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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낭만적인 캠핑

Day 221- 호주 울룰루, 울루루 (Uluru, Ayers Rock)

by 바다의별

아침 일찍 자넬이 멜버른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포옹으로 인사하고, 나는 피곤했는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숙면을 취했다. 다음 행선지는 호주의 중심부에 위치한 울룰루(Uluru, Ayers Rock)였다. 어릴 적 일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등장한 이곳을 보고 줄곧 호주 여행을 고대해왔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사실 영화 촬영지는 울룰루가 아니라 며칠 뒤에 간 킹스 캐년(King's Canyon)이었다.

내가 가본 공항들 중 가장 작은 공항(티켓 카운터에서 게이트가 보인다)에 내렸다. 이번 여행을 통해 캠핑의 재미를 확실히 느낀 터라 울룰루와 근처 다른 곳들을 함께 여행하는 캠핑 투어를 예약했다. 텐트 없는 캠핑이라는 사실도 내 흥미를 끌었다. 전체 인원 12명 중 한국인은 나 말고도 4명이나 더 있어서 반가웠고, 한국어를 잘 하는 이탈리아인 친구까지 있어 재미있었다.

우리는 먼저 호주 원주민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같은 곳에 들렀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1967년까지만 해도 호주 원주민들이 동식물로 분류되어 원주민을 죽이는 건 살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끔찍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건 단순한 루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차별이 심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리라.

울룰루는 에어즈 록(Ayers Rock)이라고도 불리지만 원주민들은 울룰루라고 부르니 나도 울룰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울룰루는 무려 5억 년 전 땅속에서 솟아오른 지형으로 거대한 붉은색 바위이다.

울룰루는 원주민들이 워낙 신성시하는 곳이어서, 특정 구간은 사진 촬영이 불가하기도 했다. 그들이 믿는 전설과 관련된 부분이라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이곳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원주민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행위라고 한다. 그러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주인공처럼 정상에 올라 여자친구의 유해를 바람에 날리고자 하는 행위는 굉장한 불손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이 아니라 킹스 캐년에서 찍었나 보다. 킹스 캐년 역시 신성시되는 구역은 있지만 그 외에는 하이킹이 가능하니까.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라니, 원주민들이 이곳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바위에 난 구멍들과 뱀이 쓸고 지나간 듯한 줄은 전설이 되었고, 사이사이에 난 동굴들은 안식처와 교실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거대한 곳을, 가까이에서는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잠시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아만다가 "울룰루는 그냥 돌이야."라고 했을 때도 나는 울룰루에 대한 환상을 거두지 못했다. 나중에 아만다가 메신저로 내게 울룰루 소감을 물어보았을 때 "정말 돌이더라."라고 답했더니 "내 말이 맞지?"라며 웃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느낀 실망감은 나중에 이곳을 먼발치에서 바라봤을 때 샴페인 한 잔에 금세 사라질 것이었다. 코끼리의 다리만, 코만, 꼬리만 보다가 코끼리의 진짜 모습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처럼.

좋게 생각하면, 약 2시간을 걷는 동안 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이런저런 사색에 잠길 시간이, 새로 사귄 이탈리아인 친구 루카의 서툰 한국어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햇빛의 위치에 따라 쨍한 주황색에서 탁한 빨간색까지 띠는 바위의 모습을 관찰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물론 평지를 걷는 순탄한 트레킹에도 불청객은 있었다. 바로 악명 높은 파리떼였다. 파리들이 내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곳 파리들은 자꾸만 내 얼굴 위를 기어 다녔다. 사람들이 계절 불문하고 방충망 모자를 챙겨 오는 것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파리떼는 자꾸만 이마, 콧등, 볼, 턱을 기어 다녔다. 단순한 손부채질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자신의 얼굴 근처에서 주문을 외우듯 계속 흔들어댔다. 쉼 없는 부채질이 유일한 예방책이었다. 지금 이렇게 적고 있으니 그때의 그 불쾌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스멀스멀.

쉴 새 없는 파리떼의 공격과 사막의 뜨거운 햇빛 속에서도 습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곳의 트레킹을 위험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습해야 땀을 흘려 의식적으로 수분 보충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아무리 더워서 먼저 물을 꺼내 마시게 되는 일이 잘 없다는 것이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급격히 탈수 증세가 올 수 있으니 꼭 물을 자주, 많이 마시라고 가이드는 신신당부했다.

울룰루는 정말 '돌'일 뿐이지만, 그만큼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외딴 돌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넓은 사막이 얼마나 텅 비어있는지를 확인하러 갈 차례였다.

우리는 석양에 따라 색이 변하는 울룰루의 모습을 보기 위해 먼발치로 이동했다. 역시 울룰루는 멀리서 봐야 더 멋진 것 같다. 납작한 땅 위에 홀로 솟은 엄청난 규모의 평평한 붉은 산을 가까이서는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간이 테이블을 펼쳐 놓고 샴페인 한 잔씩 손에 든 채 과자를 집어먹으며 붉은 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울룰루를 보았다. 호주 사막에서의 첫날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신호였다.

내 얼굴이 조금 붉게 상기되었을 때 울룰루는 함께 짙은 붉은색이 되었다가,

마침내 깊고 탁한 색이 되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보랏빛, 분홍빛, 주황빛으로 층이 졌다.

호주식 캠핑은 스와그(swag)에서 자는 것이다. 스와그 중에도 지지대가 있는 원터치 텐트형도 있는데, 우리가 쓴 건 텐트 재질로 만들어진 큰 침낭 같은 것이었다. 물론 안에 일반 침낭을 넣어서 자야 한다. 얼굴까지 덮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따뜻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 밤엔 펼치고 아침엔 말면 끝이므로 텐트보다 훨씬 편해서 나는 좋았는데, 이거 때문에 충격을 받는 고객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캠핑장에는 팀별로 사용 가능한 작은 공동 공간(주방, 식탁, 짐 둘 공간 정도)이 있어 굳이 텐트가 없어도 짐을 보관할 수 있었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샤워실과 화장실이 깨끗하고 넓어서 문제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와그의 최대 장점은 밤새 별을 보면서 잠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캠핑의 최고 장점은 도시의 불빛과 멀어져 자연의 불빛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인데, 스와그는 그 거리를 더욱 좁혀주었다.

손으로 톡 치면 내 위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눈을 감는 순간이 아까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석양과 밤을 봤으니, 울룰루의 아침을 봐야 했다. 새벽 4시 기상이어서 센스 있는 가이드의 제안으로 모두들 침낭을 그대로 들고 갔다. 침낭 안에 몸을 숨긴 채로 전망대에 걸터앉아 일출을 기다렸다.

잠시 뒤 오렌지빛을 내뿜으며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림자 속에서 새까만 울룰루는 하늘에 칠해지는 색들과 대비되었다.

셔터를 누르는 속도에 맞춰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점차 많은 곳을 비추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추웠다. 쉽사리 떠나지 못했던 건 아름답게 변하는 하늘의 색깔 때문이었다.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 사소한 메모 #

* 세상의 끝, 북극권, 세상의 중심 등등을 가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고 내가 향한 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 ♬ 아이유 - 밤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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