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타고 퇴근하는 밤. 교복 입고 귀가할 때와 똑같은 아파트 상가 앞을 터덜터덜 걷는다. 버스 번호판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옛 사수의 핀잔을 떠올렸다.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야."
유독 나를 못마땅해했지.
점심 식사 중에 재미있는 주제가 나오면 까르르 웃는 것도, 출장 간 곳에서 공들여 사진을 찍는 것도 (내 업무가 sns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유난스럽게 여겼다. 나는 그 말에 지배되지 않겠다고 발버둥 쳤지만. 고분고분 충실한 회사원으로 3년을 살았다.
나다운 삶을 갈망했고, 동시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울타리 밖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이 두려웠다. 1~2만 원에 벌벌 떨면서 겉으로는 세상 태평한 척 연기하던 고달픈 추억부터, 나를 찾겠다고 무작정 나왔다가 몸도, 마음도, 시간도, 돈도 다 허비하고 폐인이 돼버리면 어쩌나 하는 극단적인 공포까지. 그런저런 비극에 비하면 좀 답답해도 때맞춰 물 주고 청소해주는 온실이 안전하다고 믿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단련된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던 회사의 방침이라는 것에 수긍하게 되고, 하나도 웃기지 않는데 배를 잡고 까르르 장단을 맞추는 것도 익숙해졌다. 일도 손에 익어서 스트레스가 제로에 수렴할 무렵, 허탈해졌다.
불과 몇 년 전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야'라는 선배의 말에 발끈했던 야성미 뿜뿜한 자아는 어디로 갔나.
결국,
소처럼 일하던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추상적이고 순진한 욕심.
지극히 무모하게 퇴사를 했다.
그때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말 그대로 무계획이었다. 지도라도 한 장 그려놓고 떠났어야 하는데 이건 뭐 일단 나와놓고 연필 깎는 격이었다.
덕분에 나는 많은 경험을 한다. 파티플래너를 하며 주전자를 닦기도 하고 축제 기획자가 되어 돼지 레이스를 시키기도 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다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중국에서 풍선을 수백 개 사 와서 팔아도 보고, 프리마켓을 했던 경력을 살려보겠다고 시장 활성화를 하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그뿐인가, 옷장사를 해보겠다고 동대문을 밤마다 오가며 눈이 핑핑 도는 세계를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움직임의 크기만큼 실패는 아프더라.
영혼을 갈았다는 표현이 있다. 나는 내 영혼이 무슨 태평양쯤 되는 줄 알았나 보다. 지치는 것은 창피한 게 아닌데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가 찢어지게 미웠다. 직장인일 때보다 더 심한 번아웃 상태를 이어가다 이석증으로 두 어번 쓰러진 후에야 알았다.
사람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구나.
평생 하나의 꿈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 여러 개를 첫걸음부터 잡을 수 없다. 이 단순한 진리를 나는 17개월이 되어가는 지금에야 피부에 새긴다. 다사다난한 일들이 퇴사 후 2년도 채 되기 전에 일어났다는 게 끔찍하고, 좋게 봐주면 기특하다. 그 시간 동안 하나를 진득하니 팠으면 뭐라도 됐을 텐데. 이게 내 적성에 맞는지 아닌 지 알아보려면 직접 해봐야 한다는 아메바같은 생각 때문에 피가 나게 부딪혔다.
퇴사 직후 단기간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진 지인들을 떠올려본다. 처음에는 그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왜 그들은 승승장구하는데 나는 매달 말일 카드값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삶을 살아온 것인지 화가 나고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씩, 타인과 세상에 쏠려있던 시각이
내면으로 옮겨온다.
어떻게 하면 잘될까, 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로 질문을 바꿔보았다.
나의 속도와 방향, 오늘의 좋았던 일을 떠올리다 보면 그렇게 나쁜 것도, 심각하게 잘못된 것도 없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나는 집중할 가치에 대해
솔직하게 대담할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비밀인데, 사회적 기업가 육성과정을 겪으면서 마음이 많이도 다쳤다. 협약을 하고, 소셜 미션을 구체화하고, 대상자를 만나고,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해가는 과정, 과정들 속에서 들었던 많은 말들. 저것도 맞는 것 같고 이 것도 맞는 것 같고 당연히 두 개가 다 맞으니 가랑이를 찢어서라도 둘 다 잡아야 하나 - 혼돈 속에서 가슴을 치던 날이 얼마나 길었던가. 컨설팅 혹은 노하우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전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다 들여서라도 얻어내고 싶은 것이 0이 줄지어 찍힌 통장인 건지, 가까운 사람들과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인 건지, 그도 아니면 차 떼고 포떼고 나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것인지. 내가 집중하는 답변은 하나여야 하고, 오롯이 나 한 사람만 대답해줄 수 있다.
해보고 실패하고 또 해보고 실패하면서 어렴풋이 깨닫는 것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다.
그러면서 먹고사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그 방법을 반드시 찾아갈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설레서 잠이 안 오는 일을 발견하고, 그 하나에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더라).
그래서 오늘도 일단 꿈을 꾼다,
다음 달은 또 다음 달은 오늘보다 오천 배 더 나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