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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토가 생각나는 이유

시칠리아 여행 511

by 배심온

3월 30일 몰타를 나와 포짤로에 도착한 이후 일정이 미정이다. 일요일에는 기차도 버스도 운행 햇수를 대거 줄이는 바람에, 시간낭비 없이 경제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몇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한다. 다음날 시라쿠사에서 새로운 여행 멤버들과 합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 포짤로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고, 시라쿠사까지 택시를 타는 방법, 이게 가장 간단하지만 택시비가 100유로 정도 예상되니 과용이다. 포짤로 항구에서 단체관광버스에 비용을 지불하고 시라쿠사까지 합승하는 방법, 이건 그들이 허락할지 여부에 달렸다. 나머지 하나는 노토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하루 숙박을 하고, 다음날 버스로 시라쿠사까지 이동하는 방법이다. 노토까지도 택시비가 60 유료.

여섯 시도 전에 몰타를 떠나 배 안에서 일출을 본다. 구름에 가려 찬란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지중해 한가운데서 떠오르는 해를 본다는 건 꽤나 감격스러운 일이다. 8시쯤 포짤로 항에 도착하니 미리 예약된 버스, 택시, 자가용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단체버스에 다가가 문의를 했으나 예약된 사람만 탈 수 있다고 하니, 우리의 선택지는 택시를 타고 노토까지 갈 건지 시라쿠사까지 갈 건지의 결정만 남는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포짤로에서 하루 잔다고 해도, 항구를 벗어나는데 만도 택시비 20유로를 내야 하니 이건 선택지에서 제외시킨다.

우리는 노토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하룻밤 자기로 결정한다. 택시를 타면 너무나 간단하다. 튀니지 여행이 수월했던 이유도 저렴한 택시비 덕에 택시를 자주 이용했기 때문이다. 예약도 하지 않은 채, 가장 평이 좋은 숙소를 선택하여 택시로 도착하니 10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다. 숙소는 도심에서 좀 벗어나긴 했지만 시골스러운 정취에 정갈하고 조그마한 호텔이다. 젊은 자매인 듯 닮은 두 분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한 사람은 리셉션을, 한 사람은 식당을 담당하는 듯했다. 빈방이 있어서 하루 묵을 수 있고, 조식 포함 하루 92유로인데, 90유로로 해주겠다, 현금을 내면 80유로로 깎아준다는 제안을 한다. 우리는 시내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아 지불하기로 하고 짐을 우선 맡기는데, 상냥하고 친절한 여인은 우리에게 아침식사까지 권한다. 오늘 조식은 무료라고. 너무 이른 시간 이동한 우리의 사정을 살펴주신 거다. 이렇게 럭키할 수가. 젊은 여인은 조식이 준비되어 있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들 가족이 직접 기르고 만든 야채와 과일, 잼. 전통술 등에 대해 자랑스럽게 하나하나 소개를 하고, 즐기라며 자리를 피해 준다. 가끔 아주 가끔 있는 행운이다. 배가 고픈 우리는 다양한 빵과 달콤한 잼과 과일들을 먹고, 숙소 청소가 끝날 때까지 현금서비스도 받을 겸, 시내 구경을 나간다.

일요일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는 대신, 작고 고풍스러운 노토 시내에서는 일요일을 맞아 다양한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주민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구도심을 행진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지나가고, 행사 참가자들이 성당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나쁘기만 한 것도 없고, 좋기만 한 것도 없는 듯하다. 작은 도시를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현금서비스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 방을 배정받는다. 자매는 무거운 케리어를 직접 들어서 2층 방으로 옮겨 주었다. 방은 너무나 예쁘고 깨끗해서 그 시간 이후 숙소 밖을 나가지 않았다. 테라스와 룸을 왔다 갔다 하며 즐긴다. 다음날 시라쿠사행 버스 시간에 맞춰서 버스정류장까지 자신의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으니 이제 걱정할 것이 없다. 몰타에서의 피로감을 풀며 빨래도 하고, 글도 쓰면서 휴식을 취한다.

시칠리아 여행 관련 책자에서 노토 사진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노토는 숙소 주인의 친절 때문에 더욱 잊지 못할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2025. 5. 11. 밤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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