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점

by 윤성씨

1. 작고 둥글게 찍은 표.

2. 팔괘ㆍ육효ㆍ오행 따위를 살펴 과거를 알아맞히거나, 앞날의 운수ㆍ길흉 따위를 미리 판단하는 일


아빠는 당신이 나에게 별로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했어요.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당신은 내 소꿉친구 붉은 달의 남편처럼 커다란 염소 100마리를 끌고 오지 않았고 우리 언니가 시집가던 날처럼 꽃이 별처럼 수 놓인 원피스를 숙모와 이모, 고모의 딸들에게까지 선물해주지 – 그래, 못할 테니까.


그렇지만. 여기, 내 심장이 당신의 검다 못해 푸르른 눈을 보면 살아 있다고 말해요.

외양간의 소들이 비실비실하다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쓰러져도, 1년 내내 농사한 끝에 남는 게 고구마 몇 개일 뿐이라도. 당신의 팔에 안겨서 하늘의 별을 세고,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면. 나는 달님이 60번 째 바퀴를 돌아도 여전히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할머니는 당신의 수와 나의 수를 두고 고개를 저었죠, 엄마는 담뱃잎을 꾹꾹 눌러 담으며 한숨을 쉬었어요. 엄마는 튼튼한 볏짚 아래서 셈을 놓는 남자를 원했으니까. 셈하는 사람들의 운명은 느티나무와 같아서 백년, 천년 스러지지 않는다고 했죠. 그래서 열 네 살이 되던 날 주판을 잘 튀기는 꼬마 청년과 돌담 길을 걸었어요, 똑똑하다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재미가 없었답니다. 풍성한 털을 한 달에도 몇 번씩 내어놓는 양 떼를 몰고 온 남자도 있었죠, 하지만 그 냄새를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가까이 가기도 힘든데 입맞춤이라니, 말도 안돼요.


당신을 처음 만났던 들판을 기억해요. 나는 정말 수많은 별들을 기다렸어요. 엄마와 아빠의 기대처럼 나를 저 하늘 위로 올려줄 기적의 남자를, 나라고 바라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어느 하나도 나를 웃게 하지 못했어요. 코가 크면 목소리가 거칠었고, 어깨가 붉으면 진실하지 않았죠. 나는 우는 것이 지겨워, 기대하고 고개 숙이는 것에 지쳐서 들판에 나가 앉아있었던 거에요.

흥얼거리던 노래 소리. 당신은 내가 그 멜로디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고 했죠, 그 일렁이는 그림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글쎄요,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추었던 모든 춤들을 나는 다 잊었어요. 당신의 손을 잡고, 그 튼튼한 발등 위에 내 발바닥을 맞추고 추는 춤 말고는 어떤 것도 기억 나지 않아요.


당신과 춤을 추고 돌아왔던 날, 나는 달에 다녀온 토끼처럼 들떠서 가족들에게 축하를 구했어요. 내 기대와 달리 엄마는 배고픈 새벽에 일어나 울게 될 거라고 호되게 말했죠. 언니들도 추운 들에서 얼어 죽고 싶으냐고 번갈아 가며 말렸어요. 어쩜 나는 겁나지도 않았던가 봐요, 당신을 따라 조롱박과 꽃 화관만 들고 마을을 떠났으니까. 그래요, 어쩌면 나는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요. 역시 운명의 끈이 3가지 이상의 색으로 꼬여있으면 불행하다는 말이 맞았다고 씩씩거릴지도 모르죠.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지. 당신은 나를 업고 둥게 둥게 흔들다가,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를 거에요. 그 말도 안 되는 모습에 내가 웃어버리고 만다는 걸 아는 유일한 남자니까.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알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 우리 부족의 남자들은 내가 그리는 그림이 방패 앞에 장식하기에 딱 알맞은 낙서라고 말했었어요. 내가 주전자에 그린 코끼리를 보고 몇 번이고 박수를 친,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었다는 거 – 내가 말했던가요?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를 이야기하며 그 곳에 가져가서 팔면 좋겠다고 했었죠. 나는 흔쾌히 좋아요, 라고 했지만 사실 믿지 못했었어요. 누군가 나의 조악스러운 그림을 위해 금화를 내놓는다는 것은, 망상 그 자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내 손가락이 가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주고, 만들어 내는 족족 주인을 찾아 주었죠 – 그 것도, 아주, 많이. 내 그림들은 전 세계를 여행했어요, 내가 가본 적도 없는 바다 건너 산 건너 사막 끄트머리에까지. 당신은 돌아올 때마다 수많은 금화주머니를 실은 낙타들과 함께였어요. 그리고, 도착하면 항상 고삐를 나에게 곧바로 넘겨주었죠.


항상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람,

고마워요.

오늘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 동네에 돌아오게 될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제 아빠도 당신을 끌어 안아요, 엄마와 숙모들은 내가 입은 붉은 치마가 이제껏 보았던 어떤 것보다 진하고 반짝인다고 심술이에요.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나의 별. 세상의 모든 점이 우리를 안 된다고 말해도 당신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를 잇고 있는 이 은하수를 깨트리지 못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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