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Me too)'인 이유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의 용기 있는 폭로를 시작으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이다. 매일 새로이 폭로되는 사건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가해자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피해자들은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이슈에 그치지 않고 커다란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병폐를 바로잡는 첫걸음으로서, 우선 피해자가 늘 당당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껏 피해자들이 혼자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잃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멀쩡히 생활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자신의 일상도 포기해야 했다.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가해자들에게 면책 사유를 주어 피해자들이 고개 숙이게 만든다.
<2차 가해의 예>
가해자를 옹호함: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등
피해자를 탓함: '허리를 비틀면 성관계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실제로 조사 중 어느 경찰이 한 말)', '왜 그 자리에서 싫다고 안 했어?(불이익 또는 구설수 등 피해자만 피해 보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은 말)', '먼저 유혹한 거 아니야?', '그러게 왜 모텔에 따라갔어/혼자 여행을 갔어/밤늦게 같이 술 마셨어?' 등
피해자의 구체적 피해 사실에 집중: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떤 성추행, 성폭행을 몇 차례 당했는지를 가십 수준으로 캐내고 알려서 타인의 아픔을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것
피해자에 대한 이상한 동정과 편견: '직장 상사를 고발했으니 더 이상 회사 못 다니겠네', '안 됐다, 창피해서 평생 어떻게 살지', '결혼 못 하겠네' 등 피해자가 부끄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반대로 피해자가 떳떳하면 피해 사실이 거짓일 거라고 의심하는 것)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 '꽃뱀'이라거나, 정치적 음모라거나 하는 등의 음모론(실제로 이런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자꾸만 이런 프레임을 제공해서도 안 됨)
피해자의 외모, 사생활 및 성생활에 대한 편견으로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음: '못생긴 여성은 피해자일 리가 없다(가해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은 피해자가 될 수 없다', '성형한 여성은 예뻐해달라고 한 거니까 가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등
여성 가해자에 의한 남성 피해자는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음: 체격적 이유로 남성은 충분히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오히려 성추행/성폭행을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피해자의 신상을 보호하지 않음: 피해자의 직장 및 직위 등을 짐작 가능하게 하는 것, 주변인이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는 것
서지현 검사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면서, 다른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말이 필요한 것만으로도 이 참담한 현실이 와 닿는다.
우리는 그동안 그렇게 배워왔다. 남자들의 성희롱은 그저 농담일 뿐이고, 성추행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잘못이고, 성폭행은 '발랑 까진' 여자가 처신을 제대로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그래서 친구의 성희롱을 지적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었고, 직장 상사의 성추행을 고발하면 조직의 배신자가 되었고, 동급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면 꼬리 친 여자가 되었다.
법적 처벌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더라도 결국 판결을 내리는 입장은 남성 중심의 권력층이다. 성적 접촉에 대해 사전 동의가 없었음에도 피해자가 충분히 거부했는지, 정말로 피할 수 없었는지를 세세하게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는 경찰 및 검찰의 2차 가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가벼운' 성추행과 성희롱은 그 처벌도 매우 가볍고, 한 사람의 영혼을 살해하는 성폭행조차도 길어야 징역 10년 남짓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처벌이 내려지는지, 그리고 신원을 밝힌 피해자들이 보호를 받게 되는지를 우리 모두가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다수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사나 권력계층뿐 아니라 일반인 가해자 사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곪아있어 곪은 줄도 몰랐던 것들이 이제야 터지고 있다. 여성을 동등하게 보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 중심의 기득권층과 그 집단에 공감하는(혹은 무관심한) 방관자들에 의해 더 깊은 곳으로 숨어야 했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의 용기 있는 고발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