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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인간극장 Feb 09. 2016

문, 어디에나

늦은 일기

가장 먼저 발소리가 들린다. 하나, 둘, 셋, 페이드인. 하얀 운동화. 양옆으로 바스러지는 흙먼지. 시선을 조금 들면 어디로 난지 모를 길이 펼쳐져 있다. 걷는다. 걷는다. 어딜 가나 처음일 것이 분명할 그 땅들을 두 발로 꾹꾹 밟고 또 밟는다. 오래 전의 여행을 떠올리는 순간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걷는 동안은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기 어렵다. 지나가는 차, 운전자의 표정, 마주 오는 사람과의 거리,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 익숙한 간판, 낯선 간판, 쇼윈도, 가판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 어느 곳에나 있어서 사실은 죽은 사람의 환생이 아닐까 싶은 비둘기들, 시간마다 울리는 성당 종소리까지 주의를 끈다. 간간이 떠오르는 단상들은 손에 잡히기 전에 다시 가라앉는다. 의식이 내면과 바깥세상을 오가는 동안, 두 발에 닿는 땅의 감촉만이 확실해진다.


산책이 가장 잘 될 때면 그는 자기가 아무 데도 아닌 곳에 있다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라고 쓴 작가가 있었다. 나는 걷기가 가장 잘 될 때면 지구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이미지는 장거리 비행기 안 좌석 모니터에서 비롯한 건데, 모니터 속 비행기는 산과 바다를  슉슉 지나쳐 열 한 시간 만에 나를 서울에서 8,500km 떨어진 곳에 툭 떨어뜨려 놓았다. 어리둥절한 기분을 어떻게 해보려고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지구본을 엄청 확대하지 않는 한 거의 제자리걸음이었지만.


그렇게 부유하듯 걷던 곧은 주로 도심 속 골목들이나 강변이었는데,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어디에나 문이 있었다. 멀리 문이 보이면 나는 그 문을 열어보는 상상을 멈추기 어려웠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빛이 쏟아진다. 오른쪽엔 꽃밭이 있고 그 뒤로 회색 벽돌 담장이 보인다. 엄마 목소리다. 따뜻하고 아득한 저녁 놀 빛 공기에... 그러다가 들려오는 모국어 아닌 말에 문득 현실로, 제 자리로, ‘제’ 자리라기보다는 밟고 있던 물리적 공간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 room by the sea >, 1951 by Edward Hopper


문은 어디에나 있지만 문을 열면 같은 풍경을 가진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문을 열면 언제나 우리 집 마당을 보았다.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 화가는 문을 열면 바다가 있는 방에 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에 내 마음의 방을 하나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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