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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아세요?

여행일기

by 배심온

여기저기 미술관을 다녀본다. 오늘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을 보러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갤러리를 찾는다.


우선 스스로에게 하루에 한잔만 허용하는 오늘의 커피를 사서 자리를 잡는다. 건물은 6층 타원형 공간에 천정이 유리로 되어있어 마치 야외에 나와있는 느낌이다. 5층과 6층 사이의 가운데 공간은 트여 있어서 개방감은 크고, 그걸 확인시키려는 듯 커다란 풍선이 떠있다. 나무를 많이 배치해 놓아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끼게 하겠다는 설계자의 의도를 알겠다. 공간 활용의 새로운 시도처럼 보인다. 빈 공간이 절대로 낭비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라면 몇 시간이라도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많지만 이곳저곳 공간 활용이 잘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귀한 커피 한잔을 테이블에 놓고 더 좋은 전망을 확보하려고 의자를 이리저리 움직여 자리를 잡는다. 맞은편에 오늘 내가 방문할 미술관이 보여 안심이 된다. 그게 어딜 갈 것도 아니지만, 목적지에 다 와서 부리는 여유가 좋으니까 나의 목적지를 시야에 두는 거다.

그렇게 혼자 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있으려니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여기 같이 앉아도 될까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1인 의자가 놓여있으니,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였다.


"물론이지요"


의자를 당겨 앉더니 바로 말을 걸어온다. 딸이 퇴근할 때까지 여기서 놀다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고. 그때가 3시쯤이었으니 딸과 만나려면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따님이 여의도 증권가에 근무하나 봅니다."


그녀의 말문을 틔우는 질문이었을 거다. 고등학교부터 유학을 하고 돌아와 지금은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고, 돈을 많이 벌어 자기 집도 하나 장만했단다. 이주일에 한 번씩 골프도 치러 다니는 데 글쎄 시집을 안 가서 걱정이라며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간다. 세 시간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그녀에게 나와의 대화는 좋은 소일거리일 거다.


"따님 사진 좀 보여주세요. 엄마 닮아서 예쁠 텐데"


나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렇듯 딸 이야기에 신나 하는 그녀를 위해 과도할지도 모르는 요구를 한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을 열어 딸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멋지게 골프복을 차려입은 딸의 모습은 연예인 누구라고 해도 믿을 만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곧 어느 전문직의 남자와 결혼 소식이 있을 듯 해 보이는 모습이다.


"왜 아이들이 결혼을 안 할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참으로 쓸데없는 대화가 오고 간다. 식품관에서 장어를 사서 맡겨놓았다느니, 꾸준히 요가를 해 건강과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조금 쓸모가 있으려나.


오늘의 커피 한잔도 다 마셨고, 나는 나의 목적지로 향해야 할 때라는 생각에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녀에게도 미술관 관람을 권해보지만 그녀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별인사를 한다.


"또 만나자는 약속은 못하겠고, 따님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


링 모양의 타원형 광장을 걸어 건너편 미술관으로 가면서 생각한다.


저를 아세요?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2025.7.1.

화구를 잔뜩 사서 화방에 맡겨두고, 카페에서 더위를 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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