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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좋아하시는 분?"

프롤로그 : 과목이 아닌 취향으로

by 바다의별
영어 좋아하시는 분?


이 질문에 곧장 손을 드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대화하는 순간을 즐기거나, 영화나 책에서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며 설레는 사람조차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망설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만약 '영어'를 '영화', '커피', 또는 '스키'와 같은 단어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영화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도, 딱히 커피를 원두 따져가며 마시지 않아도, 겨울철에 어쩌다 한두 번 스키를 탈 뿐이어도, 자신 있게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영어라는 건 오직 잘하거나 못하거나, 딱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이 되었다. 아니, 사실 처음 배운 순간부터 시작된 일이다. 영어는 언제나 의무이자 부담이었고, 더 이상 학교 성적과 관련이 없는 성인이 되어서도 늘 숙제 가득한 과목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영어는 스키와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스키 탈 줄을 모른다. 나의 겨울은 이미 스케이트와 눈썰매와 핫초코로도 특별하지만, 만약 스키를 탈 수 있다면 내 겨울은 조금 더 다채롭고 다이내믹해질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에는 다양한 재미가 있고, 우리에게는 언제나 자막과 통번역기가 있다. 다만 영어를 할 줄 알면 일대일로 번역되기 어려운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는 설렘, 중간 매체 없이 자유롭게 알아듣는 소소한 기쁨 같은 게 있을 뿐이다.


영어도 스키도 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것일 뿐, 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다. 그러니 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이유도, 부담을 느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건 영어를 잘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 아니다. 영어를 취향으로 대하기 위한 연습이다.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간 영어를 과목으로만 대하던 시각을 조금 바꾸어 보고 싶다. 취향의 영역으로 여기게 되면, 툴더라도 누구나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그것들이 얼마나 다정한지, 얼마나 재밌는지 나누어보려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누군가는 반겨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맨 처음의 질문에 손이 조금이나마 꿈틀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의 끝에서 함께 자신 있게 손을 들어주기를 바라며.


debby-ledet-4rM23tALoMg-unsplash.jpg Photo by Debby Lede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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