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꿈꾸던 시절이 아득하기만 하다
2020년 4월 들어 신천지 사태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요양병원에서 한 달간 머문 후 엄마는 예전에 입원했던 보훈병원으로 돌아왔다. 이곳 역시 공공병원이라 일부를 코로나 환자 치료 병동으로 쓰면서 일반 환자를 조금씩 다시 받고 있었다. 그 사이 병원에 오기가 두려워 진료를 미루다가 평소 수준으로 치료받지 못해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 확진자가 생겨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이후 주위에서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선을 그어 누군가를 내치고 특정 지역에 가지 않으면 안전해질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아직 팬데믹에 대해 잘 몰랐던 때다.
이곳에서 석 달이 금방 지나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때, 대구의료원이 마침내 다시 문을 열었다. 엄마와 함께 지난 몇 년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병세에 따라 마음을 졸이고 한숨을 돌리기도 했던 곳, 정해진 입원 기간이라는 이유를 제외하고는 있을 곳이 아닌 것처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던 병원이다. 다양한 이유로 환자를 가려 받는 곳이 꽤 있다. 가끔 납득되는 경우도 있었고,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이 병상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와상 환자를 한 공간에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오래 잊히지 않을 만큼 유별난 이유도 있었다.
의료원으로 다시 가며,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리라는 섣부른 기대를 품었던 게 사실이다. 당장 모든 것이 예전 같진 않더라도 적어도 내일을 예상할 만큼의 안전함을 간절히 바랬다. 몇 달만에 다시 온 대구의료원은 평온해 보였다. 다른 환자가 없는 조용한 응급실에서 입원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주취 환자가 경찰과 함께 들어온다. 응급실 의료진들이 서둘러 방호복을 착용한 후 환자와 함께 격리실로 향하고, 소란스럽고 분주한 모습이 코로나 이전만 같다.
회진을 마친 주치의 선생님이 도착해서 엄마의 상태를 확인한 후 입원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병실에는 커다란 음압 기계가 아직 남아있고 창문도 열리지 않는다. 널찍했던 복도 곳곳에 파티클을 설치해서 미로처럼 복잡하고 좁아졌다. 새로 온 직원들도 많지만, 그동안 고된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편한 점은 차차 좋아지리라 믿으며 이곳에 적응하자고, 엄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지난번처럼 황급히 의료원을 떠나야 했다. 코로나 시대가 오기 전에 의료원은 환자를 가려 받지 않아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던 공공병원이었지만, 지금은 코로나 환자 수가 늘어나면 가장 먼저 대응하는 곳이다. 평소에도 갈 곳을 찾기 힘든 코로나 아닌 환자들은 다시 여기서 나가야 한다. 어째서 자연재해도 아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이번에는 다행히 엄마를 모시고 보훈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석 달 후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일어나는 일만으로도 벅차서, 그때 일은 나중에 고민하기로 한다. 한 주, 한 달, 반년, 일 년 후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팬데믹 이후의 삶이다.
살고 있는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국경을 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벌써 한 해가 넘게 지났다. 길고 지루하고 불안한 시간을 지나며, 때때로 가지 못한 페르시아만 여행을 떠올렸다. 가지도 못한 여행을 돌이켜보는 기분이 낯설다. 팬데믹 이전에는 이미 다녀온 여행을 돌아보지 않았다. 먼 곳으로 가는 여행이 힘들어질 노후를 대비해 좋았던 시절을 돌이켜볼 사진 몇 장을 남겨두면 충분하다 여겼고, 지난 여행을 돌아보는 것보다 다음엔 어디로 갈지 생각하는 게 훨씬 즐거웠다.
페르시아만에 관한 첫 기억은 CNN을 통해 한국에도 생중계됐던 1991년의 걸프 전쟁(페르시아 걸프 전쟁)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막의 폭풍이라는 작전명이 들렸고 스텔스 폭격기의 공중 폭격 장면과 쿠웨이트의 유전 폭발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연안국 중 하나인 이란은 걸프 전쟁과는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그곳을 둘러싼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패권 경쟁,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막대한 석유 매장량 때문에 페르시아만은 수시로 긴장이 고조되는 지역일 수밖에 없다.
지크와 내가 가려던 곳은 이란 쪽의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에 닿은 도시와 섬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던 2019년 가을 무렵, 그곳에 다녀온 사라의 친구들이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여행객이 다니기에 안전한 지역이라고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호르무즈 해협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국제면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때맞춰 이란 전역에 대한 대한민국 외교부의 여행 경보도 상향 조정되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팬데믹의 그림자로 덮인 일상을 견디다가, 가지 못한 그 여행을 떠올리며 가끔 혼자 되묻곤 했다. 그곳에 지크와 같이 가려고 한 게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무언가에 빠지면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내가 그때도 그랬던 건 아닐까?
첫 해외여행으로 인도에 갔을 때, 여행의 끝은 언제나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가보지 못한 곳으로, 두 번 다시없을 경험을 하러 갈 수 있을 테니까. 언제든 또 길을 떠나려면 여행지는 그곳에 갔다가 반드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할 장소가 되어야 한다. 낯선 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취향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안전에 대한 기준은 물론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런데 세상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은 재난 시대에 그런 기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국과 이란의 대치 상황으로 페르시아만 여행과 관련해서 수많은 밤을 걱정으로 지새웠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모험을 하러 가는 낯선 세상도, 떠나야 숨통이 틀 것 같은 이곳도, 가는 길에 만날 풍경과 사물과 사람까지 다 같이 고통스러운 지금, 미지의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의 지평선이 확장되던 재난시대 이전 여행의 순간들이 아득하기만 하다.
페르시아만 여행이 취소된 후 일 년 반이 흘렀다. 사람은 모든 것에 적응할 수 있다더니, 팬데믹에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놀랍게도 전염병에 대비하며 사는 삶이 결국 일상이 된 것이다. 견뎌내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큰 고비를 넘긴 후 잠깐 잊은 것처럼 긴장을 풀었다가 다시 크고 작은 파고를 맞는 주기를 되풀이하며, 코로나 재난시대는 어느덧 두 해째 접어들고 있다.
by 박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