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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May 29. 2018

#7. 잊고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

눈 깜빡할 사이에 -

오월이 다 갔다. 오늘 아침, 큐티 노트에 날짜를 적어넣다가 깜짝 놀랐다. 28일이라니, 이 아름다운 달이 이틀, 밖에 남지않았다니.


나는 오월을 참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말에 나의 마음이 다 담기지 않아서 아쉬울 만큼. 좋아한다.

이 소중한 계절을 이토록 정신없이 흘려보냈다는 것이 미안하기 그지없다. 흥청망청 놀러다닌 것이 아니라 - 그 아름다운 햇살을 가만히 바라볼 틈도 없이 바빴던 시간에 대한 한탄인 것이다.


바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들 한다.

퇴사 후가 더 바쁘다는 것을 남들은 하는 일이 잘 풀려가기 때문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이다.

좋은 기분 - 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맞는 말이다. 만날 사람들이 계속 있고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어떤 기업에 속해있지 않고 내가 나 자신으로 서 있기만 해도 누군가들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아주 놀랍고 감사하다.


하지만 그 정도와 속도에 대해 나는 이 밤, 마뜩찮아한다. 왜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이, 또 갑자기 들이닥쳐야 하나. 나는 이 정신없는 업무량에 질리고 질려 회사를 나온 것이 아니었었나. 사실 이 한탄은 매우 모순적이다. 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자, 우리가 이제 파티플래너 개개인으로 있지말고 문화기획팀을 만듭시다, 동기부여를 하고, 홍대 한복판의 공간을 빌려 2년 전 열심을 다했던 프리마켓을 다시 열고, 협동조합 정관을 쓰고 사업계획서를 쓰는 그 모든 과정이 나의 머릿속에서 나온 선택이면서도. 나는 턱을 괴고 앉는다. 후련하지 않은 갸우뚱을 한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불만인 것일까.

왜 아직도 이렇게 모자라, 모자라다 하는 것일까.


며칠 전, 성수동에 있는 4층짜리 건물에 새로운 파티를 제안했다.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기획안을 짜고, 오늘은 열 두어명의 사람을 앉혀놓고 회의를 했다 - 뭐라도 되어서가 아니라 오지랖이 넓은 죄로.

멋있는 일이다,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 뜨거운 심장으로 부딪힐 필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생생한 일인지. 그런데, 그런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것이다.


얼마전 있었던 생일 파티에서 한가득 받은 선물이 아직도 방 한 켠에 그득하니 쌓여있다. 정리되지 못한 방에 들어와 쓰러지듯 잠에 드는 하루를 두고 - 무슨 기준으로 살 만하다 할 것인가.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에게 생일을 축하해줘서 정말 고마워. 선물해준 그 립스틱 색깔 엄청 마음에 들어 최고야, 라고 말할 1분 30초가 없다면 괜찮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친구에게뿐이랴.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첫째딸이 되는 것은 내 평생의 숙제였다. 명문대에 들어가야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야하고, 두 명의 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맏이여야하는 것은 나에게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 무게가 나를 짓눌러 도대체 진짜 나는 어디로 숨었는 지 찾지 못할 정도가 될 때까지 나는 참았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속삭이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닫았다. 그래서 퇴사를 밝힌 다음날 내 방 책상에 올려져있던 리더십과 자기계발에 대한 열 두어권의 책을 보았을 때 나는 오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 작은 사업 계획을 메모장에 적으면서까지 들어주시는 엄마 손을 잡고 미안해 고마워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나보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했지, 한번도 명문대에 가고 대기업에 가야한다고 한 적이 없다. 내가 만들어낸 '이래야 행복하다고 여기실거고, 이래야 자랑스러운 큰 딸이지' 에 갇혀 나는 얼마나 오래 나를 힘들게 했던가.


친할머니를 뵈러 오랜만에 순천을 찾아내려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내일 모레는 큰 딸이랑 브런치 먹자'


'브런치? 나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


까르르가 묻어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소녀같다. 뉴욕이며 도쿄며 쇼핑 여행은 그렇게 펑펑 다녀놓고 엄마랑 브런치 한 번 같이 못먹어본 내 삶은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전화를 끊고 63빌딩에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가장 비싼 메뉴를 선택하고 나니 마음이 이토록 가벼울수가 없다. 마음이 복잡할 때의 해결책을 이런식으로 배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복잡한 무게만큼나누면 된다 단,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오늘은 오랜만에 두 다리를 쭉 펴고 편한 잠을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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