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이라는 정글의 실체 2

by 윤성씨

오래 방치된 곳에는 갖가지 이야기가 깃든다. 대개의 공포영화가 폐가를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그 내용이 화기애애하지는 않다. 그 시장에도 조금 특이한 역사가 있었다.


이야기는 어느 날 시장에 찾아든 악동들로부터 출발한다. 처음에 그들은 이 환상적인 위치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며 기필코 활성화시키겠노라 계획을 설파했다. 클럽을 만들어서 DJ들을 불러와 북적이게 하겠다, 시장 물품은 온라인으로 판매하겠다, 와 같은 말에 상인들은 내심 마음이 동했다. 차츰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급기야 그들 중 하나를 상인회 부회장으로 추대하기에 이른다. 요란한 취임식을 마친 후, 시장은 점점 그들의 무대가 되어갔다. 공실이 많은 지하 시장에서 밤마다 술판을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불상을 포함한 기이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음식을 만들다가 꿀을 바닥에 질질 흘려대는 통에 벌레가 들끓었다고 했다. 뒤늦게 입수한 CCTV의 한 장면에는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가판대에 놓인 떡을 말도 없이 들고 가는 장면이나 칼을 들고 어슬렁, 하는 모습들이 찍혀있다. 떡을 팔고 고기를 썰며 평생을 살아오신 사장님들에게 그들은 골칫덩이임이 분명했다. 쫓아내려는 힘과 쫓겨나가지 않으려는 힘이 팽팽히 맞서는 시간이 길었다. 경찰을 불러봤지만 심각한 폭행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영업방해라고 하기엔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괴괴한 공기가 어색했으리라. 낮에는 사장님들의 제발 좀 떠나라는 악다구니, 밤에는 악동들의 반격이 이어졌는데 그 방식이 아주 창의적이어서 굿할 때 쓰는 활을 꼽아두기도 하고 시장 후문 앞에 변을 놓아두기도 했단다.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을 삽시간에 해결한 것은 시장 활성화 기금이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몇 천만 원을 두고 사장님들이 각각 무슨 동상이몽을 하셨을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기금 운영의 키를 잡은 부동산 사장님이 악동들의 주거지나 다름없던 공실 상가를 계약해버렸다는 것, 천정과 조명 공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밤에 들어올 경로를 차단해버렸다는 것. 그래서 더는 시장에 머무를 수 없어 잠잠해진 그 사이에 - 나와 친구들이 시장 활성화 사업단이라는 이름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어쨌든 처음 시장에 들어섰을 때는 이런 엄청난 사연을 품고 있을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감춰질 뻔한 역사를 들추어낸 건 어느 밤 찰지게 욕을 하는 여자의 등장이었다.


"내가 여기에 전입신고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또 또 그런다"


"XX 아줌마가 뭔데! 뭔데 XX이야, 다 비켜봐!"


시장 사람들이 말린 끝에 그 종잡을 수 없는 말싸움은 중지되었지만, 곧 있을 사업 설명회 준비에 여념이 없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 여자보다 이 정도는 일상이라는 듯한 시장의 반응 때문이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행사 중에 벌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저분은 누구세요?"


한바탕 푸닥 다리가 끝나고 여자의 욕지거리가 잠잠해지자, 사장님 한 분이 그간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그때 같이 오던 애들 중 한 명의 여자 친구인데... 밤마다 술 취해서 화풀이네. 쯧쯧"


그러면 쫓아보내면 될 것 아니에요,라고 순진하게 말했지만 그냥 욕하고 돌아다는 것만으로 가둬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떠나보낼 수도, 묵인할 수도 없는 관계는 그렇게 질기게 이어졌다.


여자는 밤마다 시장에 찾아와 잔뜩 풀린 눈으로 생과자집 언니에게 싹수없는 년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욕을 퍼부었고, 세탁소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어디 한 번 쳐보라고 시비를 걸었다. 프리마켓을 하고 있는 중에 그녀가 나타나면 식은땀이 흘렀다. 한 번은 '아주 잔치 났네, 났어' 혼잣말을 하며 건들건들 싸움 거리를 찾아 걸어 다니는 여자가 부동산 사장님 눈에 들어왔다.


"아가씨. 이제 여기 그만 좀 와."


"아저씨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에요?"


"내가 여기 회장이야!"


"그래요 아주 잘 나셨네요, 네?"


"이제 나가!"


"아저씨가 뭔데, 아주 한 대 치시겠어?"


대낮부터 또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민망해 참으세요 참으세요 말리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괜스레 숨고 싶어 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매일 찾아오는 그분 덕분에 112 신고정신도 습득할 수 있었다.


위기는 팀워크를 강하게 한다고 했던가. 그녀의 순기능은 시장 사람들을 한 편으로 끈끈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이제 다시는 안 나타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회장에 취임했던 그가 시장에 나타났다. 칼로 위협을 하고 엽기적인 행동을 자행했던 그가, 세상 인자한 얼굴로 나타나 모두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장을 흉흉하게 만들었던 그녀의 출몰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그는 이제 새사람이 되었으니 과거는 잊어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절대 안 믿는다,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그놈 말은 안 들어, 이를 갈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장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막 유행하기 시작한 탕후루를 만들기 위해 막대기에 딸기 꿰는 일을 부탁했다. 데면데면하던 사장님들 중 몇몇이 그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시급이 꽤나 높다는 소문이 한 바퀴 돌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은 딸기 공장이 되었다. 악동 퇴출에 앞장서며 접근금지 신청을 위해 고소장 작성도 마다하지 않았던 부동산 사장님은 이따금씩 내려와서 "요즘 이 딸기가 기가 막히게 잘 팔려" 했다.


그 변화를 바라보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업 설명회 이후 계약을 마치고 입주하기 시작하신 사장님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매주 진행하는 프리마켓에는 분명 벌떼같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때로 저조하기도 하고 잠잠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셀러들 사이에서 '그 마켓은 이제 좀 자리 잡아간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며 계약을 결정하신 사장님들은 많은 꿈을 꾸셨으리라, 마치 내가 시장을 향해 품었던 것처럼. 그 꿈에 딸기 공장이나 칼부림 악동은 없었다.


그런 저런 상황들 덕에 - 이미 충분히 힘들었다.

수풀이 우거진 정글을 헤쳐 나가는 꿈을 꾸고 아릿한 팔을 주무르던 아침. 함께, 한 공간에서 열심을 내는 우리에게서 힘을 얻고 녹초가 되어 쓰러지던 밤.

시장에 더 많은 사람을 오게 하자, 그러면 거기서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목표도, 해답도, 모든 것이 길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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