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취소될 뻔했는데

얼떨결에 아빠와 둘이서 첫 여행 1 - 갑작스런 출발

by 바다의별

"아빠랑 둘이서 여행해보고 싶다며. 이번 기회에 한번 해봐."


원래는 가족 여행이었다. 3인이 묵을 호텔도 예약했다. 호텔에서는 취소도 부분 환불도 전혀 안 된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여행이 취소될 위기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저렴한 옵션으로 예약했으니까.


차라리 엄마가 로또가 당첨된 걸 뒤늦게 알게 되어 오늘까지 당첨금을 수령하러 가야 했다거나, 해외에 사는 친구분이 갑자기 연락을 줘서 오늘 꼭 만날 수밖에 없다거나 하는 일이었다면 기쁘게 받아들이고 바로 갔겠지만, 그런 일은 아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땐 가족이 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살아왔기 때문에 엄마를 두고 간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빨리 가라니까, 너나 아빠가 여기 있으면 나 더 신경 쓰이고 심란해. 그냥 둘이 재밌게 여행하면 그게 더 도와주는 거야. 휴가도 이미 냈잖아."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보니 엄마가 이미 아빠한테도 강경하게 이야기해둔 것 같았다. 아빠는 나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엄마를 두고 가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가 엄마와 함께 있는다고 해서 엄마에게 줄 수 있는 도움도 전혀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주말을 앞두고 남은 기차표는 이제 얼마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래, 직장생활을 하는 아빠와 둘이서 여행할 기회는 정말 흔치 않다. 주부인 엄마를 굳이 두고 가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이번에 좋은 일로 헤어지는 건 아니지만, 운 좋으면 엄마도 후반부엔 참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그럼 일단 먼저 가 있을게. 엄마도 상황 봐서 올 수 있으면 와!"



그렇게 해서 아빠와 둘이서 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빠와 둘이 있는 시간이 결코 어색한 사이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둘이서 할 여행으로 계획했던 건 아니었기에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허전한 마음도 잠시, 우리는 곧 언제나처럼 투닥투닥거렸다.


"그래도 나랑 둘이 여행하는 것도 좋지?"

"뭐가 좋아. 운전도 못하고, 뭐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그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그래서 내가 차마 아빠를 모시고 여행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아빠가 나를 모시고 다녔다고 하면 모를까. 길도 내비게이션이 찾아주고, 식당이랑 카페도 아빠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신다. 해외여행이면 음식 주문이나 길 물어보기라도 내가 나서서 할 텐데, 국내에서는 내가 할 역할이 별로 없다.


"아, 그래도 좋잖아! 아빠랑 둘이서 여행할 딸 많지 않을 걸. 그것도 삼십 대 딸이 말이야."

"야, 난 잘해주잖아. 너나 감사하게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아빠와 나의 관계는 내 주변 다른 부녀들의 모습과는 꽤 다르다. 나는 아빠와 둘이서 치맥도 하고,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디저트도 먹는 사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빠와는 대화를 하는 것조차 어색해졌다는 많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얼마나 행운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때로 가장 소중한 것은 노력 없이 운 좋게 얻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행운 같은 아빠와 둘이서 여행하는 건 나 또한 처음이었다. 가족여행은 물론 꾸준히 해왔지만, 나의 여행 유전자가 대체로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생각하면 참 늦은 첫 여행이다.


하지만 뭐든 스타트를 끊는 것이 오래 걸릴 뿐이다. 이번 여행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아빠가 내가 어릴 때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 나를 데리고 다니셨던 것처럼, 나도 이제 아빠를 이곳저곳으로 모시고 다닐 거니까. 아니, 모시지는 못해도 함께 다닐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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