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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전달법

여행일기

by 배심온

병가를 낸 선생님을 대신하여 나흘간 시간 강사를 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왔다.


강사를 구하지 못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보강을 들어가거나, 수업 결손이 생기게 된다. 나흘 중 선약이 있는 하루는 수업시간을 조정해 주기로 약속을 하고 ○○중학교에 나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챙긴 것이 휴대용 마이크다.


20명에서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서 뒷자리까지 잘 들리게 하려면 큰소리로 수업을 진항해야 하는데, 두세 시간만 그렇게 해도 목이 잠겨버린다. 더군다나 나는 목소리가 낮고 작아서, 나의 말이 아이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종 아이들을 재워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걸 막기 위해 마이크는 필수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챙겨 온 짐을 아무리 찾아도 마이크 충전기가 보이지 않는다. 교원자격증도 없다. 나흘 강사를 나가기 위해 교육청에서 새로 교원자격증을 발급받고, 마약 검사도 했다. 나흘간이니 마이크 없이 그야말로 생목으로 수업을 해보기로 한다. 다행히도 처음 보는 선생님이 궁금했는지 아이들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다.


단원은 가정의 갈등. 교과서에서는 그 원인을 세 가지로 들고 있다. 가치관의 차이, 의사소통 문제, 역할 분담의 문제.


의사소통에 대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네가 주어가 되는 너 전달법이 아니라, 나를 주어로 말하는 나 전달법으로 대화하라고 설명했다.


너 전달법

"너는 왜 그러니",

"너는 항상 그러더라",

"네가 그랬잖아" 등등 상대를 비난하거나 지적하고 평가하게 된다.


나 전달법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이해하게 만들고,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타인과 대화를 할 때는 비교, 지적, 충고, 조언. 평가, 지시 등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역할이 공부를 가르치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인데, 평가, 지적, 조언, 충고를 하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나는 아이들에게 고백했다. 일반적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교사의 숙명이자 비애라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꼰대라고 놀려대도 할 수 없다. 교사들의 지도편달 없이 어떻게 아이들의 기본생활습관이나 도덕적 삶의 기본이 만들어지겠는가. 학생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교사가 그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교사는 책임을 방기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지지와 존중이 없이는 이 모든 것들은 반발의 소지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지양해야 할 평가, 지적, 조언, 충고, 지시가 학교에서는 훈시, 훈화, 교훈, 교육이 된다. 그러나 교육적 효과를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학생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단 나흘간 별다른 업무 없이 수업만 하는 강사 생활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또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배우겠다고 똘망똘망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나에게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다.


병가 중인 선생님의 학교 복귀가 하루 더 미뤄졌지만, 나는 예정된 여행 일정 때문에 시간 강사는 나흘로 끝냈다.


사십 년 가까이 내 몸에 배었을 비교, 평가, 지적, 조언의 습관을 없애고 이제는 묵묵히 지켜보며 이해하고 지지하는 일만 하고자 한다.


2025.6.15. 보르네오 섬에서 간밤에 무지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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