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처음부터 우리를 삐딱하게 보시던 정육점 사장님과 일이 터졌다. 동선에 방해가 되기에, 입구에 있는 세탁기를 안쪽으로 옮겨도 괜찮을지 여쭈었을 때 - 10년 넘게 여기 있던 걸 니가 뭔데 옮겨라 마라냐고 빽, 소리를 지르시는 건, 괜찮았다.
"사장님, 그럼 행사할 때만 잠깐 치우는 건 안 될까요?"
썰던 고기를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토로하신 불만의 내용들은, 좀 아팠다.
너네가 와서부터 시장이 개판이다, 스피커 소리 때문에 전화 주문도 안 들리고, 솔직히 와서 한 게 뭐가 있냐, 상가만 잘됐지 아가씨가 진짜 시장을 위해서 한 게 뭐가 있는 지 말해봐라, 여기 아무도 고맙게 생각 안한다, 라고. 적나라하게 쏘아붙이시는 사장님에게 애써 반항해보았다.
"그래도 사람도 많이 찾아오고, 분양도 다 됐잖아요 사장님, 이제 더 잘 될거구요"
"그게 뭐가 잘 된 거요. 임대인들만 좋지. 아가씨도 그 부동산 사장님 임대만 놔준 거지 시장을 위해 뭘 했어요 도대체."
임대만 놔준 거라고?
부동산 사장님이 가지고 있던 세 개의 상가.
문득 몇 개의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가 작년에 여기다가 상가를 샀는데 임대가 안 되니까... 시장을 살려서.... >
<상가를 안 샀으면.... 안 했지, 이 일.>
<이거 다 폐쇄할 거야 시장, 반납하고 그냥 몽땅 PC방 넣을 거야 여기다>
뭔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걸까.
할 말을 잃은 채 정육점 앞에 배달된 고기처럼 멍하니 선 나는 아연할 뿐이었다. 늘상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분기탱천해서 손을 흔들며 했던 말들. 그냥, 어르신의 지나가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나에게 말씀하셨던, 이 공간을 홍대의 랜드마크로, 문화기획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비전이 고작 상가 분양을 위한 얄팍한 계획이었음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른들의 선택과 결정은 보다, 보다 사회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응? 말 잘 하드만, 말을 좀 해봐요 아가씨. 여기 사람 많이 내려와도 맨 젊은 애들만 오지. 그게 시장을 살리는 거랑 뭔 상관이냐고!"
"그럼... 저희가 지금까지 한 일이 다... 쓸모없다는 말씀이세요?"
"그럼 시장을 위해선 하등 쓸데없지. 맨날 시끄럽기만 하고."
순간, 나는 내 안의 어떤 것이 툭,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탱하고 있던 유일한 끈이 끊어지는 순간, 너무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물여덟에도 그렇게 아이처럼 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한 달에 백만 원, 그 인건비 때문에 이 일을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죽어있는 공간을 살리고 싶었고, 활력을 잃은 사장님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래, 그게 다 였다. 새벽 네 시까지 페인트를 칠하고, 길에서 호객을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후기를 부탁하는 것이, 피곤하지 않았다, 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무하다, 너무하다.
옆에 있던 이불집 아주머니는 끅끅 울어대는 나를 달래며, 저 집은 이 주변 홍대 고깃집들 납품하는 집이니까 장사가 잘 되어서 그런 거고, 우리 같이 소매하는 사람들은 훨씬 활기가 넘쳐서 좋다고. 입점도 다 되었으니 으쌰 으쌰 해서 잘해나가면 된다고. 했다, 했지만.
그 밤, 나는 끙끙 앓았다.
내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변화, 더 나은 세상, 선한 영향력 그게 다 뭐라고.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지 왜 감당 못할 세상에 맨손으로 뛰쳐나와서 뭘 해보겠다고 애를 쓰는지. 애달프고, 불쌍했다. 너무 작고 모자란 내가.
까만 밤, 사무실 소파에서 울다 잠들었을 때. 다 포기하고 떠나버릴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로? 나는 이 곳을 멋지게 살려낸 포트폴리오로 무언가를 해보려 했다. 여기서 그만두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이다.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다. 내 한 몸은 먹여 살릴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까지 볼품없을 줄이야. 서러움이 차올라서 끅끅 우는 와중에 한 가지 희망을 걸었던 것은 유통점의 입점 제안이었다. 시장 안에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현대적인 스토어가 들어오기만 하면, 매출이며 입점객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처음 그 유통점 담당자분이 시장을 찾아오셨을 때 - 마트 한쪽에 시장을 위한 유휴공간을 만들 테니 그곳에서 카페나 문화공간을 운영하면 활성화 사업단의 경제적인 자립도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으로 치달았다.
슈퍼마켓 사장님은 입점을 코 앞에 두고 허무맹랑한 권리금을 불렀다. 턱없이 높은 금액에 현대식 마트 입점은 물거품이 되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상가들이 잔금을 다 치르고 나자 사무실이 계약되었으니 이제 그만 나가라고 했다.
새로 온 사장님들에게 이 지난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유일한 나의 편이었지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우리의 상황이 안타깝고, 활성화를 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마땅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애초에 잘못 짜인 판이었으니까.
유난히 바람이 매섭던 2월. 사무실 연결했던 인터넷 양도금을 던지듯 내놓은 부동산 사장님의 "이제 됐지"를 끝으로 5개월간 깊고 굵은 경험을 남긴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
오늘따라 그 아팠던 한 주가 떠오른다.
이러려고 나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고, 대학을 나오고, 회사를 다니고, 퇴사를 했던 걸까.
죽음과 절망은 매우 가깝다.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모두가 나를 믿지 않고, 모두가 나를 외면했던 때가 자꾸만 떠올라서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은 나의 잘못일 것이다.
계약서를 공증받아놓지 않은 나의 순진 때문이다.
불안 불안했던 순간들에서, 그래도 다 잘되겠지 했던 미련함 탓이다.
불타는 열정과 이타적인 마음만 있었지 정작 그것을 지속할 능력,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구조가 하나도 없었다. 힘들고 억울하면, 안 하면 그만인 것을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몰라줄 수가 있어'하는 악으로 붙잡고 있던 나의 멍청함을 탓해야 한다.
우리가 떠난 그 사무실 자리에는 딸기 공장 악동이 들어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그마저도 그러려니 괜찮아졌다. 상처 난 자리에도 시간은 흐른다. 어느 날 나는 시장에 인터넷을 공급하는 계좌가 내 계좌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두 달치의 요금이 지불된 상황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그래도 퍽 친하게 지냈던 총무님께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었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던 것을 보고 얼마 뒤 다시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그 인터넷이 제 계좌로 연결되어 있었나 봐요. 제가 지로로 변경했어요."
"그래요. 잘했어요."
"2달치가 제 계좌에서 나갔더라고요.. 혹시 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어쩔 수 없죠.. 나도 내 돈이면 주고 싶은데 이게 시장 돈이라."
머리가 아팠다.
돈이 아니라, 근 반년을 친밀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어르신의 모르쇠가 아팠다.
아직도 나는 2달치의 인터넷 요금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인생을 배운 수강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계약서를 잘 쓰자, 사람을 쉽게 믿지 말자, 이 정도의 배움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팍팍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죽창만 들고 싸우는 삶은 살지 말자는 것이다. 가진 게 고작 죽창뿐이면 아른거리는 그림자에도 기겁을 하게 된다. 갑옷도 입고 투구도 쓰고 말도 타고 있어야 그림자가 빛을 가려도 침착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갑옷을 살 때까지 악착같이 돈을 모으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 그토록 재미난 결과를 초래하더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편안할 수 있다. 가진 것이 아, 무 것도 없어도 웃고 나누고 베풀 수 있다.
넉넉한 마음, 상대방을 딛고 일어서야만 내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프레임을 뒤집고 손을 잡고 함께 가야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단단히 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모로 그곳은 나에게 참 고마운 학교였다,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