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66 - 네덜란드 잔세스칸스(Zaanse Schans), 잔담
2017.07.17
네덜란드는 첫인상부터 좋았다. 공항도 깔끔했고 기차역도 깔끔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네덜란드 친구들의 영어가 훌륭했던 건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국민 모두의 능력인가 보다.
영어도 잘 통하고, 교통도 편리하고, 모든 곳이 깔끔한 이곳은 대신 살인적인 물가가 부담스럽다. 암스테르담 시내 호스텔 가격은 다른 나라 호텔 가격과 비슷해서, 나는 근교에 위치한 한인 민박을 예약했다.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정자역 가는 정도의 거리인데 지하철이 아니라 모두 기차라서 교통비도 꽤 비싸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할인권을 구입했지만 앞으로의 여행 경비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민박집은 깨끗했고, 주인들도 좋고 손님이 별로 없어 지내기 편했다. 도착 첫날 나는 같은 방을 쓰는 언니와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하이네켄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는데, 마지막 날까지 이런 저녁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난 다음날, 무얼 할까 고민하던 나는 날씨가 좋으니 잔세스칸스(Zaanse Schans)에 가보기로 했다. 잔세스칸스는 암스테르담 근교의 유명한 풍차마을이다. 이런 곳일수록 날씨에 따라 풍경이 많이 달라질 것 같아서, 이렇게 하늘이 예쁜 날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기차역에서 내려 풍차마을로 향하는 길, 곳곳에 보이는 아기자기한 집들마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구름에서 무언가 위로 솟구쳐 나오는 듯, 구름이 하늘에 예쁘게 칠해져 있던 하루. 특히 보르도에서부터 계속 흐린 날만 봤던 나는 오랜만에 맑은 날씨를 만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사람도 광합성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릴 적 '먼 나라 이웃나라'를 보며 머릿속에 그려진 네덜란드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풍차가 아니어도 잔세스칸스라는 마을 자체가 굉장히 예뻤지만, 실제로 잔세스칸스에 상주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을이 아닌 상업화된 관광지일 뿐이라는 것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나 또한 한번 발을 들인 뒤 되돌아 나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던 건, 이곳의 규모가 커서가 아니라(굉장히 작다) 그만큼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그림 같았기 때문이다.
일부 풍차는 내부 입장이 가능해 위에 올라가 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해보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걸 했다. 아이스크림 먹기! 우유 아이스크림은 잔세스칸스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본다는 명물이다.
아이스크림이 유난히 맛있는 건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네덜란드가 낙농업이 발달해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절반 크기 정도 되는 네덜란드는 언덕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전국이 평지이다. 그렇다 보니 낙농업이나 화초 재배 등이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상징은 풍차, 튤립, 나막신이 아닐까. 이번에는 시기적으로 전혀 맞지 않아 처음부터 포기했지만, 언젠가는 튤립 축제에도 가보고 싶다. 매년 3~5월에 쾨켄호프에서 튤립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다음에는 봄에 가야겠다.
그래도 나막신만큼은 지겹도록 보고 왔다. 잔세스칸스 한쪽에는 나막신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무지개색의 실제 사용 가능한 나막신들과 기념품용으로 제작된 열쇠고리 크기의 나막신들도 있었다.
나막신은 단단해서 발을 잘 보호해준다고 한다. 여름에는 땀을 흡수해주어 쾌적하고 시원하며,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나는 잔세스칸스를 떠나기 전, 가게 밖에 전시되어 있는 포토존 나막신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기 전에, 잔담(Zaandam)에 들러보았다. 잔담은 일명 '레고 마을'이라고 불린다. 잔세스칸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보고는 돌아가는 길에 꼭 들르기로 마음먹은 곳이다.
건물들의 형태나 색채가 범상치 않아 레고 마을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어릴 적 만들던 레고 마을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물도 흐르고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해서 예쁘기는 했지만, 사실 오래 머물며 구경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기차 안에서 보았던 것이 전부였다.
덥기도 하고 암스테르담도 얼른 구경하고 싶어서, 잔담에서는 사진 몇 장만 남기고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네덜란드 여행의 기분 좋은 첫 시작이었다.
# 사소한 메모 #
* 이날 나는 네덜란드에 또 한 번 감동했다. 전날 구입했던 교통 3일권이 인식이 안 되어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물어보니 2일권으로 바꾸어주었다. 나는 당연히 하루는 이미 사용했으니 새로이 2일권을 건네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전날 구입한 3일권을 2일권으로 교환한 뒤 그 차액을 나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하루는 이미 사용했다고 했는데, 알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불편을 겪은 것에 대한 보상이었나 보다.
* ♬ 악동뮤지션 - 인공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