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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하는 경제적 행위자?

집합행동과 사회운동 5주차 쪽글

by 페르마타

McCarthy and Zald(1977)의 글은 기존의 사회운동에 대한 개인의 심리적 요인을 강조하는 접근법을 경험적, 이론적 근거들을 통해 간단히 반박한 후, 당시 사회운동을 설명하는 최근/최신의 흐름이었던 자원 동원(resource mobilization) 접근법의 개념들과 명제(가설)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회운동(SM) 자체는 사람들의 선호 구조 자체로 굉장히 넓게 정의하고, 대신에 사회운동기관/산업/섹터(SMO, SMI, SMS)를 통해서 이 사회운동이 실제로 조직되는 방식을 좁게 정의하면서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개념적인 분리는 SM과 SMO, SMI, SMS가 항상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서로와 무관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 – 예컨대, SM 자체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분위기가 되어도, 기관이 일을 못하면 SMO는 쇠퇴할 수 있다. - 을 명확히 한다.


두 가지 면에서는 의문점이 있는데, 첫째는 자원동원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이 완전히 경제학적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사회운동섹터 자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구체적인 사회운동산업 부문들을 다른 부문들과 경쟁하는 산업으로 설정하고 그 내부에서 마치 사회운동기관을 기업에, 사회운동 참여자들을 경제적 행위자로서의 소비자에 빗대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일단 사회운동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법은 경제학적인 설명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 지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연구자들도 스스로 한 부분에서 사람들의 취향(taste) 변화와 같은 내용들은 이러한 경제학적 명제들을 통해서 설명할 수 없다고 언급하고 있듯이, 경제학적 수식/모형들이 항상 전제하는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ceteris paribus)’의 문제에서 사회운동에 대한 이러한 설명도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다른 조건들’의 변화에 대해서 경제학과 구분되는 사회학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경제적 행위자를 전제하고 사회 전체의 부의 증가가 결국 사회운동섹터의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설명은 속류 유물론에서 결국 혁명의 도래를 자본의 축적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찾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면에서 오류의 가능성을 지닌다.


둘째는 사회운동의 잠재적/실제 참여자들을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과도하게 단순한 가정들에 의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가장 크게는, 양심적 참여자(conscience)와 수혜자로서의 참여자(beneficiary)의 이분법적 구분은 의문스럽다. 연구자들도 예시로 들고 있는 것이, 노동운동에서의 지식인이나 여성운동에서의 남성인데 물론 이러한 당사자와 비당사자 운동 참여자들의 구분선이 실제 사회운동에서 긴장을 가져오는 요소라는 점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점점 더 정체성의 정치가 아닌 횡단의 정치를 이야기하는 사회운동의 측면, 혹은 환경운동이나 교육운동과 같은 특별히 수혜자를 설정하기 힘든 사회운동의 부문들, 젠더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 등을 포괄하여 설명하기에 이 글에서의 개념 구분은 마치 사회운동을 소수자/약자들의 강자에 대한 투쟁으로 환원하는 듯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 단순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McAdam(1986)의 글은 사회운동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서 자원동원이론이나 정치과정이론에 기반한 구조적 접근이 사회운동, 선행 접촉(prior contact), 참여/비참여와 같은 개념들을 세밀하게 세분화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고비용/고위험의 사회운동(high-risk/cost activism)에 있어서 어떠한 요인들이 행위자들의 참여에 결정요인이 되는지를 이론화하고, 이를 1964년의 Freedom Summer 사례를 참여 지원서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통해 검증하였다. Figure 1은 고위험의 사회운동의 참여 요인에 대한 연구자의 이론을 표현한 도식인데, McAdam은 이전의 사회운동(activism) 참여 경험, 운동의 이데올로기와 목표에 대한 동의의 정도, 행동가 연결망에 소속된 정도, 운동 참여에 위험을 증가시키는 개인적 제약 요인들로부터 자유로운 정도가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최근 읽을 수 있는 일련의 통계적 방법의 논문들이 변수나 척도, 지표의 도출 과정들을 대부분 지워버리고 상관/인과성의 존재 여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질적인 자료를 양적인 자료로 변환하는 과정과 통계 분석의 결과와 그 결과에 대한 설명, 만약 가설대로 통계적 검증이 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러한 통계를 이론과 결합시키려는 노력 등이 전반적으로 꼼꼼하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각주 6에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80명에 대한 질적 인터뷰를 추가하는 등 치밀한 연구를 하려고 한 점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꼼꼼한 서술이나 연구과정에 비해서 연구결과가 아쉽다는 인상이다. 대부분의 결정 요인들에 대해서 ‘필요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논의하는 데서 그치고 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이전의 구조적 요인에 대해 주목했던 학자들의 설명에 비해서 특별히 나아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한 전체 연구결과에 대해서 아무래도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이 분석대상 표본의 선정인데, 이미 5장 이상의 지원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이미 사회운동에 많이 관여된 상당히 동질적인 사람들일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볼 수 있고, 강한 유대(strong tie)와 약한 유대(weak tie)를 구분하여 분석하는 부분에서도 10명을 적어내는 것이 유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거기에서 유대(tie) 개념을 끌어내서 곧바로 분석하는 게 온당한지,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직접적 접촉’이 가장 중요한 참여에의 요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문스럽다. 게다가 이 결과 또한 통계적으로는 유의할 수 있으나 예컨대 사회운동이 아니더라도 결국에 친구 따라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라는 ‘유유상종’ 또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는 않아서 뭔가 아쉬운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글에서 더 자세하게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사회불만이나 특정한 이해관계 혹은 어떠한 참여에의 동기를 조작(manipulate)할 수 있는 이슈 기업가(issue entrepreneur)의 역할에 관한 사회운동 분야에서의 논의가 더욱 더 궁금해지는 지점으로 남았다. 경제학적인 가정으로 설명되지 않는, 또한 경제학에서는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논의가 사회학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부분이며 사실 사회운동에서는 그 부분이 더욱 실질적으로 중요한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McCarthy, J. D. & Zald, M. N. (1977). Resource Mobilization and Social Movements: A Partial Theory.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82(6), 1212-41.

McAdam, D. (1986). Recruitment to High-Risk Activism: The Case of Free Summer.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2(1), 6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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