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강처럼 흐르면 될 거 같아. 우린 이상하지만, 분명 다들 괜찮을 거야. 싫어도 해야 한다면, 강이 가장 좋을 거야.
물은 정말 축복받은 물질이지 않아? 어떤 물체가 이럴 수 있을까? 어디든 갈 수 있고 모두의 생명이고 언제나 같고 언제나 다르고 무엇보다 맛있고.
이 이상한 세상에서 몇 안 되게 분명한 사실 중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의 존재인 것 같아. 누구도 그곳에 갈 수 없는, 완전한 무인도 말이야. 분명, 사람은 갈 수 없는 곳 말이야.
하지만, 너무 가고 싶은 거야. 우린 모두 외로우니까. 어떻게든 그곳에 가서, 영원히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라는지도 몰라. 실제로, 우리도 그러고 있어. 다만 외로운 게 너무 싫어서, 혼자서 우리가 되어버린 거야. 절대로 섬에는 갈 수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거야.
우린 그 섬을 좋아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내심 좋아하는 쪽에 가까울 거야. 하지만 어떤 보람도 느낄 수 없는 도전에, 금방 싫증이 나버렸지. 그래서 사랑도 버리기로 한 걸까? 사실, 섬이 사랑일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난, 너무 큰 착각을 해왔나 봐. 사람이라면 갈 수 없는 곳이 사랑이라면, 너무 이상한 일이니까. 사랑을 품은 사람이 나누며 살아온 역사를 봐. 내 주변에도 꽤 많이 있는 걸? 아직도 믿기 어려운 거야? 인정하기 싫은 거야?
맞아. 난 정말로 인정하기 싫은 거야. 그게 너무 쉽게 믿겨버린다는 거에, 짜증과 울화가 치미는 거야. 내가 못 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냥 질투 나고 싫은 걸지도 몰라.
그런 의미에서, 내 섬에서만큼은 내 생각이 딱 맞아버리는지도 몰라. 아무리 누구도 정복하지 않은 신대륙이라도, 더럽고 추한 곳을 방문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많이 신기했던 거야. 날 사랑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 말이야. 멍청한 내가 버려버린,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회들 말이야. 아무리 그들에게 죄의식과 후회를 느껴도, 난 결국 누구의 상륙도 허락하지 않는, 지독한 놈일 뿐이야. 항상 내 안에 갇혀 살길 바라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렇게 못난 날 사랑해 준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날 이렇게 만든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강이 필요한 거야. 이 텁텁하고 꽉 막혀서 새까매진 마음 안에도, 변함없이 흘러줄 수 있는 물이 필요한 거야.
어려운 일 아니냐고? 여태 만든 것처럼, 만들면 그만이야. 만드는 우리를 끊어내기 위해, 영웅도 만드는 거야. 아무튼 어지럽지만, 살아가는 우리에게 관리자가 필요한 거니까. 운 좋으면 일석이조, 아니어도 보통 이상.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멍청한 거야.
하지만 이것도 분명, 인위적인 거야. 사람인 이상, 그럴 수밖에 없는 거겠지. 자연스러운 걸 모두 버렸으니까. 우리의 어떤 행동도, 더는 자연스럽지 않아. 항상 균형에 벗어난 선택을 하고 있어…….
아무튼 강은 나지만, 난 절대 강이 아니야. 사람들이 강을 본다면, 내가 그들과 같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야.
그만큼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한 거야. 네가 팔레트로 태어났다면, 존재의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니? 아름다운 그림의 바구니이기 위해선, 아름다워야 하는 거야. 괜히 화려해 보여도 좋고, 단순해도 좋고, 영감을 불러일으킬 거 같은 이상한 디자인이어도 좋아. 적어도 넌, 팔레트다울 필요가 있는 거야.
내겐 강이 그렇더라. 너무 많고 복잡한 우리를 어르고도, 좋은 얼굴이 되어줄, ‘나’ 말이야. 가면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좀 애매하긴 해. 가면이랑 같은 거지만 가면이라고 부른다면, 이미 들켜있는 거잖아? 가면이지만, 사실은 강으로 보이는 가면이 가장 좋은 강인 거야. 응, 이제 완벽해.
하지만, 정말 모든 팔레트가 명화의 부모이길 바라는 걸까? 절대 그럴 리가 없잖아. 사실은 창고가 편한 놈도 있을 거고,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와 편하게 일하길 바라는 놈도 있을 거야……. 어떻게든 엉망으로 망가지고 싶어서 아이의 장난감으로 살다가, 반려동물의 해코지로 버려져서, 쓰레기장에서 영원히 썩어가고 싶은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맞아, 나도 명화의 부모는 싫어. 절대 강을 그만두지 않을 거니까. 사실, 누구나 그러고 있지.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더라도,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 나도 그런 거야. 명화의 부모가 되는 건 관심 밖이지만, 팔레트라는 반열에 들기 위해선, 가면을 쓰는 것보다 더한 일을 해야 하는 법이야. 맞아, 참 구리고 구차한 일이지.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외로운 법이야. 남들이 원하는 자신이 되는 길이든, 진짜 원하는 자신이 되는 길이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 때문에 똑같아져야 한다는 거야. 누구도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알 방도가 없다는 거지. 그야, 다들 똑같이 살고 있으니까. 결국, 남을 이해하는 거란 불가능한 거겠지.
결론을 말하면 난, 날 이렇게 만드는 정체를 온전히 가지고 싶어. 그래! 비유하자면, 명화의 부모가 스스로 명화가 되길 바라는 거야. 그건 결국 부모이길 포기하는, 아니 부모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일이지. 목적이 명화가 되는 거라면, 다른 모든 명화를 증오해야 하니까! 꽤 좋은 비유인 거 같아. 내 모든 비열함과 열등감 그리고 증오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거잖아!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게 뭐겠어? 이상하게도, 명화의 부모가 되는 자격증이야. 푸른 강으로 온몸의 신경을 두르고, 곤두세우는 거야! 내 안의 모든 어리광쟁이의 하소연을 듣는, 그런 고문이 ‘나’였던 거야……. 그래야만 내 목소리를 처음으로 세상으로 던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