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4 - 잠비아 사우스 루앙가(Luanga) 국립공원
어쩌다 보니 글이 며칠을 건너뛰어버렸다. 111일째에 우리는 보츠와나에서 잠비아로 넘어갔고(배를 타고 건넜는데, 옆에서 대우건설이 카준굴라 교량 공사를 하고 있어 괜히 뿌듯했다), 112일째와 113일째에는 한없이 도로를 달렸다. 우리들만의 이야깃거리는 계속 있었지만 따로 쓸만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남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 많이 달려야 6시간 정도였는데, 동부 아프리카로 계속 올라갈수록 하루 종일 차만 타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장 오래 탄 건 나중에 말라위에서 탄자니아로 넘어갈 때, 그리고 탄자니아 내에서 이동할 때였는데 하루 12~13시간 동안 2시간에 한 번씩 10분간 쉬는 것(수풀에서 볼일 보기) 말고는 차 안에 갇혀있었다. 이때 이동거리가 고작 700km 안팎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프리카 도로 사정이 와 닿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트럭으로 지나가기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잠비아와 말라위는 원래 내 계획에 없던 나라들이다. 원래 개별 여행을 계획했던 나는 보츠와나를 여행한 뒤 빅토리아 폭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렝게티로 이동하려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했었다면 나는 진짜 아프리카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짐바브웨는 사정이 굉장히 좋지 않은 국가이지만(화폐가 붕괴되어 미국 달러를 쓴 지 오래) 우리가 머물렀던 빅토리아 폭포 주변은 관광지라 실제 짐바브웨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오카방고 델타에서 보츠와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맛보기로 볼 뿐이었을 테다.
하지만 이렇게 차로 지나가니 머물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 진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잠비아의 한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작은 마을들과 그 속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프리카가 얼마나 도움이 많이 필요한지를 절실히 느꼈고, 마음이 아팠다.
몇 번 이렇게 길가에 이것저것 세워놓고 점심을 먹었던 적도 있는데, 소를 몰고 지나가는 아이를 보기도 했다. 아이는 1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동생을 함께 데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요리 보조 담당이었고 다른 친구들은 의자에 앉아 식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평소 워낙 많은 동물들을 봐와서 그런가 소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재미있었다.
루앙가 국립공원에 도착한 날 밤, 캠핑장이 굉장히 좋았다. 앞에는 물이 있는데 하마와 악어들이 살고 있어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텐트를 쳐둘 때도 밤에 땅 위로 올라올지 모를 하마에 대비해 하마들이 충분히 그 사이를 지나갈 수 있도록 텐트를 서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고 했다. 밤 사이 하마에 깔려 죽고 싶지 않다면.
인터넷이 평소보다 빨라서 우리는 모두 옹기종이 둘러앉아 밀린 인터넷을 하였다. 수영장이 좋아 보여, 다음날에는 수영도 하기로 했다.
밤새 하마 소리와 원숭이 소리로 굉장히 시끄러웠다. 특히 원숭이 소리는 날카로운 데다, 나뭇가지를 건너 뛰어다니는 소리까지 드려서 더 시끄러웠다. 1시간에 한 번씩은 깬 것 같다.
텐트 천장 일부를 방충망만 두고 공기가 통하도록 열어둘 수가 있다. 나는 낮에는 창문과 천장을 그런 식으로 열어두다가도 잘 때는 왠지 신경 쓰여서 닫아두는 편인데(물론 안에서만 밖이 보이고 밖에서는 텐트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캐롤과 마이크는 열어두고 자는 듯했다. 이날 새벽 마이크는 원숭이 울음소리에 깼다가 천장 구멍을 통해 원숭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는데, 느낌이 이상해 얼른 닫아버렸다고 한다(안에서 닫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빗소리가 났다고... 그때 깨지 않았다면 원숭이 오줌을 맞을 뻔했다는 이야기.
모두들 잠을 제대로 못 잔 정신없는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사파리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공원 내부에 들어가기 전에 코끼리를 보았다.
다리를 건너는데, 아래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하마 두 마리를 발견했다. 하마는 여태껏 제대로 보지 못해 늘 아쉬웠던 동물인데, 이날만큼은 달랐다.
다리를 건나 우리는 또 와일드독 무리를 발견했다. 보기 어렵다는 와일드독을 우리는 참 여러 번, 여러 마리를 보았다.
사자 역시 보기 어렵다는데 우리는 대체 무슨 운인지 처음부터 가는 곳마다 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파리 트럭들이 옆에 줄지어 서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갈 길 가서 볼일을 보는 사자의 위엄.
저 멀리 암사자들이 지나가고,
수사자는 우리를 노려보았다.
차를 타고 사자들이 갔을 법한 길목으로 가보니, 숲 속에서 수사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번 쓱 노려보고서는
앞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옆에는 암사자들도 있다.
목걸이를 한 암사자는 이곳 공원을 관리하는 측에서 달아놓은 것이다. 이걸로 사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사자가 사람을 위협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내 사자가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 사자를 찍으며 신난 내 모습! 친구가 웃으면서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내 팔 때문에 그러나 했더니 카메라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쳐 있었다. 신난 눈매.ㅎㅎ
오랜만에 얼룩말도 보았다.
얼룩말은 검은색에 흰 줄이 있는 것인지, 흰색에 검은 줄이 있는 것인지 늘 궁금했는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검은색 바탕에 흰 줄이 맞다고 한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제작한 후드티를 입고 나왔다. 반팔 티셔츠 또는 긴팔 후드티인데, 나는 후드티를 골랐다. 버건디 색도 내가 고른 것! 팔에는 우리가 방문하는 국가들의 국기를 넣었고, 뒤에는 트럭킹 루트를 넣었다. 여러 가지 디자인들을 토대로 전부 각자 직접 구성하는 것이다.
아무튼, 잠시 서서 티타임을 가지고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오늘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코끼리 무리를 보았다.
나무들이 다 사라진 것은 코끼리들이 다 먹어버려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곳에 남아있는 것일까.
트럭에 개구리가 무임승차했다며 다들 귀엽다고 구경하는데,
반대편에 하마들이 보였다. Nile cabbage라는 이름을 가진 물에서 자라는 풀들을 뒤집어쓰고.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마들이 너무나 귀여워서, 다들 목소리에서 신난 것이 느껴졌다.
하마도 덩치가 굉장하지만, 새끼들은 언제나 귀엽다. 큰 하마들 옆에 사이사이에 껴있는 새끼들이 사랑스러웠다. 하마는 낮에는 물속에서 지내고 밤에만 뭍으로 걸어 나오기 때문에,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를 통해서는 대부분 물속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끼리와 기린을 마지막으로, 드라이브를 마쳤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모두들 점심을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하마가 있다며 소리쳤다.
정말 큰 하마 한 마리와 새끼 하마 한 마리가 나란히 물 밖에 나와 누워있었다. 이렇게 물 밖에 있는 하마를 본 건 처음이라 다들 호들갑이었다.
너무 가만히 있어서 죽은 것 아니냐고 걱정한 것도 잠시, 금세 다시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낮에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고(오른쪽 사진은 전날 밤 사진), 이동을 했다. 그러나 이날 밤 캠핑장에는 수영장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전날 밤에는 고양이가 돌아다녔는데 그곳에는 강아지가 여러 마리 있었다는 것.
딱히 놀거리가 없으니 우리끼리 수다를 떨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만다(호주)는 국제앰네스티에서 근무를 해서인지 정말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한 관심도 많고 의견도 많았다. 우리는 늘 아만다가 꺼낸 주제로 다양한 토론을 했다. 동물의 권리, 육식의 필요성, 동성애자, 미성년 노동 관련 등등. 아만다가 추천해준 좋은 책들도 많아서, 천천히 읽어보고자 한다.
# 사소한 메모 #
* 사자는 언제 봐도 위엄이 넘친다. 아직까진 크루거에서 처음 보았던 사자가 가장 잘생겼던 것 같지만, 그래도 사자는 늘 멋있다. 설사 볼일을 본다고 해도.
* 기대하지 않았던 루앙가 국립공원이 의외로 알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