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이 말이 될 때
나는 스스로 꽤 모순적인 사람 같다.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한다. 외부의 다채로운 활동들이 내게 에너지를 줄 때도 있지만, 조용히 방에서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내 에너지를 채워줄 때도 있다.
이성적이기도 하고 감성적이기도 하고, 외향적이기도 하고 내향적이기도 하다. 어떤 형용사를 들이밀어도 다 해당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다행히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oversight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한다. 보통의 경우 '간과'라는 뜻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실수로 놓쳤을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동시에, '관리, 감독'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하나의 단어가 정반대되는 뜻을 동시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재밌게 느껴진다. 애초에 관리감독한다는 뜻의 oversee라는 동사와 나란히 놓이는 명사형이지만, 일상적으로 실수나 간과의 뜻이 더 자주 쓰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렇지만, 그게 또 말이 된다. 아무리 관리감독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놓치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oversight와 같은 단어는 어쩐지 그게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때로 위로가 된다. 글을 다 쓰고 나서 여러차례 퇴고해도 어색한 문장은 인쇄 후에야 눈에 띈다. 정성스레 쓴 이메일은 발송을 한 뒤에야 오타가 들어온다.
oversight뿐 아니라 꽤 많은 단어들이 이렇게 반대되는 듯한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러한 단어들에는 auto-antonym 또는 contronym이라는 라벨이 붙는데, 말 그대로 자체대립어, 모순어를 뜻한다.
"He left." 라고 말하면 '그가 떠났다'는 뜻이지만 "He left a note." 라고 하면 '그가 메모를 남겼다'는 뜻이 된다. sanction의 경우에는 허가하다는 뜻도 있지만 반대로 벌하거나 제재한다는 뜻도 있다. dust는 명사로는 먼지라는 뜻이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먼지를 털어낸다는 뜻이 된다. rent는 빌리는 것과 빌려주는 것 모두를 뜻할 수 있고, consult 역시 조언을 받는 것과 주는 것 모두를 뜻한다.
어쩌면 모순이란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도 기어코 어울린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죽어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듯이. 관리하려고 애쓸수록 놓치는 게 생길 수도 있고, 언젠가 떠난다 할지라도 그 흔적은 반드시 남을 거라는 희망이 있을 수도 있다.
기다란 종이의 양끝도 접으면 금방 만나듯, 완전한 반대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정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질들은, 사실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짝궁일 수 있다. 빛과 그림자처럼, 음악의 장조와 단조처럼,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그 반대의 성질이 따라와 공존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여러가지 성질을 지닌다고 해서,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도 저것도 다 될 수 있는 것이다. 모순이나 이중성이 아니라 가능성, 재미난 반전 같은 것. 더 많은 걸 품을 수 있는 여지.
auto-antonym / contronym (스스로 반대되는 뜻을 동시에 품은 단어들) 의 예시
oversight: 간과 / 관리, 감독
left: 떠났다 / 남겼다 (leave: 떠나다 / 남기다)
sanction: 허가하다 / 제재하다
dust: (명사) 먼지 / (동사) 먼지를 털어내다
screen: 걸러내다 / 보여주다
seed: (씨앗을) 심다 / (씨앗을) 발라내다
rent: 빌리다 / 빌려주다
consult: 조언을 구하다 / 조언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