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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누리지 못한 것들

Day 166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Amsterdam)

by 바다의별

2017.07.17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를 떠나 잔담을 거쳐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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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장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ouse)으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건 고흐 미술관과 안네의 집이었는데, 고흐 미술관은 언제든 예약을 해서 쉽게 입장이 가능하지만 안네의 집은 내가 머무는 기간 동안은 이미 예약이 다 차서 어차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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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는 시간대별로 사전 예약한 방문객들만 받고, 3시 반부터는 현장에서 입장 티켓을 구매해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역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트램에 올라 오후 3시 정도에 맞추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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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에서 내렸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장 30분을 앞둔 대기 줄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던 것이다. 수백 명이 서있는 줄은 옆의 성당을 한 바퀴 빙 둘러 길게 'ㄷ'자를 만들었다. 나는 2시간이 넘도록 서서 기다렸다.

DSC04398001.JPG 안네의 집/박물관 입구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해 오로지 안네의 흔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곳곳에는 그녀가 매일 써 내려간 일기장 속 구절들이 붙어있었고, 어린 안네의 방은 벽면에 붙은 사진들까지 재현되어 있었다. 그녀의 가족들이 몰래 숨어 다니던 자그마한 비밀 통로도 엿보았고, 위험해 보일 정도로 가파른 계단도 걸어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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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 속에서 알 수 있었던 건, 어느 날에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이야기가 등장했다가 또 어느 날에는 오전에 일어난 유쾌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새삼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린 안네와 그녀의 가족이 느꼈을 공포가 더 크게 다가왔다.

DSC04401001.JPG 좌측 아래 초록색인 건물이 안네가 숨어 있던 집, 맨 우측은 박물관 입구

전시 마지막에는 그녀의 일기장을 세상에 알려 작가가 되고 싶던 그녀의 꿈을 이루게 해 준 아버지의 인터뷰가 있었다. 아내와 딸 둘을 모두 잃고 이곳에 돌아와 안네가 생전에 절대 보여주지 않던 일기장을 이제야 한 장 한 장 펼쳐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눈에 맺힌 눈물방울은 그렇게 평생 박혀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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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her would-haves are our opportunities.


전시 벽면에 쓰여 있던 이 글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나는 이미 그녀보다 14년을 더 살았고, 그만큼의 생이 있었고, 그만큼의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매일 눈을 뜨고 맞이하는 새로운 하루, 밖에서 자유롭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시간, 원하는 곳을 여행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 이 모든 것들이 16년의 짧은 시간만을 머물다 간 그녀에게는 단 하루라도 간절했던 것이리라.


DSC04427001.JPG 여행 기간 내내 나와 함께 한 위안부 소녀 배지, 그리고 안네의 집 티켓
# 사소한 메모 #

* 그 시절 괴로웠던 소녀들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그녀들이 있었다.
*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그 어떤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래서 당신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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