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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들

Day 220-호주 힐스빌(Healesville Sanctuary)

by 바다의별

아프리카에서부터 크리스와 자넬이 꼭 직접 데려가 주고 싶다던 곳이 있었다. 바로 힐스빌 생츄어리(Healesville Sanctuary)이다. 호주 동물들만 모아둔 동물원인데, 야생 동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일종의 보호 센터이기도 하다. 호주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땅이 자랑하는 다양한 자연 풍경들과 호주의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호주만의 독특함에 있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호주 여행을 본격적으로 계획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 중 하나는 호주 대륙의 크기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의 크기와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이뮤(Emu)

이날은 자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크리스의 여동생인 앨리슨과 함께 다녔다. 앨리슨은 두 아들, 2살 배기 더스틴과 1살 안 된 헨리를 데리고 왔다. 자넬과 앨리슨은 아주 어릴 적부터 붙어 다녔고 고등학교 진학 후부터 크리스와 크리스의 친구들도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어느 날 게임을 통해 자넬과 크리스가 부부 역할을 하게 되었고 농담처럼 서로를 부인, 남편으로 부르다 실제 연인이 되어 10년 연애한 끝에 결혼한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호주의 특별한 동물들을 본다는 생각에 나는 잔뜩 신이 났다. 자넬은 내가 더스틴보다 신나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날지 못하는 새인 이뮤를 보고, 나무 위에 있는 코알라들을 보러 갔다. 비가 와서인지침이라서 그런 건지 코알라들은 잠들어 있었다.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 잠자는 것 말고는 별로 하는 일이 없다는 코알라들은 꼼짝 않고 한 자세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나중에 브리즈번에 있는 코알라 동물원에 가서 알게 된 것인데, 유칼립투스에 마약 성분이 있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 코알라들이 게을러서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에 나른해지는 어떤 성분이 있으리라 잘못 추측한 것이지, 실제로는 유칼립투스가 주는 에너지가 워낙 작아서 코알라가 많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귀여운 코알라들이 잠들어 있어서 아쉬웠지만 나중에 브리즈번에 가서 다시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캥거루들을 보기 위해 서둘렀다.

자넬이 나를 위해서 캥거루에 먹이를 줄 수 있는 걸 예약해두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인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우리끼리 놀았다. 캥거루의 먹이인 길쭉한 풀을 한두 개씩 손에 들고 먹여주는 것이었는데, 빨리 받아먹고 싶었는지 자꾸 발로 내 다리를 붙잡았다. 두꺼운 바지를 입었는데도 발톱 때문에 종종 아팠다.

그래도 이 눈빛을 어떻게 멀리 하겠는가. 손에 들고 있는 걸 금방 먹어치우고는 바로 다음 이파리를 기다리는 간절한 눈빛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물론, 전투력이 남달라 보이는 캥거루들도 한편에 자세를 잡고 누워있었다. 사람들이 먹이를 줄 수 있는 종은 캥거루 중에서도 크기가 작아서 왈라비(Wallaby)로 오해받을 만한 크기의 작은 종들이라고 한다.

다음은 오리너구리를 보러 갔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헤엄쳐서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오리너구리도 호주 동물인 줄은 처음 알았다. 친구들에게 한국어로는 이름이 곧 '오리+너구리'라고 했더니 재미있어했다.

나중에는 오리너구리와 더불어 물속 생물들을 소개하는 쇼도 보았는데, 아이들 틈에 앉아서 보려니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등장하는 쇼도 봤다. 조련사의 말에 예, 아니오로 답하는 앵무새가 재밌고 귀여웠다.

하지만 관중석 위를 낮게 날아다니는 거대한 새들은 멋지면서도 동시에 위협적이었다. 새를 특히 무서워하는 자넬은 결국 바깥쪽 유모차 석에서 앨리슨 대신 헨리를 데리고 서 있었다.

힐스빌은 단순 동물원이 아니라 보호 센터인 만큼 동물원 내에는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의료시설도 있었다. 당장 자연에서 생활하기 힘든 동물들을 데려다가 치료해주고 보호해 동물원에 데리고 있기도 한단다. 우리가 갔을 때 의료진들은 새 한 마리를 치료 중이었다.

옆에는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뒤 회복 중인 가시두더지(Echidna)가 있었다. 조그만데 구석에 있으니 잘 보이지는 않았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달리던지 제대로 된 사진 하나 건질 수 없었던 이 작은 생명체는 태즈매니안 데빌(Tasmanian Devil)이다. 가슴에 하얀 반달 같은 것이 있어 미니 반달곰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작지만 새끼 캥거루를 잡아먹을 정도로 식성이 엄청나고, 울음소리가 소름 끼쳐서 데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태즈매니안 데빌도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새끼주머니가 있는 유대류다.

나무 밑동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이 동물은 웜뱃(Wombat)이다. 어찌 내려가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것 같아 보여 불쌍했는데, 원래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가만히 머무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웜뱃도 유대류다. 호주 동물들은 유독 유대류가 많은 것 같아 신기했다. 웜뱃은 내가 호주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동물인데,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쓸 것이다.

펭귄을 보러 필립 아일랜드에 갔을 때 보았던 왈라비(Wallaby)도 발견했다. 뱃속에 새끼의 머리가 살짝 보였는데 이 사진에서는 볼 수가 없다. 나는 아무리 봐도 캥거루와 왈라비의 차이를 모르겠다. 크면 캥거루, 작으면 왈라비라지만, 내가 먹이를 줬던 캥거루들도 충분히 작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본 건 호주 야생 개 딩고(Dingo)였다. 개와 늑대 사이 어딘가쯤에 있을 것 같다.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데 놀랍게도 요즘은 애완동물로도 키운다고 한다. 울룰루 캠핑 중에 밤에 딩고가 자고 있는 내 머리맡을 지나가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었다.

동물원이지만 울타리들이 꽤 넓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던 힐스빌 구경을 마치고 앨리슨 가족과 헤어진 뒤, 우리는 야라 밸리(Yarra Valley)로 향했다. 멜버른 근교의 와인 생산지이다.

하지만 나는 와인보다는 맥주를 선호해서, 친구들이 브루어리로 데려가 주었다. 브루어리 근처에도 포도밭이 있어서 함께 구경했다. 힐스빌에 있을 때는 계속 비가 오다 말다 하더니 이곳에 도착하자 날이 완전히 갰다.

나중에 다시 운전해야 하는 크리스는 제일 도수가 낮은 걸로 한 잔 고르고, 나와 자넬은 각자 고른 네 종류를 샘플링 잔으로 맛봤다. 특히 흑맥주와 사과주가 가장 맛있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한참 떨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남의 목장에서 풀 뜯어먹는 야생 캥거루들을 보았다. 꽤 멀리 있었지만 기분 탓인지 동물원에서 먹이를 주던 캥거루들보다 훨씬 커 보였다.

우리는 집에 가서 조금 쉬다 저녁에 다시 나오기로 했다. 이날 하루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었다.


# 사소한 메모 #

* 아프리카 이후로 동물원에 가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울타리들이 대부분 크고 한 울타리 안에 동물 수가 몇 안 되어서 그런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여전히 야생에서 자유롭게 사는 동물들이 더 행복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 근처에는 다른 동물원이 있다는데, 사자, 코끼리, 기린 등등 흔히 동물원 하면 떠올리는 동물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밤에 동물원 내에서 캠핑하면서 동물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코웃음 쳤다. "자다가 텐트 옆을 지나는 하마 울음소리 들어봤어? 캠프파이어하다가 어디 있는지 모를 사자 울음소리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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