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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24. 2020

축의금이 미안해

돈이 없지  마음이 없는 게 아닌데 말이야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아니, 정확히는 퇴사 이후 경제적인 상황은 아주 조금씩 하락곡선을 그었다. 작년까지는 어찌어찌 쥐꼬리만 한 돈이라도 나올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지원사업이 끝나고, 매일 100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2020년 2월의 미술 공방 주인장의 지갑 상황은 정말 막막하다. 어디를 봐도 돈 나올 곳이 없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하고 있었나, 자책할 틈도 없이 13년 지기 친구의 결혼식이 왔다. 오랜 세월 때문이 아니라, 힘들었던 작년을 함께 해 준 친구라서 더 신경이 쓰였다.

마음 같아서는 100만 원, 아니 그 이상이라도 선뜻 내놓고 싶었지만 현실은 참 얄팍하다. 엄마도, 동생도, 보통 10만 원이면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돈 때문에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게, 속이 상했다.

남자 친구와 다툰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남자 친구가 선생님이 되었다는 게 나를 더 조급하게 했다. 얘는 2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나는. 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 은커녕 더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런 자격지심에 멀쩡히 잘 가던 귀갓길에 시비를 건 것이다.
별 시답지 않은 일로 쏘아붙이는 나에게 그는 대꾸를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어서 나는 한강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엔진이 꺼지고 나니 쿵쾅대던 심장도 가라앉는다. 새카맣게 고요한 차에서 남자 친구는 언제나처럼 기다린다.
싸움을 건 것도, 평소답지 않은 것도, 나니까.

"평소에는 웃어넘길 일에 괜히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해."

남자 친구는 한숨을 내쉬며 사과로 답한다.

"아니야. 나도 미안해."

하지만 나는 아직 마음이 딱딱하다. 내가 왜 평소와 다르게 굴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다.

"상황은 너무 빨리 바뀌는데 나만 아직 그대로인 것 같아서, 이 갑작스러운 변화들이 무서운가 봐. 그래서 예민했어."

약속이라도 한 듯 후다닥 시집가는 친구들. 혼수며, 차며, 집이며... 억 소리 나는 일들을 착착 해내는 모습이 정말 대견하고 너무 부담스럽다. 나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 같은데, 오늘도 시집 언제가 소리를 두 번 들었다.

"뭐가 변하는데. 누구랑 비교를 하지 마.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6개월 전보다 낫고 1년 전보다 낫고."

정말 나은 걸까. 오히려 점점 최악을 향해 걷는 기분이라고.

"너무 오래 걸려서 지치면 어떡해, 네가 나를 볼 때마다 답답하지는 않을까 싶어."

2년 동안 남자 친구의 임용 준비를 바라보았던 내 마음이 겹치는 것이다. 언제가 끝이 될지 모르는 씨름을 조마조마 바라보는 옆사람의 마음이, 더 힘들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안 지쳐. 더 오래 걸려도 돼. 누가 너보고 그런 거 생각하래? 잘 해왔잖아. 지금만 잠깐 코로나 때문에 그런 거고. 걱정하지 마라. 지금처럼만 하면 돼."

괜히 심통난 말투로 와다다 쏟아놓는 남자 친구의 위로와 격려가 시큰했다. 또 주르르 한참 울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낫다.

"고마워"

"알았어. 저녁 뭐 먹을 건데."

다툼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언제 따개비처럼 앙다물고 있었냐는 듯 고기를 먹네 회를 먹네 아웅다웅하다가 버섯 칼국수로 메뉴를 골랐다. 볶음밥을 떠먹을 때쯤에는 내가 방금 울었었나, 도 가물가물했다. 남자 친구를 배웅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 앞에 주차를 마치고 나니, 불쑥 축의금이 떠오른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 묵직한 미안함도 전하지 못하겠지. 나는 내 친구의 존재가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데 내 표현방식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 봐 겁이 났다.
얌전히 있으면 유야무야 흘러는 가겠지만, 그렇게 조금씩 서로가 편한 방식대로 상대를 정의하다가, 쌓인 오해만큼 멀어지고 싶지 않다. 굳이 남자 친구에게 불편을 무릅쓰고 속사정을 털어놓는 것처럼, 새신부가 된 친구에게도 고백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미안해,를 적는 손 끝이 아른아른하다.
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내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를 뚫고 와줘서 고맙다고 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냥 내가 미안하고, 서러운 것이다.

[마음만큼 표현하지 못한 축의금이 영 마음에 걸린다. 살면서 두고두고 축하할게.]

카톡을 보내고 나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기대에서 1도 벗어나지 않은 답장이.

[와준 것만으로 고마워! 네가 잘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아. ]

의심하지 않아.
그 문장이 나를 뭉클하게 했다.
나만 나를 못 미더워한다.

[고마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든든하게 항상 옆에 있어줄게!]

유치뽕짝 한 카톡을 마치고 나니 새삼 죽네사네 했던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나를 재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나에게 '다른 애들은 퇴사하고 바로 월급보다 잘 벌던데 너는 왜 이 모양이야?'라고 쏘아붙이지 않는다. 엄마도, 아빠도, 남자 친구도, 나의 부족한 아이디어에 적극 동참해준 친구들도 그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할 뿐, 한 번도 '언제 돈 벌어?'하지 않았다. 괜히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부담백배하다가 예민해지곤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좀 믿어줘야겠다.
주변 사람들이 응원하고 믿어주는 것의 반의 반만 해도 뭔 일을 내겠다. 코로나야 덤벼봐라. (그래도 빨리 지나가 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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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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