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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인간극장 Nov 15. 2016

스무 살의 아버지를 만나 본 적 있나요?

늦은 일기



“이거 나한테 줘도 돼?” 

“난 2년 동안 잘 썼어. 이제 누나가 써.”

군 복무를 마치고 온 남동생이 짐을 정리하다 말고 노트 한 권을 건넸다. 원래 회색이었는지 아니면 색이 바랜 건지 모를 낡은 하드커버에는 아무런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노트를 펼쳐 보니 만년필로 공들여 쓴 글자들이 하얀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1982년 2월, 스무 살의 어느 날을 시작으로 어떤 날엔 일기가, 어떤 날엔 시가 쓰여 있었다.      


‘아버지가 시 같은 걸 쓰는 사람이었어?’ 놀라움은 애틋함으로 번져갔다. 나는 밤이 다 가도록 잠 못 이루고 노트를 읽었다. 아버지는 시에서 태양을 보고 벅찼다가 별이 너무 아련해 운다. 너무 일찍 떠나버린 어머니를 그리다가 문득 아내의 거칠어진 손을 발견하고는 자책한다. 처음이었다. 우리 삼남매의 아버지가 아닌, 스물 남짓의 그를 마주한 것은. 낡은 앨범 속 사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젊은 아버지의 육성이, 아니 아버지이기 이전의 한 청년의 육성이 울렸다. 내 나이일 적의,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때의.      


아버지의 일기는, 아니 시는 1992년 11월 12일에 끝난다. 내 남동생이 태어난 날이다. 둘째의 탄생을 축복하는 시에서는 초보 아빠의 다짐이 묻어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이 생긴 기쁨에 더는 창작의 욕구가 들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시를 멈춘 것일까? 아마 아닌 것 같다. 책임질 가족이 늘었고 할아버지의 긴 투병이 시작됐다. 삼촌들은 돌아가며 속을 썩였다. 시련은 그렇게 한꺼번에 찾아왔다. 책꽂이 한 편에 노트를 꽂아 두고 다시 펜을 들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게 이십 년이 흘렀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얼까.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며 깨달은 게 있다면, 인간이란 한 살 한 살 먹는다고 그에 비례하여 성숙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삶의 어느 순간, 예상치 못했기에 준비할 수도 없던 순간을 겪어내며 몇 뼘씩 자란다. 내 손에 아버지의 노트가 뚝 떨어진 날, 생전 처음으로 스무 살의 아버지를 만난 순간이 바로 내 인생의 그래프에서 변곡점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게 언제 철이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때였다고 말할 것 같다. 아빠도 엄마도 나의 부모이기 이전에 나처럼 꿈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말이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가 다시 펜을 들기 시작했다. 아니 이번엔 붓이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 거실에는 소파 대신 기다란 책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침엔 두부를 만들고 점심엔 밥 배달을 갔다가 오후 내 밭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밤늦도록 거실에서 글씨를 쓴다. 유명한 선생님들을 찾아 가까운 대도시까지 매주 나가신다고 엄마가 말했다. 자식 걱정, 집안 걱정이 조금 줄었다는 뜻으로 봐도 될까. 가장의 무게를 조금은 덜고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된 걸까.     


동생들과 삼삼오오 돈을 모았다. 백화점에서 화선지와 붓 담을 튼튼한 가죽가방을 골랐다. 뿌듯한 마음에 고 며칠을 못 참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추석 때 깜짝 선물 준비했으니 기대하시라고 너스레를 떤다. 네 것이나 좋은 것 사서 쓰라하면서도 목소리엔 웃음기가 가득하다. 아이처럼 좋아할 아버지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아버지는 점점 나이를 먹는데 나는 자꾸만 꿈 많고 패기 있는 젊은 날의 아버지가 겹쳐 보인다. 이게 다 그 일기장 때문이다. 아, 이러다 또 울겠다. 


“아버지, 이만 들어가셔요. 추석 때 갈게요.”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끊긴 수화기에 대고 소심하게 꺼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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