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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04. 2023

쉬운 길 말고, 멋진 길

강원도 여행 2 - 설악산 비룡폭포와 토왕성폭포전망대, 그리고 비선대

등산이 취미는 아니다. 내가 주말에 운동할 목적으로 동네 뒷산을 오르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쉬운 코스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꼬드기면 한 번쯤 못 이기는 척 쫓아가는 것, 그것이 내 등산이다. 물론 걷는 것 자체가 개운하기도 하고 목표한 곳까지 오르면 나름의 성취감도 있지만, 좋아하는 활동이 아니니 쉽게 내키지는 않는다.


그런 내가 어떻게 4,130미터의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며 6박 7일간의 산행을 할 수 있었느냐고 는다면, 그건 등산의 영역이 아니라 여행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이번에 설악산에 오른 것 또한 여행의 영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행의 원동력은 늘 하나의 풍경에서 시작되는데, 토왕성폭포전망대에서 찍은 누군가의 사진이 이번에는 그 원동력이었다. 그걸 보기 위한 길은 등산뿐이었으니 나는 등산을 해야 했다.


(좌) 육담폭포  |  (우) 비룡폭포


토왕성폭포전망대까지 오르는 코스는 육담폭포와 비룡폭포를 지다. 육담폭포와 비룡폭포까지는 꽤나 평이한 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이지만 가파른 구간은 없어서 크게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50분 정도 평탄한 길을 지나고 나 비룡폭포에 다다랐다.


토왕성폭포전망대까지는 거기서부터 20분 정도 더 오르면 되는데, 그 구간은 이전 길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쉼 없이 올라야 하는 계단길. 본래 등산로가 아니었던 곳에 계단을 설치한 듯했다. 평지란 없는 900개의 계단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등산 그리고 오랜만에 긴 계단은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지치지 않았다. 오르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오르는 길, 주변의 전망이 너무나도 멋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보이는 산맥의 웅장함과 가까운 곳에 수묵화처럼 자란 나무들, 그리고 틈 사이사이 채워진 색색의 단풍이 너무나 예뻤다. 계단을 오르다 한 번씩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뒤로 돌리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계단을 조금 더 오르면 얼마나 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었다. 좋은 풍경은 등산 중에도 계속 오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오른 전망대에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토왕성폭포는 물론, 반대편의 절벽 전망도 멋있었다. 토왕성폭포는 항상 물이 흘러내리는 폭포는 아닌데, 운 좋게도 전날 비가 와서인지 물이 많지는 않아도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멋진 풍경을 360도 둘러보며 바람을 맞는 기분은 시원하고도 달콤했다.


다음날에는 비선대까지 걸었다. 비선대까지 가는 길은 비룡폭포까지 가는 길보다도 더 쉬웠다. 등산이라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산책 수준의 쉽고 편안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도 충분히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둘 중 한 코스만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토왕성폭포전망대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내가 꼭 쉬운 등산코스를 원한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쉬운 길이 아니라, 멋진 길을 찾고 있었다. 쉽고 빠른 길이나 정상에 대한 기대감보다도,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풍경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풍경이 멋진 길이라면 얼마든지 힘을 내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살면서 택하는 모든 길이 쉬울 수는 없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대단한 것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는 길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택하는 길이 지름길이나 편한 길이 아니라, 멋진 길이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길이더라도, 원하지 않았던 길일지라도, 가는 길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 잠시 멈추어 둘러보아도 그 길 위에서 즐거울 수 있기를. 그렇게 길의 끝에 다다르기도 전에 내 길을 충분히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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