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139. 쉽게 혐오할 수 있는 캐릭터와 낭만의 타협 –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야.
이제 다시 단순하게 ‘호색한’적인 인물의 이야기로 돌아왔어. ‘핫포사이’나 ‘미네타’같은 단순하게 ‘호색한’적인 인물에 대해선 충분히 얘기했고, <단다단>의 ‘겐타’에 대해서 알아본 후, 낭만을 합의하는 시대에 대한 얘기로 끝맺으면 되겠네.
<단다단>의 ‘겐타’는 비중이 높지 않은 조연 캐릭터야. 요괴, 우주인, 초능력이 뒤섞인 세계에서 고등학생들의 퇴마 전투(?)가 이뤄지는 <단다단>의 세계에서, ‘겐타’는 자체 전투력이 0인 인물로 등장하거든. 어떻게 보면 <내가 바란 인간상>에서 얘기했던, ‘우솝’과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보면 돼.
그는 지극히 평범한 ‘오타쿠’ 캐릭터로서, SF, 프라모델, 전투로봇 애니메이션에 열광해. 그는 주변에서 자신의 관심사가 무시 받은 상처가 깊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려고 하지. 주인공 일행을 만나기 전까진, 그 몰두가 ‘자신’이라는 틀 속에 내향적으로 은닉하는 형태를 보여. 그의 꿈이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방향으로 해소되는 건 지극히 제한된 환경이거나,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치부해도 무방할 정도였지.
특히 애니메이션에서의 이런 ‘오타쿠’ 캐릭터는, 주로 원작가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그들의 관심사를 그대로 대표하기도 하고, 쉽게 혐오되는 대상인 ‘오타쿠’보다 ‘어떤 것에도 뜨거워질 수 없는 인간군상’(항상 ‘오타쿠’ 캐릭터를 격멸하는 주변인이나 엑스트라가 등장하지.)이 더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거든.
‘겐타’의 경우, 우연한 계기로 주인공 일행과 접점이 생기면서, 해당 캐릭터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한 번 확대되는 연출을 보여주지. 첫 전투에선 한 가지 ‘발상의 전환’ 정도의 도움만 되고, 대부분 ‘짐 덩어리’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다음 전투에선 주인공 일행이 우주인에게 선물 받은, ‘나노스킨’(한 마디로, 상상력만으로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는 물질)이라는 아이템으로 거대 전투로봇을 창조, 조종하여, 공룡같은 적을 격파해내지. 내 인상엔 <후레쉬맨>이나 <고질라>같은 고전을 아주 잘 오마주한 에피소드라고 느꼈어. 사실,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겠지.
이 전투의 과정에서 ‘겐타’는 자신이 오랜 기간 바래온, ‘전투로봇으로 직접 적과 싸운다.’는 꿈을 이뤄낼 수 있었어. 그에게 전에 없던 카타르시스가 내려왔고, 그것은 그에게 주인공 일행의 퇴마에 어떻게든 동참해야겠다는 ‘이유’로써 작용하지.
겐타는 일반적인 소년만화의 인물과는 사뭇 다른 조연인데, 작중 비중이 높지도 않고 물리적으로 강하지도 않은 인물이 <파워레인져>의 일원이 된 격이거든. 내가 ‘겐타’를 다른 ‘호색한’적 캐릭터와 굳이 묶어서 분류하는 이유는, 많은 독자가 일관적으로 불호라고 평가하는 캐릭터에 이상하게도 ‘겐타’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 이유를 분석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겐타’라는 인물 설정의 ‘특수함’ 덕분에,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느꼈던, 뭔지 모를 기묘한 직감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었어.
‘겐타’라는 인물도 어느 정도 ‘호색한’적인 계기로 작품에 소개되었기 때문에, 이 방향으로 다른 예시의 인물과 연결할 수도 있었지만, ‘겐타’의 그것은 ‘핫포사이’나 ‘미네타’, ‘지라이야’와는 정도와 종류가 다른 것이었어. ‘겐타’는 단순히, 주인공인 ‘오카룽’처럼 이성에게 관심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우연히 엿들은 주인공의 대화가 금구슬(일본어 표현으로 남성의 불알을 금구슬이라고 부르기도 해.)에 관한 것이어서, 야한 농담이 인기의 비결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거든.
‘겐타’는 ‘오타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서, 타인과의 관계에 무지하기에 이런 이상한 수식이 완성되는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겐타’가 보이는 ‘호색한’적 면모가 다른 예시 인물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당신도 이제 알 거 같아.
다음으로 난 ‘오타쿠’라는 인물 설정에 주목하기로 했지. 그가 사회 부적응자같은 오해를 하는 것도 독자가 이 캐릭터에 불호하는 이유가 되긴 하지만, 그 모든 근간은 ‘겐타’가 ‘오타쿠’의 정체성에서 탄생한 인물이라는 점을 핵심으로 두고 있어. 그는 ‘오타쿠’적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이기에 말투와 언행이 이른바 ‘중2병’스럽고, 체형은 통통하고 특유의 사각 안경을 착용했으며, 오해 때문에 사용하는 야한 농담은 진행되는 이야기의 맥락과 전혀 상관이 없어서 짜증을 유발하지.
여기서 내가 ‘갠타’뿐만 아니라, ‘핫포사이’나 ‘미네타’와 같은 캐릭터가 가지는 의의를 처음으로 구체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는 거야. 이른바 ‘쉽게 혐오할 수 있는 캐릭터’도 다른 모든 캐릭터가 그러하듯 작가의 확실한 의도를 반영하고, 그 의도란 독자에게 그런 혐오와 껄끄러움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인간상을 작품 속에 심어두는 거야.
예시로 사용한 이 세 캐릭터는 일관되게 독자에게 비호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난 이러한 캐릭터가 독자가 피하고 싶어 하는 본인의 내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실험의 일종이라는 직감에 사로잡혔어. 맞아, 여기서 다루는 ‘독자’란, 주로 소년만화를 소비하는 젊은 남성을 표준으로 하는 거야. 물론 다른 세대나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인종 등, 만화를 소비하는 모든 ‘인간’에게 조금씩이나마 상관이 있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주로 젊은 남성에게 크게 껄끄러울 수 있는 주제에서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 ‘겐타’와 같은 ‘오타쿠’ 캐릭터에 그저 만화적 재미를 느끼거나, ‘핫포사이’의 기행에 그저 귀여운 어르신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야 있지만, 이러한 캐릭터를 그런 정도로 느끼는 사람은 ‘젊은 남성’이 아닐 확률이 훨씬 높을 거라는 말이야.
여기서 다시 이 글의 전편에서 주로 사용했던, ‘리비도’라는 개념과 <천원돌파 그랜라간>의 ‘시몬’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어. 이른바 ‘젊은 남성’인 독자들이 ‘호색한’ 캐릭터나 ‘겐타’와 같은 캐릭터에 불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캐릭터들이 ‘젊은 남성’에게 사회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리비도’를 찌르고 있기 때문이야.
시대가 지날수록, ‘핫포사이’나 ‘미네타’같은 ‘호색한’적 인간상은 ‘올바름’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기 마련이야. 1980~90년대에 연재되었던 <란마 1/2>의 ‘핫포사이’와 2010~20년대에 연재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미네타’는 ‘호색한’적 면모에서 시대의 차이가 드러나거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핫포사이’의 행보는 지극히 공공연한 개그요소야. 그가 젊은 여성을 밝히는 행동엔 어떤 제동장치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미네타’가 또래나 젊은 여성의 외모나 육체에 변태적인 관심을 보이는 건, 꽤나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계략으로 묘사돼. 물론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세계관을 기준으론 상당히 공공연한 변태행위이지만, ‘핫포사이’가 누리는 자유(?)에 비하면 우수울 정도지.
두 인물 사이에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의 근간에는 <천원돌파 그랜라간>에서 살펴보았던 ‘리비도’적 성찰이 존재하고, 이 주제가 시대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해 왔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을 거야. 프로이트는 인간사회 특유의 ‘본능의 갈증’을 캐치했고, 그의 이론 내부에서 그 갈증이 해소되는 방법론도 제시했어. ‘핫포사이’라는 인물을 통해선, 그런 갈증의 해소가 해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시대상이 반영되고, ‘미네타’라는 인물을 통해선, 그런 표현에 훨씬 조심성 있게 접근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지.
두 인물이 ‘본능의 갈증’을 표현하고 있는데도, 독자 입장에서 갈증의 해소가 아닌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런 ‘인간상’이나 ‘방법론’이 의심에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불가능한 영역에 이미 도달해 있기 때문이야. ‘나루토’처럼 스승의 좋은 의지를 계승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핫포사이’나 ‘미네타’처럼 젊은 여성에게 당황스런 추파를 던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심지어 이런 ‘호색한’적인 주제에서 벗어난, 다른 ‘리비도’의 경우에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좀 충격적이야. ‘겐타’의 경우가 딱 그러하지. 그도 전자의 두 인물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호감을 유발하고 있는 캐릭터지만, 거의 전적으로 ‘오타쿠’적 인물상이라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겐타’를 통해 보여지는 ‘오타쿠’적 인물상이란, 사회 속에서 ‘찌질하고 소외된’, 누군가의 낭만을 대표한다는 점을 꼭 알아줬으면 해. 애초에 ‘오타쿠’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배경에는, 그들의 언행이나 열정을 바치는 분야가 집단의 보편적인 취향과 동떨어지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야. 때로는 가상의 세계에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지고 성적 취향을 향하게 하는 모습이 그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지만, 세상과 사회 속엔 열정을 쏟을 분야가 정말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잖아?
‘겐타’에게 독자가 불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고 봐. 앞에서도 말했듯, 그의 언행이나 외관이 ‘정상적인 틀’에 벗어나는 것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 있지. 다른 측면으론, ‘겐타’같은 소년만화 속 ‘오타쿠’ 캐릭터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결부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 사실 자체가 해당 만화에서 ‘오타쿠’라는 존재를 심도 있는 토픽으로 끌어오기 용이하다는 장점을 만들어내. 중요한 점은, 그 만화를 읽는 독자도 ‘오타쿠’적 공감각을 느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거야. ‘겐타’에게 크게 공감하고 있다면, 자신의 ‘오타쿠’적 모습이 주변에서 무시당하던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고, 크게 공감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이렇게 만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부정에서 ‘겐타’를 바라보게 되겠지.
나름 ‘겐타’라는 인물상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변호해보고자 이 글을 쓰는 면도 있어. <천원돌파 그랜라간>의 ‘시몬’을 전편에서 사용한 이유도 이 문단에 있고. ‘겐타’와 ‘시몬’은 프로이트의 ‘리비도’이론으로 바라보면, 정말 닮은 점이 많은 캐릭터야.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두 캐릭터 모두 자신의 ‘리비도’를 성욕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여러 측면을 이끄는, 근원적인 정신적 에너지와 충동에서 찾으려고 하거든. 해당 ‘리비도’를 촉진하는 계기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이성이 자리 잡을 때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인물은 이 ‘리비도’의 파도에 시원하게 올라타려고 애쓰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어. 그런 ‘리비도’의 강렬한 실현을 두 인물 모두 거대 로봇을 통해 이뤄내는 것도 어찌 보면 상당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어. ㅎㅎ
하지만 두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대우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지. 내가 ‘시몬’은 명확하게 ‘에피테우스’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보는데, ‘겐타’엔 조심스러운 이유가 있거든. 우선 가장 큰 차이는, ‘시몬’의 서사는 완성되어 있는데 ‘겐타’의 것은 그렇지 않고, 동시에 ‘시몬’만큼 완성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야.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시몬’은 이야기의 주인공 캐릭터로서, ‘리비도’적 성장이 완성될 필요가 있는 캐릭터지만, ‘겐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지. 물론 ‘겐타’에게도 ‘에피테우스’적 전통이 드러나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단다단>작가의 입장에서 ‘겐타’의 서사를 철학적으로 완성할 메리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는 명백히 조연인 캐릭터이고, 전투 중에 극적인 성장을 몇 번 보여주는 것만으로 독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입장에 있으니까.
애초에 ‘켄타’라는 캐릭터를 설계하고 운용하는 목적은 ‘에피테우스’적 정통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를 ‘미네타’나 ‘핫포사이’처럼 ‘쉽게 혐오할 수 있는 인간상’의 예로 사용한 거야. 이 글의 마지막 후편에선, ‘쉽게 혐오할 수 있는 인간상’의 정의를 마무리하고 ‘낭만을 타협해야 하는 시대’를 짚으며 글을 마무리하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