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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oon Aug 20. 2021

안녕? 나의 공항

여행의 시대 공항의 기억

여행이 멈추자
그리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평소 지나온 시간을 그리워하는 편은 아니었다. 여행할 때 사진을 남기기는 하지만, 다녀온 뒤 몇 달의 후유증을 잘 보내기 위한 상비약이었지, 나중에 다시 사진을 찾아보는 일은 잘 없었다. 늘 지나간 것보단 다가오는 것, 새로운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하늘길이 막히고 여행이 멈추니 갑작스러운 공백은 생각보다 깊이 다가왔고, 기억이란 기억은 모두 그리움으로 쏟아져 나왔다.     


내 인생의 이삼십 대를 모두 여행과 함께했다. 때론 일로서 때론 여행자로서, 여행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기에 삶의 1순위를 여행에 두려 노력했다. 덕분에 또래 친구들처럼 노후를 미리 준비하거나 긴 미래에 대비하지는 못했지만, 해외 곳곳에서 보낸 소소한 일상이 쌓여 꽤 많은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해외 도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들,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면 생각나는 나라, 현지인들과 어우러졌던 시간과 크고 작은 사건들은 먼 훗날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면 추억하며 살 수 있는 기억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되니 여행에 대한 그리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비롯되었다. 아름다운 추억을 품은 나라도 다시 가고픈 도시도 아닌, 여행을 오고 갈 때 당연히 들려야 하는 공간인 공항이었다.


출국이 빈번했던 시기, 여권에 남은 흔적들


유럽여행 인솔자로 일을 하던 시절 한 달에 평균 두세 번 정도 인천 국제공항을 오갔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시작과 끝은 공항을 통해야 하니 공항은 곧 나의 일터이기에 공항 곳곳에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여행자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는 공항의 모습은 늘 일률적이고 한결같았다. 변화가 있었다고 하면 항공사 카운터 위치가 변경되어 있거나, 제2터미널이 생긴 것, 공항에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하는 정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이고 익숙했다.


팬데믹 직후 매스컴에 비친 인천 국제공항의 모습은 낯설었다. 영화에서나 보는 줄 알았던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입국장에 상주해 있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텅 빈 공항의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신호대기로 비행기가 밀려 줄을 서 있는 건 많이 봤어도 갈 곳을 잃어버린 비행기의 주차장이 되어버린 활주로도 생경했다. 내가 아는, 익숙한 공항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사랑했던 공항을 기억하며


언제나 활기 넘쳤던 공항의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설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게 공항을 향해간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았다. 여전히 내 기억 속 공항은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나는 다시 세상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눈을 감으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공항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나의 공항’에게 안부를 전해 본다.

2019년 새해 이스탄불 활주로


M1. 공항으로 가는 길

우리 집에서 인천 국제공항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보통은 집에서 택시를 이용해 김포공항까지 20분 정도 이동한 뒤 공항 리무진으로 갈아탔다.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는 딱 30분이 걸렸다. 공항 철도도 있었지만, 그보단 리무진이 좌석 확보가 되어 편안했고, 도로 상황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면 도착 시간도 거의 정확했다. 특히나 김포공항은 인천공항 가기 전 대부분의 버스들이 들르는 곳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들어오는 버스가 많아 배차 시간을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공항리무진버스


김포공항부터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바로 공항고속도로로 이어지기 때문에 복잡한 길이 없다. 덕분에 이동하는 동안 한적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어떤 출국이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도 많이 달랐다. 출장 가는 길은 직장인들의 월요병처럼 긴장과 고단함이 마음을 짓눌렀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가는 버스와 창밖의 평온한 풍경은 그런 마음을 다독여 주기에 충분했다. 김포공항에서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그 30분의 시간은 일을 시작하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도, 떠나기 전 설레는 마음을 즐기기에도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2018년 5월 인천국제공항 가는 길

한동안 해외 출장이 뜸해 도심을 지나는 공항리무진만 봐도 마음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내게 공항으로 간다는 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였고, 공항버스를 타고 또 다른 세상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 팬데믹 이후 도심에서 공항리무진이 사라지니 허전함이 밀려왔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조화를 이루며 도심을 종횡무진하던 공항리무진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M2. 떠남의 설렘이 담긴 '공항 냄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공항에 도착하면 공기부터가 달랐다. 공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공항 냄새”가 났다. 향기라는 단어도 떠올려 봤지만,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사람에게 체취가 있듯 공항에도 그런 게 있다면 바로 이 냄새가 아닐까? 출국장 문을 열고 들어서며 느껴지던 에너지와 사람들의 활기를 품은 따듯한 ”공항 냄새, “공항 냄새“에는 떠남의 설렘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면 늘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렸는지도 모르겠다.

2018년 인천공항의 모습(사진: 사자지크)



M3. 나의 일터, 여행사 미팅 카운터

인천 국제공항 3층 출국장 양쪽 맨 끝에는(A와 F 카운터 끝) 나의 옛 일터였던 여행사 미팅 카운터가 길게 늘어서 있다. 패키지여행을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A나 F 카운터를 이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곳이지만, 대부분 여행사는 이곳 부스를 이용해 출국 전 미팅을 하기 때문에 유럽여행 인솔자로 출장을 다니던 시절 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이곳으로 향했다.

나는 보통 미팅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만약의 교통상황에 대비하고 손님들에게 전달해야 할 파우치(일정표, 주의사항, 면세 쿠폰 등이 있는)를 준비해야 했고, 출국 수속부터 비행기 탑승까지 모두 이곳에서 안내가 끝나기 때문에 놓치는 내용이 없도록 체크했다.     

여행사 카운터

유럽여행 인솔자를 하며 가장 큰 변화를 느낀 부분이 바로 이 단체여행 출국 수속이었다. 내 기억으로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단체 출국 시 인솔자 또는 가이드는 손님들의 여권을 모두 가지고 단체 수속 카운터로 이동하여 혼자 수속을 마친 후 손님들께 여권과 탑승권을 나누어 주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분실 우려를 이유로 여권을 모두 걷어 인솔자나 가이드가 보관하였다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 돌려주었던 일종의 문화가 있었다.

2005년 11월 이전 출입국신고서 양식

 하지만 지금은 본인의 여권은 본인이 소지하고 출국 수속 역시 본인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미팅 시 수속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여권 분실 위험에 대한 당부만을 전달한다. 단체 출국이라고 해서 단체로 비행기를 탑승하러 이동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덕분에 이 여행사 미팅 카운터에서 출국 전 안내가 모두 마무리되며, 손님들은 수속 후 면세점이나 공항 안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탑승할 수 있게 되었다.     


M3. 전쟁 같은 출국 수속

인솔자가 직업이면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하면 가장 단순하게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떠올렸다. 출장을 다녀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는 마일리지는 일종의 보너스 같았다. 또한 마일리지가 쌓이면 자연스레 회원 등급이 올라가게 되고, 공항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절차에서 우대가 이루어지는데, 모든 손님들과의 미팅을 끝내고 늦은 수속을 해야 할 때면 우선 수속이 가능했다.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탑승동 안으로 들어가 나만의 시간을, 잠깐의 여유를 부려 볼 수 있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에 대기 중인 사람들

출국장에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 또한 한 번에 30명 이상을 데리고 출국했지만,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싶을 정도로 항상 북적였다. 그렇게 해외여행은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이었다. 특히나 명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팬데믹 바로 직전, 설 명절만 해도 하루 평균 출국자수가 20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고, 일주일간 이용객이 142만 명을 달할 정도로 매년 새로운 기록을 쏟아냈다. 덕분에 출장 기간이 명절과 겹칠 때면 비행기 탑승 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미리 탑승구에 도착할 것을 당부해도 수속 카운터부터 보안 검색대까지 늘어선 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출국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던 기억이다.     


M4. 공항의 꽃, 면세점

출국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공항의 꽃이라 불리는 면세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열흘에 한 번씩 출국을 하면서도 매번 필요한 것들이 새롭게 생기는지... 생필품, 화장품부터 일하며 꼭 챙겨 먹었던 필수 아이템 홍삼까지, 한국에서 시간이 없으니 온라인 주문 후 공항에서 픽업하곤 했는데, 그 외에도 쿠폰 사용과 할인을 더한 면세점 가격의 매력을 맛본 이후론 일종의 보상심리처럼 뭐라도 쥐어야 발길이 떨어졌다. 피곤하면 피곤해서, 때론 일로 떠나는 길이 외로워서, 기분이 좋으면 그게 너무 좋아서, 그렇게 나름의 이유를 붙여 스스로에게 하던 선물은 일터로 향하는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출국이 불가능한 요즘도 나는 종종 면세점 사이트에 들어가 언제 픽업이 가능할지 모를 위시리스트를 담아본다. 다행히 면세점 사이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판로의 길을 찾아 열심히 업데이트가 되고 있었다. 이마저 멈춰 있었다면 꽤 마음이 울렁였을 것이다.


M5. 드디어 출발

지상 승무원들이 탑승 시작을 알리면 항공사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알파벳 또는 숫자로 구간을 나누어 줄을 선다. 구간을 나눠 탑승을 하는 이유는 비행기 끝자리부터 순서대로 탑승시키기 위함인데, 인솔자들은 손님이 다 탑승한 후 지상 승무원 전산을 통해 전원 탑승 여부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그 시절 모든 유럽노선 비행기는 만석이 비일비재했고 탑승을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을 볼 때면 그 순간은 마치 장거리 마라톤을 앞둔 출발선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비행기가 뜨는 동시에 또 하나의 여정은 시작됐고, 우린 그렇게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마치 영원할 것처럼 그땐 그랬다.     


팬데믹 이후 처음 만난 공항


2021년 3월 27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약속이 생겼다. 팬데믹 이후 처음 가보게 된 공항이었다. 면세점에서 일을 하던 친구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근무를 이어오다가, 최근 매장 휴업이 결정되며 당분간 무급 휴직에 들어간다고 했다. 유럽여행 인솔자로 일을 했던 나와 면세점에서 근무했던 내 친구는 사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잘 만나지 못했다. 그녀의 근무 시간과 나의 출국 시간이 맞아야 했고, 공항 안에서도 탑승동 사이의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녀가 일하는 날에 그곳을 지나갈 수 있는 확률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항이라는 접점이 늘 존재했기에 언제든 볼 수 있는 사이라 여겼지 적어도 공항이 멈추는 일로 이 만남의 확률이 사라지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우리가 오랜만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때마침 그녀의 집이 공항 근처이기도 했고, 요즘 사람들이 제일 안 가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며 고심 끝에 잡은 장소가 다름 아닌 인천 국제공항이었던 것이다.     


공항 가는 길은 코로나 이전과 달랐다. 공항리무진은 2020 4월부터 현재까지 운행이 중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달라진 공항 루트에 벌써부터 마음이 일렁였다. 오랜만에 타게  공항 철도는 일반 철도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인지 생각 이상으로 붐볐다.  혹여나 여행자들의 모습을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두  정도 캐리어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공항철도란 이름으로 불리기엔  허전한 광경이었다. 공항에 다다르니 반가운 안내 방송이 들린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이어졌다. 내가  방송을 이렇게 경청해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2020년 3월 27일 텅 비어버린 체크인 카운터

공항 안으로 이동하는 무빙 워커는 간간히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공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로 보였고, 캐리어를 끌며 한 줄로 이동하던 여행객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3층 출국장에 들어서니 카페나 식당은 아직 운영되는 곳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문을 닫았거나 브랜드가 바뀌어 있었고,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여행사 카운터와 출국 수속 카운터는 허무하리만치 텅 비어 있었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     


1층 입국장은 생각보다 더 삼엄했다. 아무래도 해외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보니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다녔고, 일반 사람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층으로는 잘 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문득 파리에서 돌아오던 입국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행의 뿌듯함과 다시 떠날 기대를 품던 그 순간의 기억이 생경해졌다고 해야 하나, 불과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말이다.          


by 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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