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 때. 제가 브런치에 폭 빠져있던 날을 기억합니다.
매일 꾸준히 틈만 나면 하얀 메모지에 또는 종이에 아무튼 어딘가에 상상의 바다를 펼쳐놓고 언제까지고 허우적거리던 날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저의 탈출구였고 그들의 얄궂은 장난들을 따라가면서 그냥 제가,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는 저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재미있게 읽힐까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슨 대단한 뭐라도 된 양 벌써 자만,을 했었습니다. 이 말을 쓰는 지금도 양 볼이 화끈하네요 창피해.
그래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고 그들의 이야기고 내 세상이 아니라 그들의 세상이니까요.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기력함이 꼭 브런치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냥 제 일상 전반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어요. 작년 겨울 즈음부터일까.
제가 제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담당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도대체 행복한건지 행복한 척 하는 건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무슨 기준과 방향으로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는 뭘까, 뭐기에. 그냥 좀 한가해서 이런 기분이 드는건가.
일에 미쳐 보았습니다, 좋아라하는 파티를 열어 많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왁자지껄 놀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또 제풀에 지쳐 바른 생활이 필요한건가 싶어 술을 끊고, 상담을 받고, 좋아하던 전시를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하루를 물 샐틈 없이 빽빽하게, 사람과 일과 이벤트들로 채웠습니다. 보통 이렇게 바빠지면 괜찮아지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죠, 괜찮아 지지가 않는거에요. 내일도 모레도 약속이 있고 할 일들이 있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 일상을 받쳐주는 회사가 있는데.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던 뿌듯함을 맛본 게 언제였더라. 순수한 열정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온 저에게 맹목적인 무언가가 사라져버린 걸 느낀 순간.
저는 식탁에 올려놓은 김치 볶음밥 앞에서 오래 오래 울었습니다.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구나.
약속을 잡고 계획하고 피드백 하는 일들이 다, 내가 나로 살아가고 있다고 증명하기 위한 발버둥일 뿐,
정작 내 마음의 소리가 말하는 '하고 싶은 것'들은 '언젠가 어느날에' 쯤으로 미뤄두고 있었구나.
식어가는 볶음밥 앞에서 혼자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뭘 하고 싶은건데? 라고 묻는 나에게,
모르겠어. 근데 이건 아니야. 라고 답하고,
그게 뭐야. 지금도 이대로 괜찮잖아, 라고 달래는 나에게
뭐가 문제야? 또 토를 달고, 묻고 답하다보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지 않아.
결국은, 꿈의 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저를 그토록 만성적인 우울에 빠지게 한 이유였습니다.
대학교 때 애정하는 과제나 팀플, 보고서를 작성해보신 적이 있나요?
그 일을 끝내기 위해 몇 날 며칠 밤을 새고, 피 튀기게 준비하면서도 막상 그 일이 아주 잘 - 예를 들어 A+의 성적이라거나 - 마무리 되면 참을 수 없이 뿌듯해지잖아요. 저는 유독 그랬던 것 같습니다. 비단 과제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일 벌이기를 좋아했던 기억. 시키지도 않는데 무슨 파티를 한다고 오만 친구들을 주말마다 귀찮게 하고 기업들에 메일을 보내서 우리 이 것 좀 협찬해 달라고 엉뚱한 제안을 하기도 했고. 봉사활동이며 대외활동이며 아무튼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못 견디던 스물 셋, 넷의 제가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혼자 계획을 세우고, 달성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고, 또 아니면 말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저의 본 모습이었었는데.
그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가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밤에는 훗날의 저에게 '언니, 어른이 되면 나는 행복해?' 물어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뉴욕에서 모델들의 사진을 찍어 기획전을 열던 스물 셋의 저는 스물의 저에게 자랑스러웠고, 스물의 저는 홍대로 등하교하는 대학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랫던 열 일곱의 저에게 자랑스러웠으니까. 나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어른이 되면 반드시 행복하겠지,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기만 하면. 그렇게 믿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해온 스물 여덟의 저는 왜 꿈 많던 스물 넷의 저에게 하나도 자랑스럽지 못할까요. 그게 제 자신을 안쓰럽게 했습니다. 왜, 왜 나는 나를 불쌍하다고 여기기까지 내버려 둔걸까.
그 밤이 지난 다음 날, 저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놀라던 팀장님, 말리는 가족들,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어뜯 듯 물어보는 동료들의 모습이 지나고, 지나가고.
2주 뒤면 저는 완전히, 백수가 됩니다. 3년간 매일 오고 갔던 익숙한 직장이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그냥 하나의 회사,가 된다는 것이 잘 실감나지 않습니다. 낯익은 일상을 벗어 던지고 나면 뭐가 올까.
제 막막함을 아는지 모르는 지 뭘 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답답스러울만큼 무엇을 해야 좋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뭐 하나를 붙잡아 그래 이거였어! 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하지만, 곧 자리를 찾아가겠지요. 산티아고가 사막을 건너 파티마를 만나고 보물의 위치를 발견해 다시 사막을 건너오는 과정에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저는 막연히 제 마음이 옳은 길을 선택해 주겠지 믿고 있습니다.
저의 연애소설을 기다려주신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쓸게요, 쓰겠지요. 저도 그와 그녀를 놓고 설레하고 밀고 당기고 안았다가 놓아주는 일들을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지금은, 제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 싶습니다.
제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억하고 싶어서요.
꿈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게 될 때까지 -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 때가 되면 다시 또 그와 그녀의 사랑을 노래하고 꿈꾸면서 아, 너무 행복하다.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