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홀로 떠난 열흘 간의 유럽여행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물으면 내 대답은 늘 여행이었다.
그리고 여행이 왜 좋은지 물으면 “자유” “자유로움”이라 답했다. 물론 내 일상이 자유롭지 않다는 건 아니다. 때론 환경이나 상황에 의해 완벽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하기에 일상에서 나다운 자유로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았다. 때론 나 같지 않은 행동과 호기심도 여행 안에서는 자유로웠다. 그 시간들이 지금껏 내 여행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음에 품어 봤을 “세계일주”는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언제나 포함되어 있었다. 인근 나라부터 차근차근 넓혀 세계로 뻗어 나아가고 싶던 나의 바람은 차곡히 쌓여 이십 대를 다 보낼 때쯤 동북,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꽤 많은 틈새 노력이 필요했다. 떠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인근 나라들은 비행시간이 6시간 안팎이니 일정한 휴가 안에서 해소할 수 있었지만 유럽이나 미주권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건 꽤 오랜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이십 대의 마지막이 되던 해 지나온 여행을 돌아보며 서른쯤에는 좀 더 먼 곳으로 날아가 보리라 생각했던 마음이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치열한 나날을 보내던 그땐 그저 쳇바퀴 도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이십 대의 마지막 그리고 서른이 시작되는 그 사이 어디쯤 내 여행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 눈치 보이는 긴 휴가, 다녀와서 맞을 일 폭탄 등을 생각하면 쉽게 마음이 먹어지지는 않았다. 떠나는 마음이 가벼워야 여행도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늘 팍팍하기만 했고 그런 마음으로 떠난 여행을 잘 즐기고 돌아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행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선택과 결정이 빠른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다.
그렇게 녹록지 않은 현실을 수없이 고민하며 떠난 여행이 스물아홉 가을에 만난 영국과 프랑스였다.
그리고 처음 떠난 나 홀로 여행이기도 했다.
휴가는 딱 열흘이었다. 출국하는 날까지 일에 허덕이다 늦은 밤 나 홀로 공항에 도착하니 갑작스러운 두려움과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누가 시켜 떠나는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피폐해진 마음은 여행의 설렘을 즐길 새도 없이 끌려가듯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되어주었다. 혼자 여행이 외로우면 어쩌지? 이 시간들을 즐기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했던 마음은 어느새 혼자여서 가능한 시간들로 채우며 만족스러운 시작과 기분을 누리고 있었다. 혼자 하는 식사도, 집중해 볼 수 있는 영화도,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무언가를 끄적여보기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며 떠나기 전부터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이 여행의 시작에 녹아들고 있었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비행기가 정차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일어나 내릴 준비를 했는데 아시아인이 거의 없었다. 필리핀에 살며 아시아 문화권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온통 주변에 전혀 다른 머리색과 생김새,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그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때 알았다. 생소한 분위기와 새로운 환경 안에서 나는 나를 더 가슴 뛰게 한다는 사실을, 게다가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게 될 순간이라는 것만으로 나는 이미 흥분돼 있었다는 것을.
내셔널 갤러리 박물관 앞에서 두 시간여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 적이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약속의 장소였던지 서로 만나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옷차림이 하나같이 달랐다. 민소매를 입고 샌들을 신은 사람, 부츠를 신고 털이 풍성한 외투를 입은 사람 우리는 분명 같은 계절 안에 있는데 그들의 옷은 사계절이 공존하고 있었다. 옷 하나만으로도 개성 가득한 자신만의 스타일과 생각이 엿보였다. 그동안 남의 시선에 갇혀 내 온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두께의 옷을 입고 비슷한 스타일이 무난하다 여겼던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프랑스는 사랑의 도시였다. 내 시선에서 만난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연인들의 사랑 가득한 키스도, 백발노인의 따듯한 키스도 서로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덧 나도 내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곤 공중전화로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새로운 경험들을 나누고 싶었다. “엄마, 나 지금 파리에 왔어. 근데 이곳 사람들은 서로 너무 사랑하나 봐. 모두 자유롭게 사랑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어. 우리 꼭 이곳에 함께 와보자. 짧은 통화였지만 그 순간의 설렘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미루지 않고 표현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넘어서야 엄마와 함께 프랑스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엄마 그때 내가 전화했던 곳이 여기야. 이곳이 내가 혼자 걷던 거리야.
바쁜 일 때문에 여행을 떠나며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겨우 챙겨 온 건 유럽 배낭여행 책 한 권뿐이었다. 그마저도 읽지 못해 간신히 지도만 챙겨 다녔는데, 덕분에 꽤 많은 명소를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곳이 그곳이었구나 하며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일 수도 있고 공부를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나고 보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 관광지 이름은 잘 몰라도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으니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거리와 풍경은 내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여행의 시간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자유라는 감정을 갖게 해 주었다.
그 시절 유럽 여행을 온 사람들은 대부분 두세 달 동안 여행을 하는 배낭여행객이었다. 그에 비해 짧다면 짧았을 나의 열흘간의 여행은 비록 깊이 들여다볼 순 없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내게 자유롭고 행복했다 말하고 있었다.
by 우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