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씨 Aug 02. 2020

있을법한 연애소설을 기억하시나요?

첫 번째 책, 출간 후기

스물일곱은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해였다.
일다운 일을 했고,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고,

있을법한 연애소설을 썼다.
낮에는 옷을 팔고 밤에는 글을 쓰는 매일이

그 자체로 매우 풍성했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내가 내 멋에 취해 쓰는 글이

그냥 재미있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에게 남자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하나의 드라마였는지도 모르겠다.

10편을 넘어가기 시작할 때쯤 갑자기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을 기억한다. 분명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데, 노크도 없이 벌어진 깜짝 파티 같다고나 할까. 좋은데, 좋은 게 맞는데,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 지를 배운 적이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반응해주고, 다음을 궁금해해 준다는 것은.

출판사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도 비슷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그래서 주저했다. 이런 글을 어떻게 책으로 낼 수 있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 있어 책은, 게다가 소설책은. 내가 갈망하는 감정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약(?) 같은 존재인데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난 것이다.

그래서 책을 내겠다고 한 다음에도 대표님께 죄송할 정도로 많이 고쳤다. 3년 전에는 이름도 없던 그녀를 다시 찾아가 지난 연애사를 따라가면서 - 잊었던 감정을 되찾기도 하고 오직 그 시기에만 가능했던 상상을 황당해하기도 했다. 맥락 없던 전개에 새로운 사건을 지어 넣고, ‘그 여자’에게 수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도대체 몇 명인 지 셀 수도 없는 남자들에게 건우, 종욱, 세욱 씨, 그리고 또 뭐더라, 아무튼 이름을 지어주면서. 잠시나마 스물일곱, 무모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한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다. 몇 번을 다시 읽으면서 고치고, 고치다 보니 훌쩍 7월이 되었다. 이상하지만 나는 인쇄된 책을 다시 읽으면서도 수아 씨의 연애담이 재밌다. 이제 완전히 내 손을 떠나서 그런가.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보탠 이야기가 차르르 인쇄된 분홍색 책을 받아 들었을 때. 표지에 박힌 170만 뷰라는 숫자가 새삼 묵직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누적된 조회수이긴 하지만 정말 감당하기 힘든 숫자다. 부끄러운 전개와 부족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주고, 댓글까지 달아준 사람, 사람들 앞에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손가락을 움직인 건 나지만,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읽어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생 핸드폰 너머에서 스크롤을 내려주신 누군가들을 위해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있을법한 연애소설을 읽어주신 독자님들, ‘작가’라는 말을 듣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읽어주신 여러분 덕분이에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가 한 살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