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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Jun 29. 2018

#8. 세상, 이라는 아주 큰 회사

어떻게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좋아하다가, 아까워하다가, 힘들어하다가.

바쁘고 바쁘고 바쁘게 돌고돌아온 곳이

고작 원점, 이라는 게 참 슬프다.


사실 어느순간부터 내 머릿속에 내가 퇴사를 했다는 사실은 그닥 중요하지 않아졌다. 먹고 살 고민보다, 행복에 대한 걱정보다, 오늘 해내야만 하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7월이 코 앞에 온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말이 맞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같이 왜 그렇게 바빠? 라고 걱정섞인 질문을 한다. 그 바빠, 의 밑바닥에 일이 너무너무 잘되서, 라는 자신만만한 근거가 깔려주면 참 좋을텐데,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말하면 오늘 통화에서 고객님이 말한

"안그래도 사장님 너무 잘 되고 계시지만.." 에 죄송한 태도가 되려나.


어쨌든, 나는 기본도 모르는 채 사장님이 되었다. 사장님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내 잘못이다. 사장님이 되는게 이렇게 쉬운 일인 지 몰랐다. 가까운 세무서에 가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제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려 해요, 설명하고 이차저차 필요한 서류들을 제출하면 - 된다. 내가 지은 브랜드 이름 아래에 내 이름이 박히고, 내가 만든 스토어 주소가 통신판매업증 아래에 들어가면. 몰려드는 광고회사의 전화를 통해 아, 나 이렇게 대표님, 사장님, 말을 듣게 되는구나. 실감을 한다.


한 때는 하루 한 건 주문에도 신기하고 감사했다. 매일 매일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을 배송하고 품절난 재고를 채워내는 일이 일상이 된 것에 - 더욱 감사해야 마땅하다. 한데.

나는 오늘, 퇴사 전부터 나의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주신 목사님 앞에서 또 뚝뚝 울었다. 다음에 찾아뵐 때는 웃으며 올게요! 했는데.

즐거워 보인다! 는 말을 듣겠다고 약속했는데.

세상의 모든 고민이 내 머리에 어깨에 가득했다.

비단,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아직도,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쇼핑몰을 차리고, 파티플래너 수업을 듣고, 프리마켓을 주최해도.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오히려 그 벌려놓은 일들이 나를 끌고가는 것이 마뜩찮고 불편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목사님은 시간의 4사분면 이야기를 하신다.


유명한 이야기다.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 긴급한 일과 긴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이 많아지는 삶일수록 풍요롭고, 지혜롭게 살 수 있다.

중요하면서 긴급한 일, 흔히 말하는 회사에서의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멍때리고 술마시고 누워서 자고 의미없는 수다를 떨면서 풀어내고 그러는 동안 해결되지 못한 일들을 시간에 쫓겨 해내야 하는 버뮤다 삼각지대에 나는 빠져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그랬지만, 회사를 나와서도, 그렇다, 그렇다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


힘들고 싫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내가 지식이 없고 지혜가 없으면, 의미없는 일에 골머리를 쓰느라 두 배 세 배의 시간이 들어간다. 내게 체력이 없고 근력이 없으면 집중해야 할 때 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내게 충분한 인성이 없으면 품어야 할 때 품지못하고 팀을 이루지도, 이끌지도 못한다. 그리고, 팀을 이루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부끄러웠다.  머리가 되겠다고 그 난리를 치며 회사를 박차고 나왔는데, 막상 두 세사람의 상황을 헤아리고 이끌어 가는 것은, 도망치고 싶을만큼 어렵다. 조그마하게 꾸린 팀의 사람들에게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주고 실망을 주고 답답함을 준 것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숨고 싶다.


갈고 닦고 배워야한다는 것이 사무치는 밤이다.

준비되지 못한 채 나온 회사 밖은, 여전히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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