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매출이 영 저조할 때, 별 짓 다 해봐도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는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검색 창 앞에 앉아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가르쳐 줄 마음이 없어도 배울 수 있고, 질문은 못해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선생님들이 시장에 있다. 먼저 시장에 들어와 있던 선배 기업들, 나보다 월등히 잘 하고 있는 나와 비슷한 브랜드들에는 항상 배울 점이 있다. 처음에는 그들을 마주하는 게 시리고 아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저 사람들은 뭐가 달라서 저렇게 사업을 잘 하고 있나 부럽기도 했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데 내가 이 브랜드들을 롤 모델 삼고 발자취를 따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지 고민하기도 했다.
고민은 자유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도 않더라. 그래서 그냥 따라 걸었다. 어떤 때는 아무 효과가 없었고, 어떤 건 정말 좋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똑같이 하는 건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내가 배우는 방식은 질문을 갖고, 살펴 보고, 비교해 보고, 실행하는 것의 반복이다.
1. 질문을 갖고
책을 읽을 때도, 고객 조사를 할 때도, 시장 조사를 할 때도, 질문이 없으면 남는 게 없다. 감히 만날 수도 없는 세계적인 마케팅 코치의 몇 백 페이지 되는 책을 읽고 적용점 하나 찾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답을 얻고자 하는 질문, 또는 가설을 세워두어야 한다. 질문은 문제에서 나오고 가설은 데이터에서 나온다.
문제는 내가 지금 머리 빠지게 고민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질문) 왜 전년 대비 매출 성장이 없을까, 왜 이 시즌만 되면 매출이 눈에 띄게 빠질까.
이 질문만 가지고 조사를 하다가 답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잘 들어 맞지도 않는다. 뭔가 가설이 있어야 한다. 다른 시즌은 모두 전년 대비 매출이 늘었는데 특정 시즌에만 제자리걸음이라면 다른 시즌들과 뭐가 다른 지 들여다 봐야 한다.
가설) 신상품이 안 나온건지, 나오긴 나왔는데 늦게 나온 건 아닌지, 그게 다른 브랜드들이 만드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 상품 가격이 특별히 비싼 건 아닌지, 사실 고객이 원하는 건 네모난 모양인데 우리 것만 둥근 건 아닌지.
가설이 세워지면 시장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다.
2. 살펴 보고
질문을 안고 여러 개의 브랜드를 돌아 다니면서 지금 잘 팔리는 상품들을 본다. 보통 인기순 정렬을 하거나 네이버 스토어의 경우 일간, 주간, 월간으로 베스트 상품을 볼 수 있으니 이 순위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한테는 없는데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상품군이 있는 지 본다. 우리가 판매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품인데 최근 잘 판매되고 있는 반면 우리는 판매가 영 저조하다면 후기와 상세페이지를 본다.
3. 비교해 보고
나도 물건을 살 때 여러 판매자들의 제품을 비교하고 제일 안전한 것을 구매한다. 고객도 마찬가지일테니, 같은 마음으로 비교한다. 이 때는 나와 다른 브랜드의 제품도 비교하지만 다른 브랜드 간의 제품과 사이트도 비교해본다. 일단 내 제품과 타 제품의 가격, 사진, 후기, 상세페이지를 비교하고 고객 입장에서 느끼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죄다 수정해야 한다. 내가 봐도 밀리는 싸움판에서 누군가 우리를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브랜드 간 비교는 제품을 발굴하거나 지금 시즌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할 때가 많다. 10개 브랜드 중 6~7개에서 요즘 잘 팔리는 것으로 A,B,C 제품이 보인다면 이건 안 하면 안 되는 유형이다. 그런데 어떤 시즌에는 10개 브랜드의 인기 제품이 10개 다 다른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딱히 시즌을 선도하는 트렌드 제품이 없고 그 브랜드들마다 스테디 셀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제품이 스테디 셀러인지 고민해보고 만약 그런 게 없다면 그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된다.
4. 실행하는 것
여기까지 오면 이제 해야 할 리스트가 무지하게 많아진다. 사진이 부실하면 사진을 더 찍어서 상세페이지를 고쳐야 하고, 다른 곳에서는 다 구할 수 있는 추가 상품이 없으면 그 상품을 구해야 하는 등. 비교적 단기간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모르겠지만 스테디 셀러를 만들어야 하고, 잘은 모르겠으나 우리 제품만의 차별화를 주어야 하는 중장기 리스트가 생겼을 수도 있다. 금방 끝나든, 오래 걸리든 계획한 대로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행동은 매기에 한 발 늦을 수도 있다. 그래도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고치기 시작하면 지금 시즌은 놓쳐도 다음 번은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늦더라도 행동 해야 한다.
얼마 전에 정말 아쉬운 경험을 하나 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자동차 회사에서 우리 제품으로 전국 캠페인을 진행할까, 고려 중이라는 제안을 받았었는데 아쉽게 탈락(?) 했다. 담당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제품의 이음새를 수정하면 좋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러고 보면 후기들을 통해서도 이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 관점에서 살펴보니 다른 제품은 사이즈가 좀 작아도 이음새 없이 통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조금만 먼저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응했더라면 전국 캠페인의 주인공은 우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심장이 지하 5층까지 내려가는 기분이 들지만, 더 늦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아깝다고 주저앉아 있는 동안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어쨌든. 다른 브랜드들의 활동과 신상품을 통해서 지금 당장의 액션들도 배우지만 큼직한 시장의 정의와 고객, 여기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 대략적인 시장 규모도 배운다. 지금 좀 주춤해도 앞으로 계속 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속해있는 시장을 사회적으로 뭐라고 부르는 지, 어떤 기업들이 공룡 기업이고,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인 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더라.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파악할수록 외로움이 덜어졌다. 나 혼자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장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든든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멋진 브랜드를 보면 구글에 회사 명을 검색해보고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가능하다면 수익 보고서도 살펴본다. 회사 홈페이지가 따로 있다면 연혁과 브랜드 소개도 살펴보고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 왔는지 감상(?)한다. 그렇게 몇 개의 회사들을 찾아 다니다 보면 성장 해온 방식의 공통점을 발견할 때도 있고 거기서 내가 해야 할 숙제가 추가되기도 한다. 시장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선생님들을 온라인으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1년에 한 두 번씩, 박람회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 ‘유아교육전’과 ‘문구/사무 박람회’가 그런 기회인데 어떤 제품군을 이 시장에 속해 있다고 부르는 지 배우고, 지금 이 시장의 전반적인 트렌드와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는 무엇인 지 파악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협업할 수 있는 브랜드, 제작을 부탁할 수 있는 공장을 만나기도 하고 속으로 끙끙 앓던 어려운 문제 – 어린이 안전 인증! – 에 대한 답을 부스 한 곳에서 해결 하기도 한다.
나 혼자 골방에서 1평만한 공간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기분이 들 때면, 목을 길게 빼고 멀리 내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지 둘러보고 돌아오면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 상태로 오늘의 숙제를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꿈에 그리던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