고 나서 모로코를 빨리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모로코 사람 입으로 이런 얘기를 들으니 속 시원하고 기분이 좀 풀렸다.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니까 아저씨가 끝까지 나에게 밖에 나가서 그렇게 웃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역무원이 와서 내 표를 새로 끊어주었고, 나는 다른 좌석을 배정받아 자리를 옮겼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잠이 들었는데, 꽤 오랜 시간 계속해서 자고 있으니 옆자리에 있던 또 다른 아저씨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혹시 어디서 내리냐고, 너무 오래 자고 있어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을까 봐 그랬나 보다. 내가 내리는 종점까지는 약 1시간 정도 남았고,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택시회사 겸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내 여행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며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모로코에 있는 동안 사기를 당하지 말라며 택시비를 포함해 각종 시세를 알려주었다. 특히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잘 깎아주지 않으니, 어디까지 걸어가서 타면 되는지까지 설명해주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아저씨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나에게 빈 종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없다고 했더니 작은 명함을 꺼내 뒷면에 누군가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페스에서 내리는 사람을 픽업할 일이 있는데 직원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자신이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종이가 너무 작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 두고 간 봉투가 있길래 나는 그걸 뜯어 펼쳐서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랬더니 나에게 여행사에서 같이 일하자며, 자기 엄마 집에 빈방이 많다면서 숙소 제공에 월급도 주겠다고 했다.ㅎㅎ 그래서 나는 여행을 마치고 모로코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면 연락 주겠다고 했다.



# 사소한 메모 #

* 안 좋은 일은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 함으로써 잊어버린다. 유쾌한 사람을 만나면 그날 하루가 유쾌하다.
* 그리고 좋은 꿈 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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