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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01. 2023

다른 산을 보기 위한 등산

강원도 여행 1 - 고성 금강산 화암사~신선대에서 울산바위 보기

에펠탑 위에선 에펠탑이 안 보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안에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안 보인다. 그래서 그 도시의 랜드마크 전망대는 한 번쯤 가보기는 하되 즐겨 찾는 편은 아니다. 도시의 풍경을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가장 핵심이 되는 랜드마크는 볼 수 없으니까.

산은 다른 랜드마크와는 다르다. 산은 대개 그 산을 보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된다. 멋진 절벽이든 계곡이든, 산 위에 서 있는 정상석이든, 그 산을 직접 등반해야 산속의 멋진 광경들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고성 금강산이 그랬다. 설악산 가까이에 서 있는 탓이다. 금강산 화암사의 등산 코스는 그 자체보다도 신선대 (성인대) 위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울산바위 전망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고성 금강산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물론 울산바위는 특별하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될 만큼 워낙 특이하고 멋진 경관을 선사하는 기암이니까. 그 옆에 서 있으면 그 어떤 산도 주목받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산의 풍경을 보기 위한 발판쯤으로 여겨지는 고성 금강산은, 그 유명한 1만 2천 봉 금강산 줄기의 일부다. 그래서 이름 또한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금강산 화암사는 남쪽 기준으로 봤을 때 금강산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어, 금강산의 첫 암자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금강산 비로봉에서는 꽤나 떨어져 있지만, 같은 산 줄기라는 사실은 꽤나 멋지지 않은가!


수바위


울산바위를 볼 수 있는 신선대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금강산 화암사에서부터 시작되는 등산로 자체도 참 멋있었다. 화암사에서도 잘 보이는 수바위는 그 자태가 어디서 보아도 근사했다. 화암사에 수바위를 조망하며 차를 즐길 수 있는 찻집도 있 정도다.


등산로를 아주 조금만 걸어 오르면 그 수바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고, 거길 지나면 또 시루떡 바위도 만날 수 있다. 오래전 지팡이로 세 번 치니 두 명 분의 쌀이 나왔다는 수바위는, 누군가 욕심을 부려 여섯 번을 치니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전설일 뿐이지만 근처에 시루떡 바위도 있으니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바위들을 모두 지난 뒤 계속해서 올라가는 계단길도 지루하지 않다. 곧게 뻗은 나무들도 예뻤고, 마침 시기가 시기인지라 주황빛으로 물든 단풍들도 좋았다. 철제 계단이 아닌 나무로 된 계단인 점도 왠지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화엄사에서 신선대로 오르는 길


사실 오만 군데 다 감정이입하는 나는, 전망대로 이용되는 듯한 금강산에게 조금 미안했다. 나 또한 이날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날씨가 흐려서 울산바위를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강산에서 볼 수 있는 그 다른 풍경들 또한, 금강산의 매력일 것이다. 어느 정도 오르고 나면 전망이 탁 트여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것도, 거기서 조금 더 오르면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보이는 것도. 다른 산에서는 보기 어려운, 금강산에서만 가능한 풍경일 테니 말이다. 다른 전망을 보기에 좋다고 해서, 금강산 자체의 매력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좌) 신선대 (성인대)  |  (우) 멀리 보이는 바다


어쩌면 울산바위를 보러 왔다가 화암사나 수바위의 매력에 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선대의 멋진 모습에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나처럼. 그런 방식으로 금강산의 아름다움이 알려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꼭 금강산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도, 그걸 위해 일단 금강산을 찾는 이들이 많다면, 그것대로 금강산에는 좋은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내가 금강산을 다시 찾을 때면, 울산바위만을 보기 위함 아닐 것이다. 날씨가 맑은 날, 맑고 푸른 하늘 아래 금강산의 수바위도, 계단길이 끝나는 곳의 신선대도, 내 여행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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