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의별 Jul 15. 2024

평범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아도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늘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 잠시라도 우울감을 느끼는 순간 잘못 살고 있다는 걱정에 휩싸이게 되고, 그러면 행복은 점차 거한 무언가가 되기에 더더욱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매 순간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증명해야 는 순간, 행복은 버거운 의무가 된다.


그런데 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은 누구나 알 것 같으면서도 누구도 알 수 없는 개념이다. 어떤 사람은 피자 한 조각만 먹어도 금세 행복해지지만, 어떤 사람은 대출금을 다 갚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각자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콕 집어서 답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행복도,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도, 객관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콘텐츠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강요한다. 희극은 희극대로 비극은 비극대로, '결국 행복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우리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행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곤 한다. 그것조차 누군가에게는 모호한 가르침, 위로를 가장한 강요가 될 수 있는데도.


평범 같은 건 안 바라
그건 너무 멀어
그 주변 어딘가면 괜찮아
평범함 그 주변 어디
거긴 가보고 싶어
그 근처 어딘가면 견딜게

- 'Maybe (어쩜)' 중


그런 콘텐츠들 속에서, 행복한 상태는커녕 평범조차도 어렵다고 말하는 작품이 있었다. 바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작품의 제목을 직역하면 '평범 그 옆' 정도가 된다.


<넥스트 투 노멀>은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각자 상처와 아픔을 지니고 사는 굿맨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엄마 다이애나, 그런 다이애나의 상태와 가정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다이애나의 남편 댄, 다이애나가 아끼는 쾌활한 아들 게이브, 똑똑하지만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는 사춘기 딸 나탈리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을 소재로 한 많은 콘텐츠들은 대개 사랑을 이야기한다. 가족의 사랑으로 행복해지고 완전해지고, 서로 투닥거리다가도 결국 서로의 진심을 깨닫고 더욱 돈독해진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게는 진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애써도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프기만 한 신기루다. <넥스트 투 노멀>은 후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행복하고 싶지만 행복하기 어렵고, 평범하고 싶지만 평범하기 어려운 굿맨 가족의 중심에는, 조울증과 망상증을 앓고 있는 다이애나가 있다. 다이애나를 둘러싼 가족의 풍경뿐 아니라 그를 환자로서 대하는 의사의 모습과 그 치료 과정까지도 다 뮤지컬에 녹아들어 있다.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장면들은 의사의 독백이나 다른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 적당히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 실제로 제작자들은 정신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과 의료계 종사자들을 인터뷰하며 오랜 기간 이 작품을 다듬어왔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정신질환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다소 도전적인 소재뿐 아니라, 그걸 그려내는 데에 있어서의 현실성과 정확성에 대해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무대는 철제 기둥으로 이루어진 3층짜리 세트로 꾸며져 있었는데, 3층 집을 옆으로 자른 듯한 단면 형태였다. 인물들은 한 층에서 만났다가도 제각각 다른 층으로 흩어지기를 반복했고, 모든 층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관객들만이 동시에 지켜볼 수 있었다. 한 지붕 안에서의 단절을 표현하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치였다. 


다만 세트는 매끈한 바닥에 난간도 안전망도 없서,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떨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배우들은 자꾸 끄트머리에 다리를 내놓고 걸터앉거나, 그곳에 세워진 기둥을 한 손으로 잡고 춤을 추면서 아슬아슬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그런 모습을 불안하게 보는 관객의 마음마저도 이 공연의 일부가 아닐까 싶었다. 삶에는 안전망이 없고, 굿맨 가족의 일상은 그렇게 위태로우니까.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아무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 눈에는 불안해 보여도, 바닥은 튼튼했고 기둥은 중심축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무대 세트가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의 인생이었다면, 아무리 약하고 불안해 보여도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잘 살아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 [작곡가인 톰 킷과 나]가 이 작품을 쓰고 이 이야기를 전하고자 노력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범'이라 여기는 기준에 맞춰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실 굉장히 파괴적일 수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Exposing the stigma of mental illness is one of the reasons [composer Tom Kitt and I] wrote the show, why we pursued telling this story. We both feel that an awful lot of people try to live up to a standard of what they consider 'normal' and that actually can be as destructive as anything.)

- <넥스트 투 노멀>을 제작한 극작가이자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의 인터뷰 중 일부


결국 이 작품의 결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 굿맨 가족이 평범한 가족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누구도 평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 더 중점을 둔 이야기니까. 지금 당신이 어떤 상태이든, 당신 주변이 어떤 모습이든, 당신의 인생은 그 모습 그대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과하게 애쓸 필요가 없다. 행복하려고, 평범하려고, 현실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평범의 기준,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면, 실은 평범도 행복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잘 견뎌낼 뿐이다.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 행복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 이런 작품이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 개요 : 2008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후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2009년 토니상에서 여우주연상 및 최고음악상 등을 수상하였고, 뮤지컬로는 드물게 퓰리처상 드라마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 작곡 : 톰 킷 / 극본·작사 : 브라이언 요키

▷ 국내 제작사 : 엠피앤컴퍼니 / 국내 연출 : 박준영 (*1)

▷ 매우 주관적인 추천 넘버 :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슈퍼보이와 투명소녀)', 'A Light In the Dark(어둠 속의 빛)', 'Maybe (어쩜)'

▷ 2024년 오연 캐스트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24년 3월 5일~5월 19일)

다이애나 역 : 최정원, 배해선

댄 역 : 이건명, 마이클 리

게이브 역 : 산들, 유회승, 홍기범

나탈리 역 : 김환희, 이서영

헨리 역 : 김현진, 최재웅

의사 역 : 박인배



1)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국내 제작사 및 연출은 2011년 초연 이후 몇 차례 바뀌었다. 위에 적은 건 올해 오연의 제작사 및 연출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