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오늘 찍은 사진을 보니 볼살이 많이 올랐다, 아니 아주 터질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우연히 에어비앤비하는 집 앞에서 전 직장 - 이제 이렇게 불러야겠지, 아직 어색하다. - 후배를 마주쳤다. 한차례 난리법석 인사를 나누고 끄트머리에 후배는 신기한 칭찬을 했다.
"퇴사테틱이 있긴있나봐 진짜."
퇴사테틱. 퇴사와 에스테틱을 합친 말인데 아주 그럴듯한 표현이다 - 하긴 평소의 두 배를 자고 노는데. 그러고보니 퇴사한지 2달이 되어간다.
그런데 도무지 3달 전의 내가 떠오르지가 않는다.
굉장히 무기력하고 주기적으로 답답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냥 초등학교때 즐겨 가던 놀이터의 그네처럼 녹슨 잔상만 희미한 것이다. 3년 하고도 3개월 그 길었던 기간이 이렇게 빨리 잊혀진다는 것이, 또 25일의 마법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고 놀랍다.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말이 와닿는다.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당장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진다는거야. 이 나이먹고 부모님한테 빌붙을 수도 없고.
맞다. 그런데 살아진다.
지난 한 달간 나는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는커녕 지난달에는 그래도 용돈 조금 드리기까지 했고 헌금도 꼬박꼬박내고 지하철역에서 마주친 거리의 할아버지께 식사도 계속 사드릴 수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모르겠다. 일단 다짜고짜 인터넷으로 풍선을 팔기 시작했는데 - 이유는 파티플래너로 살아가면서 파티용품 브랜드도 함께하는 것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또 구매하는 패턴으로 어떤식의 파티를 좋아하는지도 볼 수 있고, 뭐건간에 재밌어보여서였다. 그게 나를 한 달간 먹여살렸다, 큰 돈은 아니지만 그렇게 저렇게. 그래도 커피 먹고 싶을 때 다 마셨고 오랜만에 만난 좋은 사람들 밥도 가끔 사주고 했다. 신기하다, 신기할 뿐이다.
지금까지는 그랬는데 3개월째에 접어드는 이제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못해 여름이 움찍대는 오월은 고민이다. 그 전에 '고민이다' 하면 책 몇 권을 읽어야 하는데, 무슨 무슨 개인 프로젝트를 해야하는데 와 같은 투드리스트의 형태였는데 사실 요즘의 고민은 그보다 더, 포괄적이다. 내 삶이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까, 그리고 그 물줄기로 누군가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래, 고민이라는 표현은 좀 괴팍하다. 심혈을 기울여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이리저리 생각하는 과정이 퍽 즐겁고 가슴 벅차기 때문이다.
이 벅찬 생각에 골몰하는 이유는 이제 그 생각이 저 멀리 강 건너 주토피아가 아니라 내 삶의 청사진이기 때문인 듯 하다. 내가 그리고, 상상하는대로 이루어갈 자유가 넘치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자신감이 넘쳐서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나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아직도 세상에는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많고, 10억이 큰 돈인지 작은 돈인지 몰라서 창업을 포기했던 스물 네살 때보다 문제는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갈 이유가 아직 충분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