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 앞에는 캥거루가, 집 안에는 웜뱃이!

Day 220 - 호주 멜버른 근교 코카투(Cockatoo)

by 바다의별

이날 하루는 정말이지 동물의 날이었다. 오전에는 힐스빌 동물원을 구경하고 맥주 한 잔씩 시원하게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바쁜 오전을 보냈으니 집에서 조금 쉬다 저녁식사를 하러 다시 나가기로 했다.

DSC09290.JPG

친구들의 집은 숲 속 펜션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늘 정원이 있는 집을 꿈꿨는데 정원 대신 숲이 있는 집이라니.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DSC09297.JPG

깊숙이 들어가면 꽤 어둡기도 하다. 야생 웜뱃이 살던 땅굴 같은 것도 있어 신기했다. 몇 번 보았다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더란다. 별문제 없이 이사 간 것이길 바란다며.


거실에서 잠시 졸다 날이 어두워져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호주의 현지식을 굳이 하나 꼽자면 '피시 앤 칩스'라고 하더니, 피시 앤 칩스를 테이크 아웃하기로 했다. 자주 가는 맛집이 자넬 부모님 댁에서 가깝다고 했다. 여행 중이신 부모님 댁에 봐드릴 것도 있고 하니 부모님 댁에서 먹자고 했다.

DSC09307.JPG

그런데 겉옷을 챙기러 방에 올라가기가 무섭게 나를 불러댔다. 다시 내려가 보니 마당에 야생 캥거루가 있었다. 나는 잔뜩 흥분했다.

DSC09311.JPG

사실 전날 크리스가 만나자마자 며칠 전 집 앞에 캥거루가 몇 마리 있었다는 걸 귀띔해줘서 기대를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며칠 전 등장했을 뿐이고 그 이후로는 없었다고 해서 보기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집 코앞에 와 있다니. 마치 길을 잃은 듯한 한 마리였지만 나는 너무나도 신이 났다.

DSC09305.JPG

그리고는 자넬 부모님 댁에 가서 맥주에 피시 앤 칩스를 먹었다. 며칠 비어있던 집은 꽤 추워서 따뜻한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바로 차로 가지 않고 잠시 이쪽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옆집에 함께 들어갔다.

DSC09334.JPG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였다. 부모님 댁에서 먹자고 했던 이유는 부모님 댁 옆집에 가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애완동물로 키워지는 웜뱃이라니!

DSC09318.JPG

사실 웜뱃은 보호 동물이라 애완동물로 키울 수가 없다. 그래서 웜뱃 사진은 찍을 수 있어도 주인 사진은 함께 찍을 수 없었다.

DSC09332.JPG

그럼에도 이 집에 있는 이유는 이 집 주인이 동물구조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마 전에 신고를 받고 차에 치인 웜뱃을 살펴보러 갔고, 새끼주머니 안에 새끼 웜뱃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원칙은 구조한 그 장소에 다시 풀어놓는 것이라는데, 헨리(이 웜뱃의 이름)는 너무 작고 어린 데다 발견된 장소가 위험천만한 도로들 틈이어서 차마 풀 수가 없었다고 한다.

DSC09322.JPG

그래서 이런 식으로 집에서 일정 기간 보호하다 나중에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나중에 울룰루에서 만난 캠핑 가이드도 동물구조 일을 하는 동안 캥거루를 키웠다고 한다. 불법이지만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인 듯했다.

DSC09340.JPG

그래서 나중에 야생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 손을 많이 타서 그런가 친화력이 정말 좋았다. 보통 웜뱃은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지내서 사회성이 없다던데, 헨리는 어느새 내 옆구리에 폭 파고들어 잠이 들었다. 웜뱃의 털은 짧고 뻣뻣한 느낌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쓰다듬으면 꽤 부드러웠다. 한국에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푹 빠지게 되었다.

DSC09353.JPG

이 멋진 서프라이즈를 준비해준 자넬과 크리스, 그리고 사랑스러운 헨리와의 만남을 흔쾌히 허락해준 그들의 이웃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는 행복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니 더 많은 캥거루들이 와 있었다.

DSC09358.JPG

차가 들어오면서 불빛을 비추니 순간 놀라 경직된 듯했지만, 우리가 해치지 않을 것을 느꼈는지 곧 하던 일에 집중했다.

DSC09362.JPG
20170910_063650.jpg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오전 비행기를 타야 해서 일찍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자넬이 불러 1층에 내려가 보니 또 캥거루들이 와 있었다.

DSC09363.JPG

아침 안개가 살짝 깔려 있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사파리 투어라도 하는 기분. 캥거루도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을까?

DSC09368.JPG

뱃속에 새끼('조이'라고 부른다)가 있는 캥거루도 있었다.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새끼 캥거루를 이토록 근접한 거리에서 아무런 울타리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이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야생이 있는 곳에, 숲 속 동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


20170910_063656.jpg
# 사소한 메모 #

* 너무나도 반가웠던 친구들과 또다시 헤어지며, 이 멋진 집을 뒤로하고, 나는 또 다음 행선지로. 언젠가 친구들도 한국에 방문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 생각해보니 이렇게 외딴 숲 속 집에서 살려면 운전이 필수다. 나는 안 되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