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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Apr 22. 2018

펭귄들과 눈높이를 맞춰

Day 217-호주 멜버른 근교 필립아일랜드(Phillip Island)

멜버른에 도착한 셋째 날에는 필립 섬(Phillip Island)에 갔다. 귀여운 펭귄들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이곳을 계획했다.

펭귄들은 낮에 바다에서 물고기 사냥을 하고, 밤에 육지로 돌아온다. 밝은 낮에 육지에 있으면 여우 등 천적들의 공격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투어 버스 안에서 본 <오드볼(Oddball)>이라는 영화에서는 여우의 공격으로 펭귄의 수가 줄어든 어느 호주 마을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오드볼이라는 이름의 괴짜 대형견을 이용해 여우를 쫓아내고 펭귄을 지켜냈다는 실화 바탕의 해피엔딩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필립 섬의 펭귄 퍼레이드(Penguin Parade)는 상당히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바다에서의 일과를 마친 뒤 저녁에 돌아오는 펭귄들의 퇴근길은 정말 퍼레이드라도 하는 것 같았다. 뒤뚱뒤뚱 줄지어 끝도 없이 펭귄들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펭귄의 종류는 쇠부른펭귄(Little penguin, Fairy penguin)으로, 그 몸집이 굉장히 작아서 요정 펭귄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보아도 요정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기념품 가게에서 나무로 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펭귄을 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가는 길 옆에는 펭귄 집들도 여러 개 지어져 있었다.

길을 걷다가 멀리 야생 왈라비(wallaby)도 여러 마리 보았다. 너무 재빠르게 사라져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캥거루인가 했는데 이곳 직원이 왈라비라고 알려주었다.

해변가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이곳은 가장 저렴한 가격에 펭귄을 볼 수 있는 곳(일반석, General viewing)이다. 바다 바로 앞이다 보니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는 펭귄들을 곧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펭귄들은 어두워진 후에야 육지로 돌아오므로, 어둠 속에서 멀리 있는 펭귄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저렴한 곳은 펭귄들이 집을 찾아가는 길목 쪽에 위치한 장소인데, 나무 조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자리(펭귄 플러스 프리미엄석, Penguin Plus Premium viewing)이다. 어둡더라도 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가격 대비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이왕 보는 거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장 비싼 구역을 예약했다.

나무 조망대 바로 아래에는 내가 예약한 가장 비싼 구역(지하석, Underground viewing)이 있다. 반지하라서 창가에 서 있으면 고개만 빼꼼 땅 위로 올라온다. 그러면 유리창 너머의 작은 펭귄들과 눈을 마주칠만한 높이가 된다. 바다에서 펭귄들이 헤엄쳐 나오는 것은 실시간 영상으로 내부 화면을 통해 볼 수 있고, 창밖으로는 집을 찾아가는 펭귄들이 수백 마리 줄지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을 예약한 건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잘한 선택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펭귄들 수백 마리와 눈이 마주친 일은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까이에서 펭귄들의 눈, 부리, 날개와 작은 움직임들까지 세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어떤 펭귄들은 뒤뚱뒤뚱 걸어가다 멈추어 우리를 신기한 듯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쿵'했다.

그러나 펭귄 사진은 없다. 엽서로 대체하는 수밖에. 펭귄을 보는 구역에 들어가는 순간, 특히나 어두워진 순간 모두 사진 촬영 금지이기 때문이다. 펭귄은 매우 예민해서 사진 촬영할 때 나는 셔터 소리나 실수로 누르는 플래시 불빛들이 굉장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이 반복되면 더 이상 이 길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조용히 플래시를 안 터뜨리고 사진을 찍으면 되지 않나 싶지만, 어디든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한 명쯤 등장하기 마련이므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처사일 거라 생각한다. 

이곳이 정말 잘 관리되고 있다고 느낀 건, 구경을 마치고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펭귄 한 마리가 사람들이 걷는 산책로 위로 올라왔는데, 관리원들은 펭귄은 건드리지 않고 사람들을 펭귄으로부터 멀리, 양쪽 어둠 속으로 조용히 밀어 넣었다. 자연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두웠지만 산책로는 사람들이 걸어 다녀야 해서 은은한 조명이 있었다. 사람들 무리가 펭귄 눈에 띄면 펭귄이 무서워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안 보이게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리고는 모두를 조용히 시켜 펭귄이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길을 다시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최대한 펭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시설을 만들고 그 환경을 유지시키려는 관리인들의 마음이 펭귄들의 사랑스러움만큼이나 따뜻했다.

위에서 보는 프리미엄 뷰잉과 반지하에서 보는 언더그라운드 뷰잉 (사진출처: grayline.com.au)

누구든 이곳에 간다면 나는 무조건 언더그라운드 구역을 추천하고 싶다. 언더그라운드를 선택하면 나중에 프리미엄석에도 가볼 수 있는데, 확실히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달랐다. 위 사진만큼 주위가 밝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왕 보는 거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지금도 나를 바라보던 펭귄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 사소한 메모 #

* 뒤뚱뒤뚱, 너무나 사랑스러운 펭귄들. 사진으로 남길 수 없어 기억에 더 선명하게 새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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