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8 -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Victoria Falls)
2017.05.20
래프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며칠 전의 일이었다. 빅토리아 폭포에 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가장 많이 나온 액티비티는 번지점프와 잠베지(Zambezi)강 래프팅, 헬리콥터 라이드였고, 잠베지 강 선셋 크루즈 같은 것들을 하고자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한 친구들은 전부 래프팅을 하겠다고 했고,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래프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했던 래프팅은 15년도 더 전에 영월 동강에서 한 것이어서 평소에도 겁이 많은 나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곳은 심지어 가장 물살이 센 5급 래프팅이라 더 겁이 났던 것 같다. 빠르게 철렁 내려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급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마지막까지도 계속 고민을 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자넬(호주)이 자신은 수영도 못 하는데 하는 거라면서, 혼자만 겁이 나는 게 아니니 서로 의지하며 같이 하자고 했다.
결국 나는 전날 저녁에 래프팅을 함께 예약했고, 한 보트에는 8명이 정원이라 우리 팀원만으로 하나의 보트가 채워졌다. 자넬&크리스(호주), 에리카&나탈리(캐나다), 크리스틴&패트릭(캐나다&호주 커플), 안드레아스(스페인), 그리고 나까지. 다른 보트는 각기 다른 투어 팀에서 온 사람들로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함께 노를 저어야 했으니 우리의 팀워크가 더 좋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보트마다 한 명씩 전문 요원이 맨 뒤에 앉아 있는다.
차를 타고 래프팅 장소로 가는 길, 무슨 동의서 같은 것에 서명을 하며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래도 나는 수영을 할 줄 아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와 자넬이 서로를 안심시키는 것이 웃겼는지, 크리스는 옆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리겠다며 농담을 했다.
한참을 차를 타고 가서 내렸다. 우리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는데,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이었다. 래프팅을 하기 위해서는 절벽에 가까운 곳을 걸어내려가야 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구명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노를 무겁게 든 채로, 거의 90도에 가까운 길을 하이킹해야 했다. 심지어 어떤 구간은 바위를 알아서 걸어 건너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여기서부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보트에 탑승. 출발하자마자 다른 보트는 첫 번째 급류에서 뒤집어졌다. 다들 운 좋게 재빨리 보트 위로 올라탄 것 같았지만, 한 명이 보트에서 조금 멀리 떠내려와 있었다. 뒤따라가던 우리는 무사히 급류를 지나고, 물에 빠져있던 그 친구를 구조해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급류가 지난 후 원래 보트로 옮겨주었다.
우리는 서로 박자가 굉장히 잘 맞는다고 서로 뿌듯해하면서, 힘차게 몇 개의 급류를 쉽게 지나갔다. 팔이 아팠지만 나는 전혀 무섭지 않고 재미있어서 신이 났다. 자넬은 아예 수영도 못 하고 래프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겁이 난다며 노를 젓지 않고 맨 앞에 보트를 붙잡고 있었는데, 자넬도 즐거워 보였다.
그랬던 것도 잠시, 4급 정도의 급류를 마주쳤고 우리는 이번에도 무사히 통과했다고 생각한 순간, 보트가 뒤집어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갈 통과 했네, 하는 찰나에 어느새 내 머리 위에 보트가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몇몇 친구들은 서로 팔다리가 엉켜있었다는데, 나는 그런 것도 느끼지 못했고 빨리 숨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몸부림을 치며 보트를 벗어났다. 그리고 봤더니 어느새 나는 보트 반대편으로 빠른 속도로 떠내려 가고 있었다. 물살은 세서 계속 물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해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패닉 상태가 되었다. 왼쪽 앞에는 또 급류가 있어 빨리 오른쪽으로 헤엄을 쳐야 했지만, 아무리 팔다리를 저어 보아도 수영이 되지를 않았다. 물살이 너무 세서 계속 떠내려갈 뿐이었다.
금방 힘이 빠져버렸고 그렇게 계속 물에 떠밀려가던 중, 구조해주는 작은 보트가 와서 겨우 보트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보트 앞을 잡고, 크리스는 보트 뒤를 잡았다. 그 상태로 다음 급류를 탔다. 붙잡고 있었지만 위아래로 보트가 넘실거릴 때마다 나는 계속 물속에 담가져서 수면 위아래를 넘나들었고, 이미 힘이 굉장히 빠져있던 상태여서 숨을 쉬고 참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가 손잡이를 놓치고 또다시 떠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나는 크리스가 떠내려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는데 그 아이는 웃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웃겼다.
급류가 지나고, 나는 다른 보트에 의해 건져졌다. 그 보트에는 패트릭이 나보다 먼저 타고 있었는데, 어찌나 쌩썡한지 노까지 받아서 젓고 있었다. 우리 보트는 나와 크리스, 패트릭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이 열심히 젓고 있었다. 잠시 후 크리스까지 건져지고, 다음 지점에서 우리는 무사히 원래 보트로 되돌아갔다.
이다음부터는 재미가 조금 줄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알아서 물에 빠질 때의 공포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보트 밑에 들어가 숨을 못 쉬게 되는 것, 그리고 이렇게 물살이 센 곳에서는 나 정도 체력과 실력으로는 수영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아버려서 무서웠다. 추운 것도 모르겠고 그냥 무섭고 진이 다 빠졌다. 래프팅도 겨우 마치는 것도, 다시 하이킹해서 올라가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도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해서 뜻깊었던 것 같다. 여행 내내 무용담도 되었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씻고 조금 쉰 뒤, 나탈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저녁식사 겸 술을 마시러 나갔다. 안드레아스는 이미 친구들과 함께 떠났고, 에리카와 나탈리, 크리스틴과 패트릭은 다음날 떠날 예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끼리 생일 축하 파티 겸 송별회를 했다. 악어, 쿠두(영양 종류), 얼룩말 등등 다양한 고기를 먹으며 칵테일 한잔씩.
물론, 식사를 하며 가장 열띠게 토론한 것은 '우리의 보트가 뒤집힌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였다.
다행히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래프팅 중에 직원들이 찍어준 사진과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내 노트북으로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상을 함께 보기로 했다. 패트릭의 잘못일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까 누구 잘못이랄 것도 없이, 급류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생각해 모두들 노 젓기를 거의 동시에 멈춘 바로 그 순간에, 순식간에 배가 뒤집히면서 다 같이 한쪽으로 쏠려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계속 노를 저었어야 했는데 다 끝났다고 생각해 다 함께 멈추어버린 탓이었다. 이로써 패트릭은 무죄를 입증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마지막 밤은 전날 밤이었지만, 이날 실질적인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에는 새로운 가이드, 새로운 요리사, 새로운 운전사를 만나고 또 새로운 인원을 맞이해 새로운 투어가 시작될 것이었다. 정든 친구들과 정말로 헤어질 생각을 하니 눈물이 살짝 고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씩 안아주며 다음을 기약했다.
# 사소한 메모 #
* 보고 싶은 사람들: 가장 먼저 만났던 나탈리와 에리카, 다정해 보여 함께 즐거웠던 크리스틴과 패트릭, 항상 활기 넘쳤던 안드레아스와 베아, 그리고 그 친구들 + 다음날에도 만났지만 언제나 재치 있던 가이드 윌, 천사 같은 요리사 무냐, 우리의 귀여운 운전사 프란스까지
* 오늘의 교훈: 남 탓하지 말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