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통시장 이야기
흔히 회사 밖은 정글이라는 말을 한다.
끊어지는 월급, 휴지조각이 되는 명함, 골칫덩이로 전락하는 딸자식의 처지 - 이 정도로도 정글이긴 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혹독한 일들 역시 도사리고 있다.
팝콘을 오독오독 씹으며 생각한다.
예방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을까.
모른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인데. 삶이 처음인 어른에게 너답게 잘 살아보라는 말은 참 어렵다.
두 번째 팝콘을 숟가락에 담아 올린다. 오독오독.
짭짤한 소금과 은근한 갈릭향. 약간의 노동을 마친 후라서 일까, 그 단짠 한 맛이 새삼 고맙다.
작년 봄부터 최근까지, 근 1년간 방치해두었던 책상을 정리했다. 책을 주제별로 꼽고 생뚱맞은 전단지며 포스터들을 버리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낱장으로 적어둔 메모를 취합하고 분류하는 시간은 좀 힘들었다. 항상 돌아가고 싶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떤 건 보면서 우스웠고 어떤 건 놀라운 아이디어라 따로 뽑아두기도 했지만 생채기를 남긴 사건의 잔해도 많았다.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계약서와 꼴도 보기 싫은 명함을 집었을 때, 정리고 나발이고 그냥 박스채로 버려버릴까 하던 것을 겨우 참았다.
적어도 이 자료들을 볼 때나마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심성을 심장에 제대로 박아 넣을 수 있으리라.
사건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만남에서부터였다.
에어비앤비를 운영할 투룸 빌라를 찾던 중 한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빌라를 둘러보고 부동산에 들어서니 시편 말씀이 적힌 액자가 보였다.
"내가 여기 앞에 교회 장로 여가 지고.."
"아, 그러시구나. 저도 이 근처 교회 다녀요."
멋쩍은 듯하는 말씀이 사뭇 반가워서 알은체를 했다. 그 공통점이 계기가 되었을까. 그분은 첫 만남이라는 게 무색할 만큼 과다한 정보를 안겨주셨다. 홍대 상권의 매출, 월세, 급 매물 정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곳곳을 손수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었던 것이다. 나는 빌라면 됐던 건데 어쨌든, 잘 접하기 힘든 부동산 정보는 신선했다. 대머리는 다 공짜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내 편견이었나 보다. 나는 그 장로님을 신뢰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난여름, 그분은 홍대에 있는 전통시장을 활성화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몇 주 전 그 근처에서 열었던 프리마켓을 눈여겨봤다고 하시면서. 프리마켓이야, 몇 년 전부터 열어왔던 거라 어렵지 않았지만 시장 활성화는 또 완전 별개의 - 그러니까 상가 분양부터 마케팅과 홍보가 몽땅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보니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고민 끝에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험하려고 회사도 때려치운 마당에 또 언제 이런 인생 탐사를 또 해보겠나. 그 당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시작한 축제 기획이 지지부진했던 터라 좀 더 적극적인 행사 기획에 대한 목마름도 컸다. 인건비 없이 언제 선정될지 모르는 지원 사업에 기획서를 넣는 것도 지치고, 된다한들 수익에 대한 분배도 애매한 상황에서 묵직한 사업비와 인건비, 사무실 지원은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동하고 나서부터는 보다 구체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3개월 간 세 사람의 인건비를 지원해줄 것, 1년간 사무실을 임대해줄 것, 시장으로 진입하는 정문과 후문에서 행사- 정확히는 프리마켓을 열 수 있는 권리를 줄 것. 분양만 하고 끝나는 프로젝트라면 활성화에 의미가 없기 때문에 1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고, 인건비 지급이 만료되는 3개월 이후 자생하기 위해 프리마켓을 열 수 있는 공간과 권리가 필요했다. 상인회장이자, 부동산 사장님이었던 그분은 호탕하게 그러마, 하며 햇살이 무척 잘 드는 7평짜리 오피스텔의 비밀번호도 그 자리에서 알려주었다.
그렇게 시장 활성화 사업단이 꾸려졌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던 첫날. 내가 진두지휘하는 첫 사무실이라는 자부심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새로 생긴 사무실을 정리하고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첫 주는 신명 나게 흘렀다. 좀 정리가 됐을 때 불현듯 시장 사람들에게도 이 내용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인 회장님은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시장 활성화인데 인사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3개월간 진행될 계획안을 뽑아 들고 내려갔는데 이게 왠 일,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새파란 젊은이들이 시장을 살리겠다고 들쑤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현실적인 걱정도 있었다. 유통점이 입점하면서 받아온 활성화 기금 5천만 원을 축나게 써버리는 것 아니냐고 - 수군대는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이다.
맹숭맹숭한 첫인사가 끝나고 나니, 낙담스러웠다.
시장에 스며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날부터 나는 지하로 내려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시는 사장님들의 스케줄에 맞추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나와서 눈 맞춰 인사를 했다. 29번까지 데면데면하던 분들도 서른 번이 넘어가니, 인사를 받아주셨다. 오며 가며 그래서 잘 되어가는 거야? 시장 살아나는 거야? 미심쩍게 물어보실 만큼 서로가 눈에 익어갔다.
'백날 해봐야 안 될 거야! 너네 다 헛고생하는 거야!'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젊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건 알겠는데 내가 봤을 때 이건 애초에 틀린 일이라고 혀를 차는 1층 사장님의 핀잔도 괜찮았다.
자기들의 아지트를 빼앗긴 것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밤마다 시장에 내려와서 욕을 뱉는 여자가 아주 대기업 나셨다고 시비를 거는 것도 괜찮았다.
내가 시장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면, 그래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찾아오게 되면,
나의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허름한 시장 입구에 고객을 유입시키기 위해 무인 서점을 꾸리고, 인테리어 사장님과 합심해서 때로 직접 페인트칠도 하고, 새로운 사장님들을 모시기 위해 각종 채널에 홍보자료를 뿌리고,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면서 시장을 살리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더 정확히는, 새로운 상점을 유치하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오는 일에.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
그런 멋진 일에 누가 박수를 보내지 않으랴.
누군가의 말처럼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아, 왜 그렇게 나는 순진했던지.
2달 동안 애를 쓴 끝에 비어있던 상점 중 15개 중, 9개가 분양되었다. 나머지 5개도 가 예약된 상태였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슈퍼마켓은 대형 유통점이 입점하는 것을 목표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만 입점되면 시장이 살아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이 게임이 무사히 마쳐진 것에 감사했다.
문제는 바로 그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프리마켓이 매주 돌아가면서 하루 10명도 채 들어오지 않던 시장에 많게는 1천 명가량의 인파가 오고 가던 십일월의 어느 날. 요 며칠 수상쩍게 나를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3층에 있는 아가씨죠?" 하는 것이었다.
"네, 그런데요."
"거기.. 계약은 어떻게 됐어요?"
"아~ 상가 분양이요? 거의 다 됐어요."
"아니 사무실 말이에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1년을 계약해주겠다던 사무실은 사실 무계약 상태로 월세만 집주인에게 주면서 우리에게 쓰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씩씩대며 부동산 사장님에게 찾아갔다.
"사장님!!"
방금 듣고 온 황당한 일에 대해 어떻게 된 일이냐고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제 활성화 기금을 다 써버려서 돈이 없다는 시치미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셋의 인건비였던 월 백만 원씩 3개월 몫인 천만 원, 홍보비 및 내부 인테리어로 쓴 천만 원, 외에 또 어떤 돈이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장님은 열심히 내역을 말씀하셨지만 애초에 그 금액에서 사무실 대금은 따로 잡혀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계약서대로 이행을 하기 위해서라면.
"사무실은 원래 1년 지원해주시기로 했잖아요."
"그러려고 했는데 보증금으로 천만 원이나 나가버리잖아 그러면."
"애초에 월세 계약도 안 하고 저희보고 쓰라고 하신 게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아무튼 그렇게 됐어"
뚱딴지같은 소리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논리와 상식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도 있구나. 내 입에서도 검열을 거치지 않은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 이제 분양 다 됐으니까,
저희 필요 없다, 이 말씀이에요?"
"그렇지, 이제 필요 없지"
그렇지. 이제 필요 없지. 늘 이런 멘트는 영화 속에서 독백으로만 나오던데, 현실에서 라이브 하게 들려지기도 한다는 것이 참 신선하다. 문득,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던 첫 번 째 약속이 어그러졌던 때가 지나간다. 마켓 운영 장소에 대한 건이었다. 계약서를 확인하던 날. 평당 200이 넘는 골목에서 마켓을 열면, 아무리 시장 입구라 해도 옆 가게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워낙 강경하게 '상관없어! 여기서 진행해도 돼!'라고 이야기하시는 통에 그러 마하고 도장을 찍었더랬다.
웬걸, 막상 시장 입구에서 소규모 마켓을 진행하자마자 쏟아진 민원에 '누가 여기서 진행하랬어! 단장 나와 봐!'라고 외치며 나를 면박 주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때라도 이딴 대우받으면서 나는 못한다, 고 때려치웠어야 했는데.
"... 그래서 사무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
정적이 감돈 책상을 사이에 두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내가 비슷한 데를 구해주던지 할 테니까.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부동산을 나와, 터덜터덜 올라가던 사무실.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난다.
멈출 수도, 계속 갈 수도 없는 상황에 숨이 막혔다.
나를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책임감이었을까.
이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터널시야였을까.
심장을 무겁게 짓누르는 무능력함. 이게 다 내가 현명하지 못하고, 재능이 없고, 수완이 없어서야. 자책의 자책의 자책이 꼬리를 물고 자존감 중앙에 똬리를 튼다. 도망칠까 그냥. 도망쳐도 되는 걸까.
그럼 나와 함께해주는 두 명의 친구들은 어떻게 하고.
입점을 결정하신 사장님들은 또 어떻게 하지.
애초에 책임 못 질 일을 시작을 말았어야지,
어쩌자고 깜냥도 안 되는 짐을 메고서 산을 오르고 있나.
어두컴컴한 눈으로 벽을 보고 있노라니 오한이 든다. 바깥 소음은 한참 쟁쟁하고,
술에 취한 네온사인이 깜빡, 깜빡, 사무실 불빛을 대신하고,
나는 오늘도 혼자, 오롯이,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극에 달한 생각이 불쑥 치밀어 화들짝 고개를 흔든다.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헐레벌떡 나섰다. 텅 빈 복도를 걸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생각은 나를 따라 나왔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열심히 하면.
그 끝에 뭐가 있어?
껌껌한 지하에서 나는 대답을 찾지 못한다.
그러게. 뭔가가 있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